본문 바로가기

사람들

[34호][사람들] "저는 여전히 청소년운동을 스쳐지나가는 중인 것 같아요." 공기님 인터뷰

[사람들] 코너에서는 우리동네 나무그늘에서 공동대표이사로 활동하고 계신, 공기 님을 만났습니다. 2008년에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고, 다양한 공간에서 활동을 이어간 온갖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둠코, 공현

 

 

어떻게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나게 되었는지?

 

청소년활동은 2008년에 촛불집회로 시작을 했어요. 원래는 부산에 살다가 남양주로 이사를 왔어요. 되게 애매한 시기였죠. 중 3 기말고사 끝나고 여름방학 시작하기 전에 이사를 와서, 그래서 친구를 한 명도 못 사귀었어요. 그래서 계속 집에만 있다가 촛불집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부산에서 학교 다니면서 학교라는 시스템이 좀 나랑 맞지 않는다, 좀 싫다, 왜 다녀야 되지? 이런 의문이 계속해서 있었고, 학교가 더욱 싫었던 거는 선생님의 체벌도 있었지만, 학교 폭력의 경험이나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의 연장선상에서, 촛불집회에 나오게 되면서 뭔가 좀 다른 가능성을 봤어요. 내가 좀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 부산은 되게 대도시라고는 해도 사회가 좁아서, 교복만 보면 어느 학교인지 알 수 있거든요? 행동을 하는 것에 제약이 많아서, 교복을 입고 집회에 참여하면 어느 학교 애가 어디 집회에 참여했다더라 이런 게 있는데, 전학을 와서는 그런 제약들이 없었어요.

교복을 안 입고 참여할 수도 있고, 특히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이기도 했고, 교복을 입어도 어디 학교인지 추정하기도 되게 어렵고요… 그런 것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근간이 됐던 거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청소년활동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이 되고 싶었는데, 그 시기에 당사자성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친구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시기에 만났던, 특히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고. 이게 내 문제구나라는, 내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게 더 필요하구나라는 것들을 더 깨달았다고 해야 되나.

 

촛불집회에서 여러 단체들을 만났어요. 전국청소년학생연합(전청련),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희망), 청소년 다함께.. 하여튼 되게 많은 단체들을 거쳤는데, 다 맛만 봤어요. 세미나나 영화 상영회 같은 데 참여했어요. 희망 같은 경우에는 좀 인싸 느낌? 학생회 조직들이 연결되어 있고, 학생의 날 행사도 엄청 크게 했었고,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랑도 연결되어 있었고.. 그래서 캠프 같은 데도 갔어요. 그리고 청소년 다함께는.. 인터내셔널, 이거는 국제적 문제다. 그래서 내 문제가 되게 협소해 지는 느낌인 거예요. 그리고 아수나로는 그냥 또래들이 같이 있는데 뭔가 되게 피곤해 보였어요. 왜냐하면 다 주체적으로 하니까.. 뭔가 피곤해 보였어요. (웃음) 그리고 전청련은 좀 촛불집회 내에서 같이 참여하기 위해 만든 청소년 단체? 비청소년들은 집회 나오면 다 소속된 단체들이 있는 거예요. 다들 깃발도 있고. 그러니까 청소년들도 그런 게 있어야 되겠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그 뒤에 일제고사 반대 운동으로 청소년운동을 시작 했어요. 그리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노동빈곤팀 활동, 여성주의 팀에서 걸페미니즘 활동을 했고.. 모난라디오라고 팟캐스트 진행 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리고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도 하고.. 여러 활동을 하다가, 두리반을 만났죠.

 

그 즈음에 사회당 청소년위원회도 했었고, 그런데 그 시기는 정말 기억이 잘 안 나요. 노동당과 사회당이 합당 된 이후에는 노동당에서 활동 했었는데, 그 때는 청소년활동이 아니라 청년 활동을 많이 제안 받았어요. 근데 이상하게 청년활동은 싫었죠. 나이상 청년이기는 한데, 왜 그런지는 몰라도 청년으로 호명 되는 건 싫은. 세대론도 너무 싫고, 그러다가 21살에 창원에 갔어요. 공장에서 일을 했고, 1년 반 뒤 겨울에 강화도로 갔어요. 그리고 한 1년을 강화도에서 놀면서 임차상인 관련 활동에 연대하다가, 2016년에 옥바라지 골목 활동을 했어요. 그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맘상모에서 임차상인 관련 활동을 하다가 그만둘 즈음에 나무그늘 협동조합에서 활동을 하게 됐어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나무그늘 협동조합은 어떤 곳인지?

 

나무그늘 협동조합은 주민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 주민들을 조직하고, 염리동, 대흥동에서 정치활동을 하기 위한 거점으로 마련된 카페 공간에서 시작 됐어요. 2011년도에 시작되고, 5년동안 마포 아트센터 근처에 있다가 쫒겨나서 쇠퇴기를 걸었어요. 다른 곳에 이사를 갔다가 현재 위치로 자리를 잡았어요.

 

나무그늘에서 이사를 하다가, 이사장을 하게 된 거는, 나무그늘의 오랜 조합원이기도 했고, 계속 나무그늘이 쇠퇴의 길을 걷다 보니까 좀 한 번 일으켜 보자라는 마음에서 뜻을 모은 거였어요. 마침 맘상모를 그만 둔 시점이어서 같이 해 보자고 했어요.

 

나무그늘은 평등한 조합을 추구하면서, 생각의 협동, 자본의 협동 여러가지 협동을 추구하면서, 건강한 생활, 문화,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팜플렛에 적어 놨는데요. 지금 나무그늘 협동조합이 있는 곳도 해빗투게더라고 시민공동자본으로 마련한 공유공간이에요.

 

지금 나무그늘은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어떤 협동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원래 마포구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구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꼭 마포구가 아니더라도 구성원들이 다양해지고 있고, 오히려 활동가들이 많아져서,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합이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나무그늘에 대한 고민은 참 많아요.

 

 

공기님은 그 외에 어떤 것들을 하나요?

 

저는 지금 N잡러예요. 청소년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무그늘 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연결 지점을 찾고 조합원들과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보려고 하는 동시에 만화도 그리고 있어요.

처음 독립출판한 책은 ‘일리 없는 세상’이고 그 이외에도 말할 수 없는 꿈이라거나 뭐 등등이 있어요. 지금 현재는 빅이슈에 만화 연재하고 있어요.

 

 

매우 여러 단체와 공간들을 경험한 것 같은데, 그 때와 지금, 공간이나 단체에 따라 비슷한 점,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집단이 추구하는 것이 따라서 굉장히 분위기나 방향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소년인권활동을 하면서 많이 재미있었던 거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청소년 해방인지, 혹은 나의 해방인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고 좋았어요. 이제 그 시기가 지나고, 그 집단에서 나오고 나서 다른 집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경험했던 것이, 결국에는 이 집단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떤 것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다르구나 하는 것.

그래서 사실 지금 저를 만든 8할, 8~9할은 청소년 활동에서 확장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제가 거쳐간 활동이나 단체가 너무 많아서 다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하는 활동과 청소년인권운동의 경험을 보자면 그 둘이 다르다기 보다는 제가 달라진 거 같다고 생각을 해요. 그 때의 저는 어쨌든 좀 더 적은 돈으로도 더 행복할 수 있었다? 는게 제일 큰 차이점 아닐까요. 그리고 불안의 층위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그 때도 불안이 있었고 지금도 불안이 있는데 신기한 게 그 때 불안했던 것들은 지금의 불안과 달라요. 이걸 풀어가는 것도 숙제겠죠.

 

 

청소년인권운동의 기억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활동은 어떤 게 있나요? 좋았던 거나 혹은 싫었던 거나?

 

딱 생각이 나는 건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 노동인권팀에서 메이데이 때 여의도 광장에 갔을 때 무슨 로봇을, 철인 28호였나? 로봇을 만들어 나왔던 것도 기억나고.. 사실 기억나는 건 너무 많아요. 좋았던 추억만 많이 기억 나고, 싫었던 건 잘 기억이 안 나요.

 

 

앞으로는 어떤 걸 하고 싶은지? 활동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만화를 그리는 파이를 더 늘리고 싶어요. 제 생활 속에서. 지금 하고 있는 협동조합 일도 있지만 제 경험이나 활동을 만화에 녹여내는, 제가 경험했던 것들이 잘 녹아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활력소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듣기로는 활력소가 1년에 한 세, 네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쉬울 때 찾아오는 게 제맛 아닌가 싶고요. (웃음)

저는 여전히 청소년운동을 스쳐지나가는 중인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