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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33호][사람들] "청소년인권운동이 다루는 문제에 관심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 연혜원님 인터뷰

[사람들] 코너에서는 올해부터 투명가방끈 상근활동가가 된 연혜원 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의외로 2020년 투명가방끈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청소년인권운동은 물론 사회운동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하시는 연혜원 님의 인터뷰, 바로 만나볼까요?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둠코, 공현

 

 

 

어떤 경위로 투명가방끈을 알게 됐고,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월간지 〈워커스〉에 나온 투명가방끈 인터뷰를 보고 처음 알게 됐어요. 그 인터뷰를 보기 한 2년 전쯤에, 제가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인터뷰한 연구를 했는데요.(〈능력주의 사회에서 공업고등학교 학생의 성인이행기 전략〉)  그 연구를 하고 나서 마음이 후련하지 않았어요. 연구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바뀌지 않으니까요. 또, 그런 학력 차별 문제에 관해서 계속 사회운동이 있었는데 마치 그런 게 없었던 것처럼, 내가 새로 발견한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좀 기만적인 것 같단 생각도 들었어요.그러던 차에 투명가방끈을 알고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타이밍이 좋게 그때 '대학거부선언준비팀'을 모은다는 공고가 떴어요. 대학거부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고 해서 처음 투명가방끈 활동을 했고, 그 이후론 그냥 편하게... 나와 문제의식이 충돌하는 것도 없고, 하다 보니 그냥 계속하게 됐네요. 지금은 투명가방끈에서 상근 활동하면서 주로 '안티능력주의팀' 활동을 하고 있는데, '능력주의 반대'는 바로 저를 위한 주제인가 싶은 마음이에요.

 

 

책 《퀴어돌로지》 기획자, 매거진 〈them〉 기획자 등 여러 직함을 갖고 있죠? 그래서 사실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가 궁금해서 활력소 인터뷰를 하자고 한 것이기도 했어요.

 

《퀴어돌로지》는 케이팝 아이돌과 퀴어를 다룬 책이에요. 한 3년 동안 기획해서 작업했어요. 공업고 학생 연구를 마치고 나서, 좀 거리를 두고 싶더라고요. 연구를 하고 나니 오히려 내가 잘 다룰 수 있는 주제인지 자신도 없어져서... 그래서 케이팝으로 '도피'를 했고 거기에서 퀴어 친구들을 만났는데, 연구자로서의 자의식이 안 죽었는지 그 주제로 책을 기획해서 내게 됐습니다. 따로 공부를 안 하고 당사자성 있는 이야기를 하니까 처음에는 좀 편했는데, 하다 보니 사건 사고가 많았고 중간에 책이 두세 번은 엎어졌어요. 그래서 중간에 '그냥 돈이나 벌래...' 하고 여성가족부 산하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기도 했거든요. 그래도 저는 시작한 건 꼭 마무리를 한다, 벌여놓은 일은 마친다 하는 성격이라, 《퀴어돌로지》 준비하면서 해놓은 게 아까워서 다시 작업을 해서 2021년에 책이 나왔어요. 문화재단 지원 사업을 따서 마무리했는데, 작업하면서 기획자로서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 맺고 협력하고 일을 분배하고 할지를 많이 배웠어요. 연구자란 정체성에 더해 활동가란 정체성, 문화예술기획자란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된 첫 계기가 《퀴어돌로지》 일이었기 때문에 하길 잘한 것 같아요. 그 이후로 퀴어예술매거진 〈them〉도 기획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퀴어돌로지》를 작업하면서 퀴어란 주제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그 안에서 차이들이 많이 보였어요. 경제적 차이, 지역의 차이, 학력의 차이 등... 그래서 제가 예전에 연구했던 주제로 돌아가더라고요. 나는 공업고 학생 연구를 왜 했을까? 결국 내가 연구한 질문 중 하나가 평생의 질문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투명가방끈을 알게 됐고 학력 차별, 입시 문제 등에 관한 활동을 시작했죠. 저란 사람이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심 가진 주제에 다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인 거 같아요. 저는 그 둘을 병행하면서 개인적으론 여러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입시 교육에 문제의식 가진 사람들 중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있고, 입시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서로 다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투명가방끈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제가 스물세 살인가 스물네 살인가 이후로 돈을 벌 수 있는 건 다했던 거 같아요. 카페 알바도 하고 과외도 하고 여가부에서 일도 하고 대학에서도 일하고... 또 뭐했지? 일을 쉰 적은 없었어요. 그만큼 경제적으로 불안정했던 것 같아요. 또, 성격적으로도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엄청 불안해지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 가지는 데 영향을 준 거 같아요. 이 문제만 없으면 제가 훨씬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하는 것들...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던 거 같은데.

 

생각해 보면 중요한 배움은 다 대학 밖에서 배웠어요. 대학에서는 많은 노동을 했는데... 20대 절반 이상을 노동했던 경험이었던 거 같아요. 학교 홍보대사도 하고 그랬어요. 참 정상성에 편입해보고 싶은 욕망의 끝... 그래도 돈을 주니까 생각 없이 할 수 있더라고요.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많은 노동을 했죠.  모두 학생을 시키거든요. 예를 들면 경영대학원 행사에서 사장님들 간식 차려주는 일도 해봤고요. 나중엔 그런 것들 하기가 싫어서 학생회도 해봤어요. 학생회 하면 돈을 줬지만, 그걸로 당연히 생활비가 안 돼서 집 앞 카페에서 알바를 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주말엔 과외를 했고. 그러니까 쉴 시간이 전혀 없고 집에 가면 진짜 잠만 자는 거예요. 공부하는 데 돈을 내야 하는데 그 돈을 내려면 이렇게 일을 해야 하고요.

 

이젠 더 이상 대학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요. 대학이 사람을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렇게 부려먹으면서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절대 안 해줘요. 이게 부르주아틱한 노동이구나 정말...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진짜 계층적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학평준화가 되어야 하고 무상화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

 

대학 졸업한 뒤에는... 신문사 기자를 했었네요. 글을 쓰고 싶어서 언론사들에 지원을 했는데 덜컨 경제지가 붙어버린 거예요. 고민하다가 일단 일해보자 했는데, 여성혐오의 끝판왕이었어요. 여자 기자들은 기자 취급도 안 해주고, 부장이 일주일에 몇 번씩 새벽 3-4시까지 술을 먹는데 여자 기자들이 술을 따라 주고 노래를 불러줘야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제가 써야 하는 글이 다 쓰레기 같았어요. 월급은 많이 받았지만, 그때 늘 분노가 가득한 상태여서, 길에 지나가는 사람을 다 때리고 싶었는데요. 스스로도 위험하게 느껴졌어요. 이런 심리 상태로 사는 게.

 

신문사는 1년 3개월 일하고 그만뒀고, 그때 벌어둔 돈으로 대학원 학비를 댔지만 그걸로도 다 충당이 안 돼서 일하면서 공부하고, 돈 다 떨어져서 아까 말한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에서 일하고, 그 뒤에는 《퀴어돌로지》를 내고 또 이제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그런 기획을 하니까 서울문화재단 같은 데에서 돈을 받을 수 있더라고요. 차라리 어떻게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봐야겠다 하고 있어요.

 

 

그러면 투명가방끈 활동 전에는 운동은 해 본 적이 없으신가요?

 

사회운동, 활동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어요. 저는 대학에서도 운동은 딱히 하지 않았어요. 제가 운동을 안 한 건 운동이 싫어서는 아니었고요. 저희 아빠가 노조를 했는데, 어릴 때부터 아빠가 노조 하는 게 멋있어 보였거든요. 제가 그런 걸 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뭔가를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돈을 벌다 보니까 할 시간도 없었고요. 그런데 제가 사회운동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확신을 갖고 주장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데.

 

저는 생각하는 게 좀 오래 걸리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생각하고 나서 시작을 했을 때는 그 이후에 쭉 하는... 대학 다닐 때도 반값등록금 운동 같은 걸 보면서, 내가 그 운동에 참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어요. 그리고 저는 반값등록금 운동은 좋은데 당시 제가 본 대학생운동이 교조적이고 경직되어 있어서, '왜 저런 형태로만 운동을 해야 하지?' 의문이었어요.

 

 

투명가방끈이나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를 포함해서 청소년인권운동에 관한 인상이 어땠는지?

 

청소년인권운동은 나한테 잘 맞는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진짜 위계에 예민했던 거 같거든요?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시간들을 저에게 계속 제공하는 그런 곳 같아요. 근본적으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위계라든지, 학교에 대한 위계라든지. 저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만약 성찰이 없으면 쉽게 학력주의나 학벌주의로 가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필요한 문제의식이죠. 저는 청소년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청소년운동이 다루는 문제에 관심 가질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요즘 느끼는 건 정말 성인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나 취약하게 되는 사회잖아요. 그 전에는 그런 걸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당연하지 않단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죠. 청소년기에 내가 뭔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런 걸 내가 잘못돼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아니란 걸 알면 알수록 제 자신과도, 제 과거와도 화해하는 계기가 되고 있긴 해요.

 

 

올해부터 투명가방끈 상근활동을 시작했는데, 소감이 어떤지?

 

제가 상근활동가 하겠다고 한 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였어요. 계속 기획자 일을 하다 보니, 기획자 일이 투명가방끈 상근활동가로 하는 거랑 겹치는 게 많거든요. 그런 부분도 낯설지 않다고 생각을 했고, 이 조직이 잘됐으면 좋겠고, 그게 합쳐져서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죠.

 

솔직히 대학에서 교수들이랑 일하는 거에 비하면, 투명가방끈 일은 참 좋아요. 내가 다녀본 어떤 직장보다도 투명가방끈에서 인수인계를 가장 잘 받았어요. 전 상근활동가인 윤서님이랑 피아님이 아주 잘 알려줘서 쉽게 적응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내가 다녀본 조직 중에 투명가방끈이 제일 체계적이에요.(웃음) 신문사에선 그냥 막 하라고 윽박질렀고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폭력팀은 막 만들어질 때라서 같이 체계를 만들어가는 입장이었는데, 조직 문화는 좋았지만 예산도 인력도 부족하고 상위의 정부 부처 절차도 복잡하고 힘들었거든요. 

 

 

투명가방끈에서 기억에 남는 활동 또는 앞으로 어떤 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요?

 

저는 투명가방끈 활동이 다 대체로 좋아요. 올해는 저는 다른 단체들이 우리한테 연대하게끔 설득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지금 다양한 소수자운동과 능력주의와의 교차 지점을 찾는 포럼을 준비하고 있는데, 투명가방끈 운동이 다른 소수자운동과 어떤 교차성을 갖고 있는지 설득하는 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엔 보다 직접적인 학력 학벌 차별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긴 해요. 우리가 차별금지법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그걸 하려 했는데 그게 잠시 정비 중이라서... 그런 활동을 꼭 병행하고 싶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은, 대학을 없애고 싶네요. 지금 같은 형태의, 입시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 대학을 없애 버리고 싶어요. 연령이나 돈이나 다 구애받지 않고 배우고 싶을 때 배울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