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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32호][사는 이야기] 어려움을 모아모아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활기에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대구 청소년 페미니스트 모임 어린보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움 님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활동에 있어 이런저런 불평들을 삼키던 적이 있었다. 청소년인권운동 필요하니까 해야지, 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활동에는 본인의 힘과 호흡을 조절하는 것부터 자원 부족, 활동의 전망, 동료들의 소진, 여러 권력 관계 등 많은 부분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했다. 조목조목 고됨을 살펴보면, 더 견디기 싫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보자는 다짐으로 운동의 지구력이 커진다고 생각하며, 요즘은 활동을 열심히 평가하고 있다.

 

 

지역에서, 학교에서 청소년 운동하기

 

학교, 가정, 시설 모두 머물기 시작하면 그로부터 이탈하고 저항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탈가정, 탈쉼터는 성공했지만 탈학교는 실패하면서, 실패한 김에 학교 안에서 시도했던 활동들이 있다. 학교에서 뭐든 간에 하려면 동아리가 필요해서 청소년인권 동아리를 만들었다. 여러 까다로운 허락과 준비의 과정을 거쳐 겨우 시작했다. 그러나 구성원 모두 입시에 시달리며 무기력한 상태라 별 활동을 하진 못했다. 활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반응은 한결같이 미지근했다. 생기부에 기록되는 것에 대해서나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게시판에 뭔가 붙이는 것이 다였다. 학생부장이 내일부터 치마 길이 단속을 강화한다고 통보하면 복장규제에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붙이는 식이었다. 그때는 교사들 눈치도 봐야 했고 글을 쓸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어서, 독서 모임 홍보인 척 학생인권을 말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해 붙였다. '그 글에 동의하면 동그라미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옆에 뒀었는데, 며칠 안에 스티커로 종이가 빽빽히 채워졌다. 이 조용한 학교에서 나타난 동글동글한 연대가 신기했다.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그 종이는 억지로 떼어지진 않았지만, 지나가는 교사들도 아랑곳하지 않아서 뿌듯하기도 허무하기도 했다. 6월 프라이드 먼쓰(Pride Month)에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그려 복도에 길게 이어 붙여서 미니 퀴퍼도 만들어보고, 언제는 대학입시거부선언문도 붙여보고, 뭔가 해보긴 했는데 마찬가지로 별 성과는 없었다. 혼자서 본격적으로 할 용기도 힘도 나지 않았고, 여전히 동료는 없었고, 동아리는 결국 해산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시험 답안지나 발표 시간에 입시경쟁을 폐지해야 한다, 학생인권을 보장하라 하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말을 자주 걸었다. 학생들은 여전히 별 반응이 없고, 교사들은 그렇게 채워 낸 답안지에 0점 처리를 하고 내게 확인시킬 뿐이어서 그것도 곧 그만두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품고 있는 분노를 모으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참 어려웠다. 학교에 한 명이라도 동료가 나타나길 절실히 바랐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아픈 몸으로 학교를 이탈하기

 

우선은 학교 밖에서나 활동을 해볼 수 있다고 느끼지만, 학교 안에서 활동할 길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중 하나로 요즘엔 학교 구성원들이 학교를 이탈하는 상상을 해본다.

 

예전에 잠자던 나를 세워두고 바락바락 소리치며 언어폭력을 행사하던 담임 교사가 몇 달 전부터 지병으로 학교를 거의 안 나온다. 마침 그 무렵이 내가 학교에서 유독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던 때였다. 정신력 운운하던 교사는 본인이 아픈 몸이 되고 난 후 나의 아픈 몸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고, 우리는 함께 나의 학교 이탈 경로를 모색했다. 친권자의 압박으로 졸업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학교를 안 나올 수 있는 꼼수들을 찾아 병결을 냈고, 병결 일수를 다 써갈 무렵에는 방학이 시작되어 다행히 올해 남은 학기까지는 학교 밖에서 보내게 됐다.

 

담임은 그러면서도 반 학생들에겐 내가 안 나오는 이유가 집안 사정 때문이라고 설명하게 했다. 악용(?) 예방 차원에서였다. 나는 더욱 모두와 함께 학교를 이탈하고 싶어졌다. 입시에 시달리는 모든 아픈 몸들과 함께 학교를 상대로 투쟁할 수 있을까? 수면 부족의 몸으로 수면권 보장 잠자기 시위하기 같은 것을 가끔 상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단단히 모이기

 

학교 안에서 활동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학교 밖의 청소년운동 단체를 찾아다녔다. 청소년운동 단체는 많은 부분 서울에 기반이 있으니 나는 여력이 닿는 대로 서울에 가곤 했다. 하지만 대구와 서울 사이는 애써도 쉽게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대구에서 활동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서울 지역에서 청소년운동 하기에 한계를 느끼며 한숨을 폭폭 쉬게 되었다. 집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청소년의 삶을 살아내는 것만큼이나,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청소년운동을 하는 건 큰 고립을 느끼게 했다. 가끔 서울의 청소년운동 단체 사무실에 있으면 가만히 사무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데, 그 차분함이 좋으면서 좀 슬프기도 했다. 비서울 지역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없으니 조직화가 안 되지만 사람이 없으니 조직화가 필요해서 일단 움직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단단히 모이기라고 쓴 게 자꾸 재수 없어지려고 한다. 저 말이 공허해지는 게 싫다. 지금 여기서 활동을 꼭 쥐고 이어가고 싶고, 대구에 가능한 오래 있기로 했다.

 

 

가난을 감당할 자신

 

대구에 있겠다는 결정은 비서울 지역 활동에 대한 욕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구가 물가도 집값도 싸기 때문인 것도 있다. 요즘 청소년 활동가로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다. 아주 오랫동안 꼭 가난을 극복하겠다며 살았는데, 청소년운동을 하며 각자도생의 노력이 역겨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공부도 안 되는 김에 여러모로 정상성으로부터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는 가난한 청소년 활동가가 되기로 했다. 그러면서 꼭 가난에는 적응하자고 다짐했는데, 활동은 여태 해오던 '가난싹싹k-장녀' 수행을 때려치게 만들었고, 빈곤에 분노하게 했다. 나는 돈이 없어 불행하더라도 그냥 살아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져서 큰일이었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것들이 욕심이 아니라 권리라는 접근은, 날 행복에도 불행에도 더 솔직하게 했다. 요즘은 좋아하는 공간에 가고 좋아하는 걸 먹으며 좋아할 권리를 찾는 것에 솔직해졌다. 대구의 비건 커뮤니티를 찾아다니며 알게 된 다정한 식당이 좋았다. 동물권부터 시작되는 반차별적 대화가 좋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빈곤에 저항하자 말하는 책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당연한' 가격대가 나의 가난을 더 버겁게 했다. 좋아하는 공간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동료들

 

그러니까 활동은 계속해서 돈이 없게 하면서도 각자대로 잘 살 권리를 이야기하고, 그 와중에 내 삶은 돈을 쓰며 굴러가야 한다. 그 괴리에 힘겨워하는 중에 같이 활동하자고 모인 어떤 활동가는 자꾸 문제적 발언을 한다. 돈도 사람도 없고, 그나마 모인 사람 중 몇은 자꾸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활동 동력은 떨어진다. 생계도 위태로운 판에 활동을 그만둬야 하나 잠시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일 때, 종종 활동이 지속가능함을 감각할 때를 떠올려본다. 인건비를 받을 수 있을 때, 그리고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단체가 활동가의 삶을 쌩까지 않을 때 함께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활동 단체의 재정 상황이 괜찮아서 최소한의 활동비가 보장되는 편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단체라고 활동하기 싫어지는 게 아니다. 생계와 활동 사이의 줄타기에서 함께 손잡을 동료가 있는 것이 나름의 힘이 되었다. 간단한 알바를 소개해주고, 단체에 인건비를 마련하려 해보고, 결국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진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상태를 물어봐주는 동료들이 좋았다.

 

또 활동 동력에 관해서, 아무리 활동이 중요하더라도 각자에겐 필수적인 쉼이 있다. 활동가의 시간은 운동을 이어가는 것과 자신이 쉬는 것의 합의들로 촘촘히 짜여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있어서 단체는 활동을 들이밀고 개인을 몰아붙이는 쪽인지, 혹은 그 합의에 함께하며 여러 목표와 약속을 설정할 수 있는 쪽인지가 중요한 것 같다. 문제적 발언을 하는 활동가를 마주하는 일에도 그런 차근차근함이 필요하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성의를 들여 대화를 시도하고, 충분한 대화 끝에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활동에서 오는 여러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고 단체가 신호를 보내면, 열악함에서도 기꺼이 애쓰게 된다. 단체와 함께 운동을 이어갈 미래가 버겁지 않아진다.

 

사실 이렇게 썼지만 별로 명쾌하지는 않다. 현실은 모든 것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고, 글에는 모호함이 남는다. 나는 그새 만족스런 글을 쓰지 못한 본인이 싫어지고 있어서 말을 덧붙인다. 구태여 말을 붙여야 풀어지는 불안이 있다. 요즘 모든 결론이 나에게 맡겨진 것처럼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 생각한다. 나는 자주 압박에 짓눌려 글을 쓰므로 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어렵다. 글과 나를 분리하기 어려운 건, 그만큼 내 마음이 붙잡을 무언가가 없어 초조한 거구나 한다. 괜찮다. 같이 나누면 할 말은 점점 생기고 결론도 여러가지 더 붙을 테니 괜찮다. 느려도 괜찮고, 내가 써낸 몫이 이만할 뿐이라도 괜찮다. 아쉬움과 함께 글을 잘 보내는 연습을 한다. 무능함을 싫어하지 말자. 무능함을 탓하지 말자. 각자 다른 자원을 서로 나누자. 활동을 하면서, 특히 속도가 빠른 활동가와 활동을 하면서 자주 되뇐다. 속도가 다르더라도 같이 활동을 나눌 사람들이 있으니 마음이 좋아진다고 위로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