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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31호][사는 이야기] 처음엔 무작정, 아무렇게나 해보기도 했지만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활기에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찬 님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중학생이던 내가 아수나로에 가입했을 때는 내가 사는 부산엔 지부가 없었다. 2018년 이후로 휴면된 상태였다. 그래서 아수나로 가입 신청서의 어떤 지역의 모임에서 활동을 하겠냐는 질문에 직접 지역모임을 만들겠다는 선택지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답변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근활동가를 만나게 되었고, 부산지부의 첫 모임을 잡는 일을 맡게 되었다. 처음 들어온 사람이 지역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무작정 첫 회의를 잡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지만 지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만 18세 선거권 도입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2020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나는 두 번의 선거법 위반을 한 적이 있다. 하나는 ‘선거운동방해죄‘였다. 경남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무산시킨 정치인이 출마했기에 경남의 청소년 활동가들과 함께 항의 피켓팅을 했다. 나머지 하나는 ‘불법선거운동죄‘였다. 선거법상 만 18세 미만이라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임에도, 청소년의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기 위해 동료들과 거리에서 선거운동을 했다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이었다. 하나는 기소유예로, 다른 하나는 비청소년 활동가(당직자)에 대한 벌금형으로 끝났고 이슈화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일깨울 수 있었다.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어렵게만 느꼈던 활동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만 같았다.

 

2020년, ‘청소년의 선거운동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찬 님이 활동하는 정당의 당직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황스럽기도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총선 이후 계속해서 일은 늘어갔다. 워크숍이나 회원모임, 캠페인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을 맡아야 했고, 여러 연대체에 지부 담당자로 들어가 실무를 맡기도 했다. 피켓, 유인물, 현수막 등을 디자인하여 인쇄하기, 기획안 쓰기, 회의를 준비하고 기록하기,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등 활동 초반에는 경험하기 어려울 것만 같았던 일들을 하나둘씩 맡게 되었다. 누군가로부터 실무 방법을 인수인계 받거나 공유받기 어려웠던 지부의 상황과 조건 때문에, 할 줄 모르더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작정 하고 봤다. 모르는 건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따라 했고, 정 안되면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하기도 했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제대로 알려주지는 않으면서 일을 맡기는 아수나로의 활동가들이 밉기도 했다. 또 계속해서 일을 만들고, 늘리는 내가 싫기도 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부산의 회원들에게 첫 회의를 잡자고 연락을 돌리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했던, 그리고 다른 단체의 활동가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무섭기만 했던 2019년의 나보다는 더 성장한 것만 같았다. 힘들고, 두렵고, 알지 못하는 일들을 하고 알아가면서 점점 내가 활동가로서 성장했던 것 같다. 물론 그래도 ‘대단한 활동가’가 되지는 못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무와 활동의 총량도 늘어갔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회의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바로 버스를 탔다. 일정이 없는 날에는 맡은 실무를 하기 위해 사무실이나 집에서 일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일이 반복됐다. 한편으로는 학교 생활이 힘들어졌다. 늦은 시간에 끝나는 일정과 일들 때문에 학교에서는 잠만 잤다. 늦게 일어나다 보니 지각도 잦았다. 벌점은 어느새 12점이 쌓여 있었고, 시험 성적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가끔은 ‘내가 어른들 말처럼 인생을 막 사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전망과 고민을 공유하는 이들과 만나고, 이들과 함께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일들은 내가 너무나 원하는 것이었고, 나에게 뜻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고민은 접어두고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힘내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함께했으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의 학생인권대나무숲 캠페인을 하고 있는 김찬 (사진 제공 : 김찬)


요즘은 지부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청소년운동이 더 많은 청소년들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자주한다. 지부라는 공간이 결국은 지역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는 공간이니, 이런 고민들을 지부 활동에 잘 녹여내고 싶다. 

적지 않은 이들이 청소년운동은 활동가가 자주 떠난다고, 사람이 없다고, 전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각자의 고민과 전망을 공유하고, 지칠 때는 쉬어가면서 함께한다면 청소년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함께 힘내서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함께했으면 좋겠다.

 

 

- 글: 김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