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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30호][사는 이야기] 하고 싶은 건 많은데요, 솔직히 그냥 놀고 싶습니다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활기에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최근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채움활동가가 된 치리 님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부터 쭉 그저 청소년운동 근처를 빙빙 맴돌았다. 어디의 소속이기도 하면서 아니기도 한 상태로 어영부영 대학에 오고, 그나마 맞는 공부가 법학이어서 공부도 그럭저럭 했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빙글빙글 맴도는 게 짱구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던 것 같다. 뭐든 이제 벌써 6년이나 된 이야기다.

 

나는 벌써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고, 대학원 진학을 저울질 하면서 여전히 학력 차별을 고민한다. 그리고 최근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채움활동가를 신청하면서 이렇게 썼다. “더 이상 맴돌지 않겠다.” 사실 좀 궤변에 가까운 이야기다. 더 이상 맴돌지 않겠다니, 무엇을? 어디를? 이미 한 발만 툭 걸치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해 온 기간이 더 긴 사람이 맴돌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올해가 지나면 출국이 예정되어 있다. 마지막 불이라도 질러 보겠다는 걸까? 글쎄,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 (사진 제공 : 치리)

사실 나는 늘 하고 싶은 게 많다. 용두사미로 끝나기는 하지만, 늘 꿈만은 원대하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으며, 그것도 하고 싶어서 왕창 일을 벌렸다가 허덕이며 키배 뜨지 말고 일하라는 조언을 듣고 울며 무언갈 한다. 일은 재밌다. 공부도 재밌다. 하지만 하기 싫다. 그것들보다 나의 도파민 수용체를 훨씬 자극하는 것이 K-POP과 야구, 웹소설과 SNS일 뿐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러지 않기 위해 남보다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정신과에서 ADHD 검사를 하는데 기절하는 줄 알았다. 누가 내 얘길 여기다 써 놓은 거야? 누가 그랬어?

 

물론 진단을 받고 청소년운동 활동을 하면서 미뤄 놓은 것들에 대한 죄책감도 같이 들었다. 그 시기의 나를 견뎌 준 이들에게 늘 감사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여전히 남았지만 어쨌든 정신질환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돌아다닐 때보다야 지금이 낫지 않겠나.

 

 

어떻게든 삶을 이어 간다는 것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이뤄 낸 것도 있고, 좌절된 것도 있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비슷하게 공존하며 삶을 저울 위에 올려둔다. 꽤 열심히 준비했던 유학이 엎어졌고, 진단된 정신질환을 얻었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잃기도 했다. 그 와중에 역시 이뤄 낸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활기에서 펴낸 《나를 지키는 법, 내가 고치는 법》을 공저한 것이랄까.

마감 독촉을 수시로 받으며 겨우 써낸 것들이 담긴 책은 어딘가 뿌듯하기도, 여전히 아쉽기도 하다. 미리 했으면, 더 검토를 했으면, 하지만 이미 출간된 마당에 그런 고민은 해서 무엇하랴. 자고로 좋은 일은 자랑을 하라고 했다. 2020년이라는 시대적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삶을 붙든 것도 원고 마감은 하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이제 그나마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법 사투리를 읽고 쓰는 것이니, 그거라도 해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어찌 보면 거의 6년을 떠밀리듯 살아왔다. 그런데 좀 떠밀리며 살면 어떤가, 어쨌든 살아있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럼 이제 한 발쯤 걸쳤던 것에 다시 풍덩 빠져도 되지 않을까. 정신과 상담과 약물,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한다면 그깟 1년쯤, 그깟 해외살이 활동쯤. 어려울 것도 없겠다 싶다. 겨우 그런 게 삶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겨우 그런 게 삶이 아닐까?

 

 

- 글: 치리(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채움활동가. 목포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부딪혀 보는 중인데, 솔직히 잘 안 됩니다. 더 나은 제도를 상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