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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32호][관점들] 활력향연 보고서 - 〈지속가능한 청소년인권운동을 위한 전·현 활동가 연구: 계속하는 마음, 그만하는 마음〉을 읽고

이번 호의 [관점들]에서는 NPO지원센터의 활동가 연구지원 프로젝트 <활력향연>을 통해 청소년인권활동가 공현, 난다, 피아가 펴낸, 〈지속가능한 청소년인권운동을 위한 전·현 활동가 연구: 계속하는 마음, 그만하는 마음〉 보고서를 소개합니다. 리뷰를 쓴 건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의 소속 단체이자 청소년인권에 관한 활동을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인권교육센터 들'의 고은채 활동가입니다.

 

 

 

이번 연구 〈지속가능한 청소년인권운동을 위한 전·현 활동가 연구: 계속하는 마음, 그만하는 마음〉가 진심 궁금하면서, 한편으로는 읽어야할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을 하는 활동가로, 때로는 응원하거나 지켜보아 온 입장에서 나름의 부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독후감 쓰기’가 올해의 계획 중 하나인데, 1월 독후감부터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싶지만... 괜찮습니다, 아니 좋습니다.
       
활동가에게서 운동을 ‘계속하는 마음’과 ‘그만하는 마음’을 들어서 기록하고 지속가능한 운동을 모색한다는 것이 일면 평범한 연구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들과 이야기를 상상하면 어렵고도 무거운 연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운동했던 활동가를 떠나보내는 경험은 그것이 한 번이라도 서늘한 기억이 되기도 하고, 계속하는 마음을 온통 흔들어버리기도 하니까요. 물론 꿋꿋하게 활동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그 마음은 참 그렇습니다.(설명 안 해도 되겠지요?) 이 연구의 부제가 계속하는 조건이나 그만하는 상황이 아니라 계속하는 ‘마음’, 그만하는 ‘마음’인 이유는 아마도 상황과 조건으로는 100% 채울 수 없는 청소년인권활동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는 이야기’에도 나와 있듯이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며 ‘이별에 익숙해지는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 꼭 필요한 연구였던 거 같습니다.
 
이번 연구에는 2000년대 중반에서 2010년 중반사이에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전·현 청소년인권활동가 8명이 면담에 참여했고, 인접한 인권운동을 하는 2명의 활동가도 면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1부에는 청소년인권동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며 이번 연구의 문제의식이 청소년인권운동의 어떤 흐름에서 시작됐는지 이해를 돕고 있고, 2부에서는 면담 참여자의 이야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청소년인권운동의 조건과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구분한 청소년인권운동의 2세대인 2006~2016년은 청소년인권운동이 보다 조직화되고 구체화됐던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에서도 소개하고 있듯이 2008년 광화문 촛불 집회 참여나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를 통한 참정권 보장 요구, 대학입시거부 선언, 학생인권조례제정 활동 등 굵직한 이슈들이 많았는데요, 이전 시기에 사회에 드러나기 시작한 청소년인권의 문제가 이즘에 운동으로 확산되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조직적 활동이 있었지만, 이때만큼 연타를 날리며 청소년인권 이슈를 사회로 끌어온 적도 드물었던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청소년인권활동이 조직적으로 빛나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계속 하는 마음, ??

연구에서는 면담 참여자들을 ‘계속하게 되는 마음’에 불러 앉히는 것은 재미라고 이야기합니다.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틀을 벗어나는 것, 세상을 바꾼다는 유능감이나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감각,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고유한 존재로 자신을 발견하는 것 등’이라는 것이지요. 


“전혀 청소년과 관련 없는 그런 기분들이 들어서 좋았어요. 그전까지는 맨날 모범생이 돼야했고... 그런 거에 엄청 시달리다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만났던 게 자유롭게 느껴졌던 거 같기도 해요. 저는 활동을 계속 할 수 있게 됐던 힘이 그냥 뭔가 학교에서 하는 것들은 되게 시시해 보이는 거예요. 학교에서 하는 것들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 눈에 잘 들기 위해서 숙제하고 선생님 눈에 잘 들기 위해서 시험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거는 내가 이걸 함으로써 사회에 변화에 뭔가 기여할 수 있고, 그렇다는 게 되게 저한데 좋았고”(활동가D) 

- 〈지속가능한 청소년인권운동을 위한 전·현 활동가 연구: 계속하는 마음, 그만하는 마음〉, 49쪽


청소년인권운동의 재미가 ‘활동을 통해서 바뀐 세상’ 같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런 답변을 상상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소박한’ 재미라고 할까요? 이런 재미를 ‘고유한 존재, 살아 있는 것처럼 살 수 있는 것’(조지혜 2021)이라고 연구에서 정리하고 있는데, 사실 당연한 것이라 별거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고유한 존재로 느끼고, 살아 있는 것처럼 사는 것을 청소년인권활동을 통해서 경험한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 그렇지 못한 청소년의 일상을 말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이 들기도 하고요. 연구에서는 ‘함께하는 관계와 친밀감, 공동체성, 소속감, 운동에서 그 언어를 배우고 공부하며 발견하는 의미’ 등이 운동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이렇게 좋은데, 왜 그만하게 될까? 이런 질문이 이어져야 할 것 같은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이렇게 질문하면 비난을 것 같아서, 뭔가 다른 이음말이.... 필요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하는 마음... 

이렇게 좋은데도 불구하고, ‘그만하는 마음 : 지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아주 복잡하고 많았습니다. 활동가로 정체화하기 어려운 점, 운동의 열악한 상황과 반복되는 실패, 동료의 부족과 책임에 대한 부담감, 과중한 업무량과 생계 문제, 삶에서의 불안과 차별, 사회 안전망의 부재, 운동에 대한 사회적 이해 부족이 그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청소년 당사자로 활동가로의 정체화가 어려운 점이 크게 보였는데요. 

“우리 운동 특성상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일단 첫째 청소년으로서 시작하게 될 경우가 많잖아. 근데 청소년일 때 사실 ‘내가 앞으로 몇 년 동안 뭘 해야지’라고 결심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 약간 1년 단위로 뭔가 확확 변하는 느낌. 앞으로 장래에 뭐할 건지 진로 계획도 세워야 되고. 뭔가 공부도 더 점점 더 어려워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계속 바뀌고 아무튼...”(활동가 E)

- 〈지속가능한 청소년인권운동을 위한 전·현 활동가 연구: 계속하는 마음, 그만하는 마음〉, 58쪽

사회적으로 청소년 ‘시기’에 맞춰 요구되는 선택들이 청소년인권운동을 새롭게 만난 청소년에게도 여지없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었어요. 더욱이 이런 불안정한 상황은 열악한 청소년인권운동의 현실 속에서 압박이 되고, 역으로 청소년인권운동을 계속 열악한 상황에 머물게 하는 악순환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연령을 기준을 청소년에 해당하는 사람만 하는 운동이라면 아마도 이런 악순환을 벗어나긴 어렵겠지요. 
  
청소년인권문제의 당사자에서 청소년인권활동가로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켜야 운동 지속이 가능해지는데,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가지지 못하면서 자신의 현재 삶에 관련돤 다른 문제로 관심사가 이동하거나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는 듯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 〈지속가능한 청소년인권운동을 위한 전·현 활동가 연구: 계속하는 마음, 그만하는 마음〉, 61쪽


연구에서는 청소년인권활동가 개인이 당사자의 문제에서 활동가로 위치를 이동해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운동 자체의 지속가능성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활동가가 이어지고 운동이 이어지는 것이 악순환을 벗어나는 1단계 출구로 보이니까요. 아직 1단계라니! 생각하고 낙담하기보다는 1단계만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렵니다.

연구 보고서를 받아드는 활동가라면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방안과 과제를 대체 어떻게 제시하고 있을까?’라고 먼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인터뷰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경험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지.. 그리고 연구 보고서를 덮으며 이런 연구를 하는 활동가들이 있고, 이야기를 모아주는 시간(역사)이 있었고, 공감하는 또 다른 활동가들이 있다는 것에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운동에서도 그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시간들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는데, 밑도 끝도 없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일면 있었거든요.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는... 각자의 몫 같은... 운동의 시간도, 운동의 환경도, 상황도, 선택도. 스스로 운동한 것을 남 탓할 수 없는 것처럼요. 불안정하고 열악한 상황을 스스로 선택한. 남 탓할 수 없는 것은 맞지만 이야기를 모으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인 것 같습니다. 모색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니까요. 

- 글 : 고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