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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30호][관점들]《유예된 존재들》 독후감을 대신하여

30호 [관점들]에는 《유예된 존재들 - 청소년인권의 도전》 독후감을 싣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인 공현 님이 쓴 청소년인권에 대한 글들을 모은 책이에요.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김정래 님이 써주셨습니다.


《유예된 존재들 - 청소년인권의 도전》, 공현 씀, 2020, 교육공동체 벗, 16,000원

 

 



《유예된 존재들》을 읽고 리뷰를 써달라는 말에 단숨에 책을 읽었다. 그러고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멍했다.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뭐라고 써야 하지, 내가 또 뭘 쓸 수 있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고민 끝에 내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내 얘기였으니까. 



“어른 독재”

 

“그렇다.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른’에 의한 독재 사회다. (……) 이 독재의 명분은 ‘보호’이다. 과거 한국에서 박정희가 ‘개발 독재’를 했다면, 지금의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며 ‘보호 독재’를 한다.” - 215쪽

 

나는 아직도 그 사람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 중학교 3학년 때, 당시 학생부장 교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꼴통’이었다. 교복 집에서 파는 교복 치마 길이 무릎까지 닿질 않는데 그걸 갖고 “치마는 무릎까지 닿아야 한다. 길이가 모자라면 천이라도 덧대어라.”라며 온갖 ‘고나리질’을 일삼던 그 사람. 학생들이 교복 말고 체육복을 체육 시간 아닐 때 입고 있는 꼴을 잠시라도 못 봐서 보는 족족 들어가 갈아입으라고 소리치던 그 사람. 그래서 학생부장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학생부장이 학생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건 적어도 내가 배운 민주주의 비슷한 것에도 못 미친다고 조목조목 따지는 글을 A4 용지 7장쯤 손으로 써서 전달했다. 그날, 학교 선생들이 대부분 모여 있는 본교무실 한가운데서, 학생부장 교사 자리 앞에서 호되게 혼났다. 학생이 이러면 안 된다고. 학생이면 공부를 하라고. 나는, 교사가 이러면 안 된다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예, 예, 알겠습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간신히 교무실을 나왔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고개를 숙이고 히끅히끅 소리를 참으며 울었다. 너무 억울하고 서러웠다. 내가 배운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주인,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념”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다니는 학교도 다니는 사람이 주인이고 주권자니까 어떤 규칙을 따르고 지켜야할지를 정할 수 있는 권리가 학생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논리나 깊이 있는 지식을 필요로 하는 주장이 아니었다. 지극히 상식에 기반한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 억울하고 서러웠다.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 권리가 증발했다. 아니, 태초부터 내게 권리 같은 건 없었다. ‘보호 독재’로 가득한 사회에서 청소년인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나는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렇게는 억울해서 못 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가 살던 곳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었으므로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금새 내 역량은 고등학교 입시에 집중됐다. 나는 학생부장이 나에게 면박을 준 그날을 기억의 한켠에 묻어 두기로 했다. 내가 찾아야 한다고 믿었던 권리는 어느새 내 안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그날의 일을 남겨 두고, 나는 지역에서 썩 괜찮다고 인정받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생 사회”

 

“학교에서의 민주주의는 학교 구성원들이 시민 사회, 학생들의 경우로 말하자면 ‘학생 사회’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학생회가 활발하게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정치적 힘을 갖기 위해서는 제도가 갖춰지는 것 이상으로 학생 사회에서 나오는 아래로부터의 힘이 필요하다.” - 250쪽


고등학교에서는 더 많은 자유를 빼앗겼다. 기숙사 학교였고 휴대폰을 소지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기숙사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자지 않으면 벌점을 받았다. 상급생을 보면 인사를 해야 했고, 상급생들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숙사에서 단체로 엎드려뻗쳐 자세로 기합을 받기도 했다. 담임 교사는 밥을 많이 먹으면 오후에 졸릴 수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밥을 적게 먹으라고 강권했다. 그래도 나는 그러려니 했다. 구태여 토 달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역거점국립대학 밑으로 (대학을) 가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미래에 ‘사람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공부를 이어 갔다. 


그런 학교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말이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한창 사회적 이슈였을 때였다. 학교 측은 내가 다니던 학교를 국정 교과서 시범 학교로 지정받도록 만들고자 했다. 그에 학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나도 덩달아 대자보를 써붙였다. 학생들은 강당에 모여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저녁 늦게까지 이어갔다.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국정교과서로 수업받고 싶지 않다”라고. 우리가 수업받는 내용을 정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정말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강당에 모여 동료 학생들의 발언을 들으며, 그때 처음, 우리가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반발로 인해 학교는 국정 교과서 시범 학교 신청 결정을 취소했다.  


당시 학생들에게는 학교를 대상으로 정치적 요구를 관철할 동력이 있었다. 말하자면, 시민사회에 비유할 수 있을 ‘학생 사회’가 우리에겐 조금이나마 있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고 토론할 시간과 공간이 비교적 많았고, 국정 교과서에 반발하는 의견이 여론으로 형성되기까지 그런 시간과 공간은 충분한 토양을 제공했다. 또 학생들이 공유하는 감각, 즉 학교에 학생의 주권이 없다는 감각이 유대감을 만들었다. 학생이 원하지 않은 국정 교과서 시범 학교 신청은 학생들이 공유하고 있던 감각을 건드렸다. 요컨대 미약하나마 ‘학생 사회’의 큰 틀거리가 우리 안에 있었기에 국정 교과서 시범 학교 신청 철회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학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한계는 명백했다. 학생들의 의견 표출은 불합리한 교칙이나 생활 환경을 바꾸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교실로, 자습실로 돌아가 입시 공부를 이어 갔다. 학생 사회의 싹은 있었지만 학생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지는 못했다. 학생은 공부하는 존재일 뿐이었으니까. 공론장에서 다시 자습실로 돌아가는 그 길을 나는 온전히 따라갔다. 나는 더 악착같이 매달렸고, 또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고만 기억하기로 했다. 
 


“상품 되기를 거부하기”


“나는 대학거부가 상품이 되기를 거부하는 일종의 인간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 98쪽


돌이켜보면, 내가 나의 권리 찾기를 유예하고 돌아오는 곳은 늘 입시 공부였다. 학생부장 교사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국정 교과서 반대라는 요구를 관철해내는 과정을 겪고도, 그리고 여기에 미처 적지 못한 수많은 권리 찾기의 기회가 왔음에도 끝내 책상으로 돌아온 이유는 입시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10대인 나에게 입시는 곧 지상명령이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과 제도가 나더러 입시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높은 성적을 받고, ‘높은’ 대학에 가고, 그래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라는 요구.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적 자원으로서 자신을 계발하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나는 나를 팔아야 했다. 나를 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나는 더는 나를 예비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입시거부라는 선택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해, 나는 대학입시거부를 했다. 나는 대학입시거부자가 됐다.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나의 권리를 찾는 데 걸림돌이 되어 온 것이 입시였고, 그래서 이제라도 그 걸림돌을 제치고 나의 권리를 찾는 삶을 살겠다는, 삶을 더는 유예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자연스레 대학입시거부로 귀결됐다. 나의 10대를 대학입시거부선언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상품화 없는 교육은 학생 사회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테다. 우리 공동의 문제, 예컨대 인권이나 기후위기와 같은 문제에 대해 청소년들이 공감대를 갖는 데에 입시 위주의 교육이 큰 걸림돌이 돼 왔다. 공동의 문제를 고민하기보다 각자도생을 권장하는 사회는 청소년 각자를 살리기는커녕 각자의 권리를 빼앗았다. 가령 참정권 쟁취와 같은 사회 이슈를 두고 청소년들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지 못한 것은 청소년들에게 정치의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그들 자신의 주권을 발휘할 시민 사회라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교실에 있어야 했고, 학교는 정치판이 돼서는 안 됐으므로.   

 

“예비인 삶은 없다”

 

“청소년들의 경우는 그 존재 자체가 ‘예비’ 취급을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은 ‘예비 성인’, ‘예비 시민’으로, 미래의 희망일 뿐 오늘을 살고 있는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곤 한다. (……) 그런데 청소년이 아닌 이들이라고 예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진 않다. 우리 사회는 청년일 때는 취업을 예비하고, 그 뒤엔 결혼을 예비하고, 중장년일 땐 자식을 낳고 기르고 교육하고 결혼시킬 일 그리고 자신의 노년기를 예비하고, 노년기엔 병에 걸릴 때나 죽은 이후를 예비하라고 하지 않는가. (……) 마치 ‘예비 인생’이 보통의 삶의 모습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 124쪽


이 책, 《유예된 존재들》이 내 얘기라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가진 이런 서사들의 중심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꿰뚫은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오늘을 살 권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청소년인 동안 끊임없이 오늘을 살고 싶었다. 비청소년에게는 일상적인 권리들이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박탈되는 비참한 현실을 넘어서, 청소년으로서의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청소년에게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청소년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권의 입맛에 맞춘 교과서로는 배우지 않고 싶었고, 사람을 상품으로 만드는 교육을 벗어나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록 동시대 혹은 비슷한 시기에 사회운동으로 형성된 청소년인권의 언어를 접하지는 못했지만 청소년인권의 언어를 빌리지 않았더라도 명백하게 청소년인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 그래서 이 책은 새로운 정보나 논리를 습득하기보다 지금까지의 삶을 갈무리하고 지금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내게 읽혔다. 그만큼 내 안에 청소년으로서 오늘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컸었나 보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내가 10대인 동안은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뇌어 왔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해, 지금이 아닌 미래를 위해 살아야한다는 요구가 나를 괴롭혔다. 친권자도, 학교도, 그리고 나조차도 내게 미래를 위해 살기를 요구했다. 그런 요구는 꽤 합당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내 삶은 10대에서 끝나지 않으므로 그 이후를 예비하려면 청소년으로서 지내는 시간을 자기 상품화에 희생해야 할 법도 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청소년인권의 언어를 접하고, 《유예된 존재들》의 관점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지금, 나는 안다. 누구에게나, 어느 시기에나 ‘오늘을 살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고 미래를 예비하기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삶의 태도는 실은 순간의 합으로 이뤄진 것에 불과한 우리네 삶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유예된 존재들》을 읽고 독후감을 대신해서, 서평을 대신해서 썼다. 내 삶의 어쩌면 전체일지도 모르는 일부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내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유예된 존재들》은 이런 나를 대변하고, 위로하고, 지지하는 책이다. 

 


- 글: 김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