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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29호][관점들] 능력주의와 교육권 강의 후기

29호 [관점들]에는 작년 11월 28일,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 준비한 <2020 청소년활동가 교육과정> 1차, "능력주의와 교육권"의 후기글을 싣습니다. 날맹님이 진행하신 능력주의 강의를 듣고, 능력주의와 관련한 경험을 떠올리며 작성해주셨습니다. 여름님이 써주셨습니다.

 

<2020 청소년활동가 교육과정> 1차, "능력주의와 교육권" 현장 진행 사진 (사진 제공:활기)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음악 수업이 생겨 반 친구들과 음악실에 갔다. 첫 수업시간에 음악교사는 반주자를 뽑겠다고 했고, 나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몇 개월간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이 노래할 때 피아노를 연주하는 반주자가 꼭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교사의 다음 말을 듣고 나서, 뛰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아버렸다. ‘체르니 30 이상 배운 학생만 반주자에 지원할 수 있다며 반주자에 지원하기 위한 조건을 달아버린 것이다. 나는 체르니 30’을 배우기 직전에 가계 사정으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반주자 지원 할 사람 손 들어라는 음악 교사의 말에 손을 들지 못했다. 당당하게 팔을 드는 몇몇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만 할 뿐이었다.

 

억울했다. ‘체르니 30’이 뭐길래, 나는 반주자를 뽑는 자리에 지원조차 하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과 피아노 실력을 겨루어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던 걸까? 비록 체르니 30’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체르니 30’을 배운 친구들 못지않게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으로 칭찬을 받곤 했는데, 이런 내가 열심히 하면 반주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히려, ‘열심히하는 사람들을 반주자로 뽑아야 하는 건 아닌가? 따지고 보면 체르니 30을 배운 친구들열심히 하는 나를 이길 수는 없는 것 아닐까?

 

반주자 사건은 능력주의, 학벌주의에 대한 생각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험이다. 이 사건을 떠올릴 때면 나를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최근 능력주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다르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학벌과 같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름표 같은 것들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비판의 이야기가 커지고 있고, 이런 주장들에서 뻗어나오는 이야기들 중 열심히 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와 같은 말들을 들을 때면 갸우뚱해지곤 했다.

 

만약,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음악교사가 피아노 반주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요라고 말을 했더라면, 나는 피아노 반주자가 될 수 있었을까? 피아노 반주자가 되었더라면, 나는 반주자에 뽑힌 것일까? 내가 반주자가 되었다면, 선발되지 못한 친구들은 모두 내가 반주자가 되었음을 합당하게 생각했을까?

 

한정된 자리에 누군가 합격하고 누군가는 불합격해야만 한다면,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진정으로 정당한 일이 되는 것일까? 모두가 찬성하는 기준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불합격된 사람들의 노고는 누가 인정해주는 것일까? 그들의 시간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으로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강의가 끝나고 나서도 내게 명쾌한 해답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한 문장을 계속 곱씹으며, 강의를 통해 고민을 확장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판단의 차이를 낳는다.”

 

날맹 님께서 강의 중 해주신 이야기다. 어떤 기준에 대해 합의하는 것 또한 사회의 프레임이 될 수밖에 없고, 프레임과 그에 따른 판단은 사회와 그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는 것이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쾌한 해답을 찾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잊고 싶지 않은 것은, 지금 사회에 뿌리박혀있는 능력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고민들 또한 하나의 새로운 프레임이 되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어렵게 고민 해야한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이번 능력주의와 교육권강의를 들으면서도 이 말이 내게 더욱 깊이 새겨진 느낌이다.

 

-글 :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