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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11호]『월경의 정치학』 : 청소년 운동과 여성 운동의 콜라보? 동료를 기다리며

[11호] [덕질(?)들]『월경의 정치학』 : 청소년 운동과 여성 운동의 콜라보? 동료를 기다리며


호야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다른 청소년활동가들과 같이 보고 싶고 같이 나누고 싶은 나의 덕질(?)들을 받는 리뷰코너입니다. 

이번호에는 호야 님이 『월경의 정치학』 리뷰를 보내주셨습니다. 

소개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덕질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활력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인터넷 서점에서 쓱 보고 바로 구매하기를 누르게 만든 마성의 목차.

 



여성주의를 이야기 할 때 내 몸의 경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여성주의로부터 힘을 받는 동시에 나의 경험이 여성주의에 힘을 보태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몸에서 우러나는 경험을 가진다는 것은 사상과 밀착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여성의 몸과 관련한 말할 거리 중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월경'이다. 연애나 섹스가 모든 여성과 관련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월경은 여성 전체와 어떻게든 관련을 맺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든, 하지 않든 말이다. 평생을 비연애인구로 살아온 내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고민이 많은 부분 월경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필연인지도 모른다.

밀도가 다르기야 하겠지만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와 밀접하기에 월경은 '여성과 여성의 몸을 이 세계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의 역할을 한다. <월경의 정치학>은 바로 그 시선을 분석하고 정리한 책이다.

 

월경과 관련한 꽤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진 내게 이 책은 마성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제목과 목차만 보고 후딱 구매해 읽었다. (텤마머니...!) 다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인지 내용면에서의 아쉬움도 크게 다가왔다. 가장 큰 아쉬움은 저자의 연구가 말레이시아에서 진행되어 한국사회 여성 데이터의 비중이 적다는 것. , 이론의 정리와 소개에 핀트가 맞추어져 있기에 저자의 고민이나 현실에 대한 분석이 깊이 있게 실리진 않았다. 그래서 목차를 보고 기대했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은 아쉬움이 있는데, 그 덕분에 역으로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책 내용과 고민 맛보기


책은 총 5장으로 나뉘어 있다. 내게는 1, 2장이 (시작부터ㅋㅋ) 약간 고비였다. 1장에서는 다양한 사회·문화의 월경에 대한 금기와 억압,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한 이론 등을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정말 '소개' 느낌으로 간략히 요약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이후 내용들과 엮여 꾸준히 등장한다. 이게 읽으면 '앞에서 한 얘기 또 하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기가 빨린다. 1장 내용이 좀 어렵다면 대충 넘어가고 뒤에서 계속 만나는 것도 괜찮을지도.

 

2장은 여러 종교에서 월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2장이 힘들었던 것은 한국사회에서 살아온 나의 월경이 이야기되는 방식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가진 월경-월경하는 몸에 대한 관점이 종교에 그다지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2장에는 월경-월경하는 몸을 더럽고 불순하고 위험하다 여겨 피하거나 가둬두는 식의 노골적인월경 터부가 많이 등장하는데, 계속 듣다보면 세뇌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읽으실 때 오염탈트, 불순탈트 붕괴 주의 요망, 끄와앙!

 

3장에 이르러 한국 여성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읽어내기 좋은 주제들이 나온다. 3장은 월경에 대한 지식이 누구의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장으로, "월경은 다만 생식을 위한 것인가?", "월경전증후군 또는 월경전긴장이 질병인가?", "폐경은 실패 중 실패인가?"와 같이 쟁점이 되는 질문들을 담고 있다. 이 질문들은 현재 한국 여성이 마주하고 있는 억압과 월경에 대한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이기에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마주하는 불편함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4장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생리용품의 역사와 생리대 광고의 변천사에 담긴 관점들을 살피고 있다. 생리대 광고는 시대에 따라 모델로 활동적인 전문직 여성이 나오느냐 사회경험이 적은 20대 초반의 여성이 나오느냐, ‘자유, 해방, 활동성을 키워드로 내세우느냐 순수, 청순, 깨끗함을 내세우느냐, 생리대의 사용 주체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초점을 맞추느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초점을 맞추느냐와 같이 월경-월경하는 몸에 대한 관점의 경합을 벌여왔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보면 20대 여성만 월경을 하는 줄 알 것만 같은 광고들로 굳어진 듯하다. 초경을 시작할 즈음의 어린이·청소년이나 완경 즈음의 여성이 모델로 나오는 생리용품 광고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이에 따라여성의 성과 섹슈얼리티를 재단하는데서 발생하는 억압-10대 여성의 성경험에 대하여 문란한, 과 같은 낙인을 찍는 것, 소위 결혼 적령기여성에게 가해지는 너 언제 시집가니?/남친 있니?”의 폭력, 폐경 여성이 여성성을 상실했다고 간주되어 우울감에 휩싸이는 것 등-을 깨부수는 데에서 청소년운동의 관점과 여성주의는 만날 것이다.

, 한국사회에서 생리대를 제외한 생리용품을 접하기는 어렵다. 이를 반영하듯 4장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에도 생리대를 제외한 생리용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이 부분을 공략하는 활동을 만들어보는 것도 해봄직하다. 모든 여성은 어떤 생리용품이 존재하는지를 알고 자신의 몸에 맞는 생리용품을 찾아나갈 권리를 가져야 한다.

 

5장에서는 월경을 마주하는 여성들의 태도를 다룬다. 가장 현실 여성들의 경험과 맞닿기 쉬운 장이었기에 가장 아쉬웠던 장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각 종교에서 월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룬 2장에 할당한 분량만큼 의료, '통증으로 말해지는 월경이 다루어졌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또래 여성들이 월경을 마주하는 대표적인 태도 중 하나가 "자궁년 개새끼!"와 같은 고통에 대한 증오라고 생각한다. 이 표현은 솔직하다. 월경을 평생 겪을 일 없는 남성들에게 월경에 대해 알리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가', 혹은 '이것이 여성에게 유리한 전략일까?' 하는 의문이 늘 남는다. 이는 고통을 해소하거나 월경에 대한 무지에 일침을 놓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월경과 여성의 몸을 대역죄인으로 만들며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재생산 하는 것은 아닐까? , 무월경으로 남 몰래 가슴 앓는 여성들의 존재가 가려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정말 필요한 것은 몸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이 고통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게끔 월경하는 여성을 사회적으로 지지, 지원하는 것이 아닐는지.

 

나는 이런 이야기를 청소년활동가와 함께 나누고 활동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책에 미처 담기지 못한, “현재 이 사회의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월경을 마주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부분은 이렇게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작으로 나는 자신의 월경을 꾸준히 기록하고 집단적으로 아카이빙하는 것을 기획하고 싶다. 거창한 이름은 있지만 동료가 없어 진척이 안 되고 있는 이름하여 <생리 월기-月記/越記-> 프로젝트. 같이 해보고 싶은 분은 동료가 되어주십쇼...! 부디 연락을... ;;)/

 


 

양가성 : 여성과 청소년을 아우르는 키워드


내가 이 책에서 찾은 키워드 중 하나는 '양가성(서로 대립적인 감정 상태가 공존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월경은 '여성성, 생식력, 젊음, 건강, 몸의 정화작용 등'의 긍정성을 띠기도 하나, 동시에 '오염, 원치 않는, ()성애, 수치심, 역겨움'과 같은 부정적 인식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양가성을 "권력이 차이진 두 집단 사이에서 권력을 점한 집단이 권력을 점하지 않은 집단에 부여하는 문화적 통치술"이라 말한다. 월경과 여성의 몸이 양가성을 띠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남성중심사회의, 남성의 이해관계를 위해 쉽게 동원, 조작, 통제되는 몸, 유순한 몸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전략의 결과"이다.

 

"몸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결코 규범이 되는 그 남성의 몸에서 탄생될 수 없기에 남성에게 위협적인 여성의 몸은 남성의 가계를 잇고 새로운 노동력을 생산하는 불가피한 도구이므로 어떤 체제가 되었든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필수적으로 중요한 몸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양가적 인식이 만들어진다. 월경하는 몸은 더럽고 월경하는 인간은 열등하지만 인간 생식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인간 생산 능력 때문에 중요하고 또한 그런 역할을 하고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 비로소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이다. (...) 가치 있기 때문에 보호되어야 한다는 논리에는 항상 양가성이 있다. 동시에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열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보호받고 통제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속된 존재로 머물러야 한다. 여성 몸의 양가성과 그로 인한 여성의 유순성을 강화, 재강화하는 문화적 전략은 가부장체제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 p.238~241 일부 발췌

 

이걸 보며 나는 어린이·청소년 또한 양가성의 통치술 아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청소년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결코 그 규범이 되는 '비청소년의 몸'에서 시작될 수 없기에 비청소년에게 위협적인 '청소년의 몸'은 미래의 비청소년이 되어 사회를 유지하는 불가피한 도구이므로... (...) 청소년은 열등하지만 '장차' 사회 유지에 있어 중요하고 또한 그런 역할을 하고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 비로소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이다." 미성숙하고, 머리에 든 게 없고, 싸가지도 없다고 여겨지면서도 동시에 소중히 보호해야 할, 기특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미래의 꿈나무로 호명되는 어린이·청소년의 존재는 참을 수 없이 양가적이다.

 

저자는 양가성이 권력을 점하지 못한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추구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월경하는 여성이 불결하다 여겨져 종교 행사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월경 터부는 여성을 배제하는 동시에 여성이 종교 행사를 준비하는 노동으로부터 쉴 수 있는 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존 질서를 완전히 붕괴시키지 못하는 상황 안에서 최대한의 여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조작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기에, 가부장제가 강한 사회에서나 약한 사회에서나 여성들이 월경 터부를 강력하게 부정하지 않기도 한다고. 하지만 양가성은 결코 여성이 규범으로서의 지위(그냥 그렇게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지위)를 점하지 못하게 하는 한계 또한 만들어낸다. 저자는 "양가성을 그대로 두고 활용하는 전략보다는 어떠한 의미도 구구절절 붙어 있지 않은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해방적 전략이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으나 책은 이후 한 페이지를 더하고 끝나버린다.)

 

나는 양가성이라는 키워드가 '보호' 그리고 '혐오'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규범으로서의 지위를 갖지 못하는 존재들은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지면서 어떤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거나 어떤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매도된다.(ex- 김치녀와 개념녀, 무서운 10대와 자라나는 꿈나무, 공경해야 할 노인과 나잇값 못하는 노친네의 공존) 양가성의 교묘한 문화적 통치술에 의해 이들은 사회적 무임승차자, 심지어 권력자로 몰아붙여지기도 한다. 여성이 남성의 지갑을 털어가는 존재로 그려진다든지, 아래의 트윗에서처럼 미성년자인 어린이 청소년이 대한민국 4대 권력집단에 속하게 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 이런 귀하신 곳에 누추한 분이...!



 

이 양가성은 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청소년의 인권과 권리 차원에서 이야기 될 땐 공론화가 되지 않다가 청소년에 의한 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터져나오는 것과도 연결될 것이다. 이때 "그놈의 책임 좀 지게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라"라는 외침은 저자가 말한 해방적 전략과 맞닿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아가야 할 길이 명쾌해 보이지만, 양가성을 활용하여 숨통을 트이는 그 이 갑자기 사라지는 게 치명타가 되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나는 어린 딸자식으로서의 양가성을 한껏 활용하여 부모에게서 자립하고자 하면서도 녹록지 않은 자취생활에 대한 심적, 물적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런 생활은 분명 내 온전한 자립에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이 어쭙잖은 딸 노릇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부모의 등골을 최대한 빼먹는 전략은 지금의 노동 현실과 집값, 생활비의 무시무시함 속에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는 틈이 된다. 이것을 포기하면서도 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망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마찬가지로 청소년운동은 어떻게 청소년이 양가성을 이용하여 얻는 현재적 이득보다 매력있는 '권리'로서의 무엇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는 어김없이 기본소득 깔대기가 나와야 하는 건가...?

'우물모임'(청소년운동 한 우물 파기 모임)에서는 나이주의와 보호주의를 주제로 지속적인 토론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나는 여기에서 청소년에게 적용되고 있는 양가성에 대한 청소년운동 나름의 해법을 찾아내기를 기대해본다.

 


 

나가며


아직 내 언어로 잘 말하기는 어렵지만, 청소년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은 꽤나 닮은 부분이 많아서 함께 보면서 촉발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적절히 청소년-여성을 미러링 하면 여성주의를 지지하지만 청소년운동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어필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도 있다. 현재 여성주의가 이슈화되고 '상식'으로 자리잡기 위해 싸워나가는 과정이 청소년운동에게 일종의 롤 모델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성이어서 뿐만 아니라 청소년활동가로서도 여성주의에 촉각을 기울이게 되는 게 아닐까? 더 많은 고민이 촉발되고 공유되었으면 하는 맘으로 글을 마친다.

p.s. 여성주의와 청소년운동의 콜라보레이션을 기대하시걸랑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들어오시라. 같이 얘기 좀 해보자는...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