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점들

[9호] 『4월은 너의 거짓말』 : 선의로 포장된 욕망, 혹은 폭력


[9호] [덕질(?)들]『4월은 너의 거짓말』 : 선의로 포장된 욕망, 혹은 폭력


공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다른 청소년활동가들과 같이 보고 싶고 같이 나누고 싶은 나의 덕질(?)들을 받는 리뷰코너입니다. 

오래간만에 공현이 만화책으로 리뷰를 썼습니다.

소개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덕질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활력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 콩쿨에 나가서 상을 휩쓸던 아이가 있었다. 너무나도 정확한 악보 그대로의 연주로 '휴먼 메트로놈'이라고 불리던 피아노 천재, 아리마 코세이. 하지만 그는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된 피아니스트가 중학교 3학년 봄, 동급생인 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인다. 만화 『4월은 너의 거짓말』(四月は君の嘘)의 초반부 줄거리다. 장르는 음악, 순정(혹은 연애), 성장, 학원물 정도일까? 전 11권 완결이고 한국에는 11권까지 발매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와 있다. 애니메이션은 실제 음악을 들으면서 볼 수 있어서 좋지만 동시에 마음 속 독백이 많은 작품 특성상 연주를 하면서 내내 중얼중얼중얼거리는 대사가 묘하게 거슬릴지도 모른다.

왼쪽부터 사와베 츠바키, 미야조노 카오리, 아리마 코세이, 와타리 료타.





이하 스포일러 있음




사실은 '너를 위한 거'라고?


 이야기 진행의 큰 축 중 하나는 코세이가 연주를 못하게 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다. 코세이는 자기가 연주에 몰두할수록 자기가 내는 음이 들리지 않게 되는 심리적인 병을 앓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막연하게 나오던 그 이유는 몇 권에 걸쳐서 점점 더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묘사된다.


 코세이의 어머니(아리마 사키)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리고 아주 어릴 적 코세이에게서 대단한 재능을 보고 직접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코세이의 어머니는 자신이 중병에 걸리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점점 코세이에게 더 가혹한 방식으로 피아노를 가르친다. 코세이가 친구들과 노는 것도 막고 계속 연습만 시키고 폭력까지 가한다. 한편 코세이도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아픈 어머니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연습에 열중한다.


  코세이의 어머니의 병이 점점 더 심해지고 병원에서 나오지도 못할 무렵, 코세이는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상을 전해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혼자서 피아노 콩쿨에 나가 상을 타온다. 주변에서 "어머니의 꼭두각시", "연주기계"라고 은연중에 비웃고 질투하는 것을 참아가며.


 하지만 코세이의 어머니가 오래간만에 연주를 보러 온 날,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다. 코세이는 오래간만에 어머니가 자기 연주를 본다는 기쁨에 감정과 마음을 담아 연주를 해보였고, 어머니는 콩쿨이 끝난 후 실수를 지적하며 연주회장에서 코세이를 폭행한다. 그동안 계속되는 연습과 학대에 쌓여 있던 감정이 폭발한 코세이는 어머니에게 "너 같은 거, 죽어버리면 좋겠어."라는 폭언을 한다.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는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혼자 습관처럼 콩쿨에 나간 코세이는, 어머니의 환영이 보이면서 죄책감 속에서 자기가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연주를 망친다. 코세이는 그 이후에도 피아노를 계속해보려 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증상은 사라지지 않고 콩쿨에도 나가지 못하게 된다.













  이야기 중반부, 코세이가 어머니가 좋아했던 곡을 치면서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장면에서, '코세이의 어머니가 왜 그랬는지'가 코세이의 현재 스승이자 코세이 어머니의 친구였던 세토 히로코의 회상으로 설명된다. 코세이의 어머니는 자기가 죽은 후에도 코세이가 잘 살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과 불안감에,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연습하는 습관을 들이고 최대한 피아노 기술과 실적을 남기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병석에서 중얼거린다. "내 보물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세토 히로코는 '아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불안과 원통함 때문에 그녀도 필사적이었다.'라고 평가한다.








  비록 작중에서 이렇게 코세이 어머니의 사정을 설명하지만, 코세이 어머니의 행동을 '그래 그것도 다 코세이를 위한 마음에서 나온 거였어'라고 용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의 한 유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코세이의 어머니는 코세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며 폭력을 휘두르고 코세이를 몰아붙였다. 그것은 마치 코세이를 생각하는 '선의'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실상은 자신이 얼마 안 남은 삶에 조급해하는 마음, 자신이 죽기 전에 코세이를 최대한 성장시켜놓고 안심하고 싶어 하는 욕망일 뿐이다. 죽기 전에 자기가 할 일을 다했다는 안도감이나 성취감을 얻고 무언가를 '남기려는' 몸부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코세이의 어머니에게 코세이는 "내 보물"이었지, 한 명의 독자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다시 연주를 하면서 코세이는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낸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를 '용서'하는 과정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코세이의 트라우마의 핵심은 어머니에게 "죽어버리면 좋겠어."라고 한 것에서 비롯된 죄책감이었기에 그 죄책감을 떨쳐내고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을 거라고 받아들이면서, 마음 속의 어머니의 환영과 작별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어머니로부터 부정당하고 몰아붙여지고 두려워하던 자신을 스스로 긍정하고 자기가 연주를 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용서하면서 코세이는 상처에서 벗어난다. 거기에는 세토 히로코가 코세이에게, "죽어버리면 좋겠어"라고 말한 순간은 코세이가 어머니로부터 한 명의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독립한 순간이며, 코세이의 어머니도 그것을 기뻐했을 거라고 말해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함께 가자는 약속, 마음을 전하려는 욕망



 코세이의 어머니가 코세이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학대한 결과, 코세이는 결국 깊은 상처를 받고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을 회복하고 나아가는 데는 또 다른 만남이 필요했다. 바로 미야조노 카오리와의 만남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미야조노 카오리는 코세이에게 어머니 외의 음악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코세이는 카오리를 사랑하게 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사실 미야조노 카오리도 병에 걸려 있고 곧 죽을 거라는 암시가 계속된다. 코세이의 입장에서는 어머니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카오리도 아픈 와중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코세이를 밀어내고 콩쿨 연습이나 하라고 다그치기도 하지만, 결국 코세이와 카오리는 다시 한 번 협주를 하자는 약속을 하고 코세이는 무대에 서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 연주도 코세이가 카오리를 대신하여 연주를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마지막 연주, 카오리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코세이가 연주에 임할 수 없게 하지만, 코세이는 다른 친구들과 카오리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연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코세이는 바이올린을 켜는 카오리의 환상을 보며 함께 연주를 해나간다.


 카오리는 코세이에게 연주를 요구하면서 그것이 코세이를 위한 거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코세이의 연주를 듣고 싶어서라고 하고, 자기를 위해 반주를 하라고 요구한다. 내 곁에 있어 달라고 하고, 나를 지탱해달라고 울면서 부탁한다. 그것이 코세이를 떠났던 콩쿨 무대에 세우고, 함께 연주하는 기쁨, 그리고 자신만의 연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동의 박수를 받는 기쁨을 알게 한다. 카오리와 코세이 사이에 있는 것은 걱정과 불안감, 그리고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조바심이 아니다. 서로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는 욕망, 함께 연주하고 싶다는 욕망, 다른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이처럼 코세이의 어머니와 카오리가 같은 상황에서 보이는 서로 다른 모습들이 이야기의 중요한 지점이고, 부모에 의한 비대칭적인 관계가 코세이를 연주할 수 없게 했지만, 동료이자 친구이자 연애의 대상인 카오리와의 관계가 코세이를 다시 연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어머니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코세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고 상처에 작별을 고했다. 그 과정은 카오리와의 만남, 그리고 계속 곁에 있는 츠바키와 료타 등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코세이 어머니의 불안과 달리 코세이는 잘 지냈다. 오히려 그 불안이 코세이에게 가장 큰 족쇄가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자식/학생을 위한 거라는 '선의'로 포장된 폭력을 경고하고, 그걸 극복해가는 함께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힘을 보여주는 서사로 기억에 남는다.



 카오리와 코세이가 마지막에 어떤 결말을 맞는지, 그리고 왜 제목이 "4월은 너의 거짓말"인지는,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하며 수수께끼로 남겨두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