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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10호]『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 : 나를 설명할 이름을 다르게 찾기 위해서


[10호] [덕질(?)들]『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 : 나를 설명할 이름을 다르게 찾기 위해서


밀루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다른 청소년활동가들과 같이 보고 싶고 같이 나누고 싶은 나의 덕질(?)들을 받는 리뷰코너입니다. 

이번호에는 밀루님이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리뷰를 보내주셨습니다. 지난번의 인터뷰 기사와 함께 보셔도 알찰 것 같네요. 

소개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덕질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활력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한 살을 먹는 것과 한 학년을 지나는 것이 같은 셈이던 날들, TV든 책이든 한결같이 요구했다.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도전하고, 포기하지 말고, 용기 있는 모험을 하라고.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모순된 요구를 받았다. ‘너희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방해하는 것들은 포기하고, 머리카락 길이부터 양말 색깔까지 옥죄는 규칙을 다만 규칙이므로 지키고, 만만한 학생의 책상을 발로 차는 교사라도 다만 교사이므로 존경하라고 했다. 1번부터 5번에 답이 없어도 내가 생각하는 6번은 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도전과 끈기는 칭찬해마지 않았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 단 학교 담장과 등하굣길은 벗어나지 말고.’ 이런 말과 같았다.

 

한동안 참고 지켰다. 주 5일 밤 9시까지 남아 자습할 수 있는 동아리에 들 정도였다. 반배치고사 이후 두 번째로 본 시험에서 전교 5등을 했다. 사교육도 받지 않아서 당시 한참 유행을 타던 ‘자기주도학습’의 모범적인 예로 꼽혔고 교사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후로 성적은 곤두박질이었다. 교사들의 관심도 적어지고,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게 공부와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어졌다. 학교 담장을 넘고 싶어서 새가 부러웠고, 등하굣길이 너무 지루해서 멀리 돌아서 다녔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매일 밤 열시까지 꼼짝없이 붙잡히고, 휴일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고등학생은 결코 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그만뒀다.

 

‘그 나이’에 ‘대학생’이 아닌 삶을, 사람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다른 삶에 대해 상상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분명히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중략) '아, 정말이지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다 대학생이구나, 나는 이 그룹에 속하지 않는구나. 나는 다른 길에 서 있구나.’ 그래서 때때로 부럽기도 했다. 그냥 ‘평범하게’ 대학교를 다니는 내 생활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면 나를 설명할 쉬운 이름이 생길 텐데. -85쪽, 난다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나를 설명할 이름을 잃어 버렸다. 그것도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당연히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이름’을. ‘학교 안다녀요’라고 할 때마다 그럼 뭐하느냐 꼬치꼬치 캐묻다가 더러는 학교 적응 못한 애로 치부하고 넘어가버리는 피로한 만남이 반복되었다. 학교를 그만둘 무렵 참여하기 시작했던 청소년인권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직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라고 물었다. 사실 해서 벌어먹고 살 수나 있을지 모를 일이라서, 결국 나도 스스로 되묻게 되었다. ‘또 뭐하지? 인권교육을 나갈까? 기술이라도 배울까?’

 

설령 그렇더라도,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 거야’ 따위의 근거 없는 믿음으로 나를 속이면서 사는 것보다는, 힘들더라도 그 불안을 직시하고 사는 게 조금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나 힘들어, 너도 힘들어? 그러면 어떻게 해볼까?’ 같은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그래도 약간은 더 마음 편하더라. - 68쪽, 어쓰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 선언>은 20여 명의 대학거부자와 대학입시거부자들이 함께 쓴 책이다. 대학거부는커녕 수능 공부도 해본 적 없는 나인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글쓴이들의 삶은 내 삶과 결국 같았다. ‘어느 한 새벽 문득 찾아오곤 하는 참을 수 없는 그 감정들’을 추스르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보편적인 이름을 거스르고 덧씌워지는 편견에 맞서는 삶을 겪음으로서.

 

생각해보면 대학에 들어간 사람, 대학을 거부한 사람 중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구조에 살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내 월급보다 많은 이익을 내야하고,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지 잘려나간다. (중략) 모두가 빈곤을 불안해하며 자신을 옆 사람보다 더 예쁘게 포장하려는 그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내가 살기 위해 낭떠러지로 다른 사람을 등 떠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안전그물을 설치하고 낭떠러지를 없애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62쪽, 아리데

 

다른 청소년활동가들과 입버릇처럼 ‘연금복권’을 이야기하곤 한다. 달마다 누군가 조건 없이 돈을 준다면 독립/이사를 할 것이고, 지역에 거점공간을 둘 것이고, 얼마는 시민단체에 CMS를 하고, 라면만이 아니라 다양한 맛있는 것을 먹고, 그런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은 활동과 알바를 번갈아하며 버텨내는, 한달살이 마냥 불안한 삶이었기에 더욱 절절한 바람이었다.

 

만약 우리의 노동으로 지탱되는 국가가 조건 없이 모두에게 생계비를 지급한다면 어떨까? 내가 기대고 있고 훗날 나에게 기댈 수밖에 없을 가족들과, 내 한 몸 챙기기도 가쁜 나의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계비만으로 살 수는 없으니 임노동을 계속 하겠지만, 지금처럼 삶의 대부분을 바치고 인격을 깎아 낮추어야 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니, ‘청소년활동가’라는 이름을 ‘또?’라는 되물음 없이 나의 직업으로 댈 수 있을 것이다.

 


대학거부자인 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지지와 응원을 바라지 않는다. 지지와 응원은 결국 자신의 문제로 깊숙이 끌어들이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파이팅” “힘내세요” “지지합니다” “응원합니다” 등은 관조자의 목소리일 뿐이다. (중략) 나는 사람들이 대학거부의 문제를 자기 삶의 문제로 끌어들이기를 원한다. -53쪽, 호야

 

결국 이것은 우리의 문제다.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거나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었거나 갖추지 않았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나라는 한 사람에게는 가치가 없고, 내가 가진 능력과 그 능력이 창출할 수 있는 이익에 따라 나의 가치가 매겨진다 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것이다. 나는 이 자체로 존재가치를 지녔으며, 이미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정의하는 능력과 쓸모 있는 사람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평가를 거부하는 것이다. 가진 힘이 약할수록 쓸모없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속박될 수 없는 세상이기에 더욱 더.


 

2011년 투명가방끈을 시작으로 운동이 더 크게 만들어진다면, 운동이 없었다면 거부자가 수 없었던 사람들이 거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낙오자나 별종이라고 불렸을 사람들, 이름이 없던 사람들이 스스로 거부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 개개인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교육과 사회 체제에 잘못이 잇는 것이다, 라고 외칠 때 우리의 선택은 정치적 사건이 되고 운동이 되고 거부가 된다. -295쪽, 공현


 

내가 학교를 도망쳐 나오려 할 때 청소년운동이 거기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 도망침을 ‘철없이 하는 탈선’이라고 말할 때, 청소년활동가들이 내 선택을 지지했다. 그들이 좋고 그들과 공유하는 생각들이 좋아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라는 단체에 남았다. 그래서 학생이라는 이름을 벗은 대신 청소년활동가라는, 남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훨씬 마음에 드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 있으며 나에게 이름을 지어준, 이 운동에 감사하다.

 

등하교길, 출퇴근길을 벗어나 문득 불안해하는 사람들, 담장 안에서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고민하는 사람들 모두가 청소년운동을, 또 투명가방끈을 만나길 바란다. 그렇게 이 운동이 커졌으면, 유명해졌으면, 주변에 당연해졌으면 좋겠다. 부적응자, 실패자로 이름 붙여진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도록. 그 이름이 ‘거부자’가 되었건 ‘활동가’가 되었건, 서로를 만나고 지지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