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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14호][리뷰]『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를 읽고


[14호] [덕질(?)들]『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를 읽고


준영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다른 청소년활동가들과 같이 보고 싶고 같이 나누고 싶은 나의 덕질(?)들을 받는 리뷰코너입니다. 

이번호에는 준영 님이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리뷰를 보내주셨습니다. 

소개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덕질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활력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2016년 9월, 학습시간 줄이기 국회청원 기자회견을 마치고 갓 출간된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를 받았다. 


청소년 운동 단체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아무 기자도 오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다. 기자 없는 기자회견을 많이 해온 활동가들은 기자와 방송국 카메라가 있고 셔터음이 들리는 기자회견을 더러 어색하게 여기는 게 사실이다. 학습시간 줄이기 국회청원 기자회견은 국회 브리핑룸에서 진행돼 말하자면 ‘어색한’ 기자회견 중 하나에 속했다. 어쨌거나 기자회견에는 기자가 오는 게 맞는 거고 국회 브리핑룸의 기자들이 학습시간 줄이기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운동은 나름대로 오랫동안 한 운동이고 서명도 많이 모였고 이슈화가 되겠지 하는 생각하며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기대했던 것만큼 기사가 쓰이진 않았고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반응도 별로 없었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청소년 인권 이슈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또 청소년 운동 단체들이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 겠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들른 단체 사무실에서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를 단숨에 읽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길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랑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 인간의 기준에서 죽은 호랑이는 산 속 호랑이들 중에서 그저 원 오브 뎀. 죽어서 그냥 그런 가죽밖에 안 되는 것. 반면 사람은 중요한 것. 중요한 존재의 이름에는그 고유성이 있고 그것이 역사를 만든다. 그러니까 결국 가죽을 남기느냐 이름을 남기느냐의 기준은 거칠게 말하면 이 사회가 그것을 주목할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여부이다. 주목받을 이유가 없다면 죽어서 호랑이가 된다. 실은 요새 호랑이 멸종위기동물이라 호랑이만도 못할 수 있지만 어쨌든. 


물론 죽은 사람의 이름은 사람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자기는 죽어서 이름을 남길 만할 가치가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이 몰라줘서 이름을 남기지 못할 것 같으면 직접 그것을 쓰면 된다. 이건 여담인데 죽어서 이름 몇 글자까진 아니어도 물음표는 남긴 곳이 있다. 각설하고, 사실 죽은 뒤 이름이 안 남겨질 것 같고 역사로 남지 않을 것 같으면 자기가 직접 쓰면 된다. 사람들이 몰라줘서 그렇지 사실은 되게 중요한 것이 라면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기억하고 기록하면 된다. 생각해보면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존재는 원래 유명 하니까 죽어서 이름을 써줄 다른 사람이 있는 건데 없으면 망하기 전에 자기를 기록하면 된다. 조금 아이 러니컬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는 스스로를 기록함으로써 스스로가 기록될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된다.



장광설을 늘어놓았는데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1)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의 발간은 고무적이며 2) 다른 청소년활동가나 청소년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어서들 빨리 읽으시라, 는 것이다. 

                                        

1)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의 발간은 고무적이냐면


앞서 횡설수설 말했듯이 이 책은 기억되고 기록되고 정리될 만한 가치가 있는데 사실 누군가 선뜻 나서서 하지는 않았던 운동사 정리작업을 두 활동가가 맡아서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인 공현은 2014년 활력소 소식지에서 한윤형의 『안티조선 운동사』를 리뷰하며 “한윤형이 자신의 정치적 활동의 시작이 된 운동을 총정리해낸 것은, 나 개인적으로는 좀 부러운 일이 기도 하다”고 썼고, 또 사회운동이 “어떻게 진행되다가 ‘실패’했는지, 그런 기록을 담은 책은 많지 않다”며 책의 가치를 어느 정도 높게 평가했다.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를 읽고 생각해보건대 저자 공현은 2014년에 자신이 부러워했던 일을 스스로 해낸 셈이다.) 물론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는 ‘총정리’까지는 아닐 수 있겠지만, 그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어딘가에 흩어져 있었던 “현실을 바꾸려고 했던 청소년들의 잊힌” 운동과 그 주인공들을 연결하고 “발굴하고 기억”(155쪽)한 결과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또 청소년운동이 그간 별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고, 또 본 책 나정훈의 평처럼 청소년운동은 “쭉 발전하기보다는 나선형으로 비슷 비슷한 고민들과 시행착오들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커”(35쪽)져 운동의 성장의 궤적을 추적하기 어려운 데 그 운동들의 과정과 지나간 운동의 주체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역시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는 높게 평가될 만한 책이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이라는 책의 서문 중 일부를 잠깐 인용해본다. 

                                                                            

   2016년 4월 28일, 민우회가 주최한 김현미 선생님의 강의인 <시간을 달려서: 한국의 페미니즘과 세대>에서 선 생님의 말을 받아 적던 중이었다. “우리 여성들에게 계보가,” 뒤에 이어질 말은 당연히 ‘없으니까’여야 했다. 나는 스스로를 언제나 계보 없는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생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고향이 없는 사람의 방랑'이라는 구절을 정 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말은 ‘존재한다’였다. 여성에게도 계보학이 존재한다고! 이어진 말이 예상을 빗나간 순간의 당혹감으로부터 출발한다. 계보에 오를 수 없는 이들이 모여 만들어 낸 계보가 있다면 찾고 싶었다. ... 나는 왜 [페미니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가? 청산리 대첩, 갑신정변, 살수대첩, 차티스트 운동, 증기기관의 발명, 사라예보 사건, 2월 혁명... 정규교육을 받았으니 싫든 좋든 꾸역꾸역 밑줄을 치고 머릿속에 집어넣었기에 파편으로 나마 역사 지식이 존재하는데 왜 모르는가? (하략)                                                                                                                                                      

청소년 운동도 여성 운동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계보가 없다고 생각되는데… 사실은 있다. 나이가 어림을 근거로 한 부당한 억압과 인권 침해에 저항한 운동들의 계보-역사가 있다. 다만 묻혔거나 아무도 정리를 안 해서 찾기 어려울 뿐이다.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도 뭐라고 해야 할까, 계보-쓰기라는 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그 계보 속에서 청소년 운동의 “경험과 역사가 전수”(318쪽)될 수 있도록. 



2) 다른 청소년활동가나 청소년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원래 구술사 작업물들이 보통 그렇긴 한데) 우선 재미있고 또 시간을 초월하는 연대감 비스무리한 걸 느낄 수 있어서다. 예컨대 책은 학생연합에서 활동했던 장여진과의 인터뷰에 들어가며 “과거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래된 창고 속을 뒤적이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단편 적인 기사나 들은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몰랐던 이야기를 끌어낼 때면 마치 새로운 유물을 발굴해 내는 것같다. … 새로운 사실을 들으면 두근거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은 비슷한 감정이나 공통 지인 들에 대한 화제를 만나서 같은 시대를 사는, 청소년운동을 경험한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69쪽) 


다른 이유는 운동의 역사를 읽는 게 얼마간은 활동에 실용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귀감이라고 해야 할까 타산지석이라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뭐 둘 다 있는 것 같다. 가령 3장(‘상처투성이 첫걸 음이 남긴 것’)을 읽으면 조직의 회원 멤버십 관리 등에 대해 숙고해 볼 지점이 있다. 또한 4장(‘부당함은 본능이 먼저 알지요’)도 읽고 생각해 볼 지점이 좀 있다. “그땐 운동을 앞뒤 재지 않고 했으니까요.” … “박정훈은 비록 자신이 그렇게 앞뒤 따지지 않고 ‘객기’를 부려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평가했지만, 그의 존재와 활동들은 다른 학생들에게 나름의 자극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104쪽) 


뒤에 내가 참여했던 운동에 대한 파트를 읽으면 개인적으로 복잡다단한 심정이 들지만… 어쨌든 다른 활동가 분들에게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를 읽기를 강력히 권한다. (읽어라 두 번 읽어라.) 



* 여담


- 제목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이 책은 청소년 운동을 거친 인물의 역사와 청소년 운동의 역사를 모두 포괄한다. 특히 비교적 지난 시대, 현재는 청소년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루는 1부와 2부의 경우, 잠시간 청소년 운동과 인생의 궤도를 함께했던 이들의—일종의 ‘후 일담’ 같기도 한데—이후의 변화된 삶을 짚어보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한 내용도 담고 있다는 것이이 책의 특징이며 장점이겠지만, 사실 제한된 인터뷰 시간과 지면 때문에 이 책이 ‘운동사’—2010년 이후 현재 나름대로 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들 말고, 학생연합이나 학복회 같은 비교적 덜 정리됐고 흩어진 운동사들—를 깊게 다루지는 못하고 있다는 측면도 있다. 이 책을 책망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등으로 성기게 정리된 계보에 정밀한 분석 및 해석과 풍부한 자료들을 덧대어 보완하는 등의 이후의 청소년 운동사 정리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나도 그런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 둘.) 

- 알라딘에서 이 책에 대해 제일 먼저 100자평을 쓴 사람이 “무슨 책이든 그렇겠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 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라는 말을 써두고 싶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지루한 책일 것이다. 사실 원래 활기에서 리뷰를 써줄 것을 부탁받고 리뷰를 쓸 때 알라딘이나 예스24 평에 역시 업로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어차피 청소년운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읽지 않을 터이고 읽는다면 누가 강제로 읽으라고 숙제를 내준 그런 경우일 텐데 그렇다면 굳이 세일즈를 위한 번지르르한 리뷰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편하게 읽고 느낀 바를 썼다. (그래서 글이 횡설수설할지라도 이해해 주시길. 생각해보면 많은 신문 칼럼의 꼭지 이름이 ‘XX의 횡설수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