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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5호][사는 이야기] 이렇게 재밌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활동이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2018년부터는 활력소 준비팀(청소년운동기록모임) 멤버들의 편집자로서의 권한으로(?) SNS 등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글을 싣습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현재 편집 멤버인 치이즈, 난다에게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에서 활동하는 윤달 님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글을 쓰기가 힘들다. 사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요즘 며칠째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위티 사무실에 안 간 지 일주일은 된 것 같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나는 정말 힘들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보고 싶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티가 너무 좋아져 버렸다.

 

사진: 윤달님 제공

 

내가 위티를 좋아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여성주의적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여성주의적인 공동체는 없다는 것을 염려하며,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점이 정말 멋지다. 우리는 어떤 점이 서로 다른지, 어떻게 그 다름을 존중해야 우리가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고민한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경험이 권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을 고민한다. 앞으로는 더 나아가 그런 무수하고 소중한 고민을 일상적으로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위티에서 활동을 하면서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냥 하면 되는 것들도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너무 커다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무기력해진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버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내가 ‘청소년 활동가의 사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써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해 아직도 확신을 못 했기 때문일 것이다.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능력이 적은 게 당연하지만, 그런 나를 마주하는 게 두렵다. 사람들이 나에게 커다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잘해야만 할 것 같고, 내가 못하겠다고 했을 때 괜찮다고 해줄 것을 알고 있지만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내게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걸까. 내 주변이 온통 다 대단한 사람들이어서 폐 끼칠까 봐 걱정되는 게 큰 것 같다. 맨날 하라는 것을 하고 그것을 못 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협박을 받다가 자율적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가 조금은 어색한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다니면서 ‘못하는’, ‘능력이 없는’이라는 형용사를 혐오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문제를 나열하고 나니 정말 쓸데없이 힘들어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조금이나마 감이 잡히는 듯하다. 최근 평가회의에서는 상근하지 않는 활동가 또는 학교 안 청소년 활동가가 장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 논의했다. 부담하는 일의 양을 줄이는 등의 이야기를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 중요한 일을 맡아도 편하게 천천히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는데. 내가 중요한 일을 맡으면서 그랬기 때문이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자꾸 일을 뒤로 미루는 게 문제였지, 분명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나는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무엇보다 나의 상태를 인식하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문화가 중요한 것 같다.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나눌 수 있는, 조금은 모자란 나를 마주할 수 있는 활동이 나는 정말 좋다. 활동은 사회생활, 특히 학교생활을 통해 얻은 나의 능력주의, 나이주의, 성차별주의적인 모습들을 하나하나 부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언젠가는 모자란 나도 긍정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 곁의 모자란 사람들과 같이 행복해지고 싶다!

 

 

- 윤달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