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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25호][관점들] 청소년인권활동가를 위한 역량튼튼 교육 후기

25호 [관점들] 에는 지난 2019년 11월 23일~24일, 1박 2일 동안 진행된 '청소년인권활동가를 위한 역량튼튼 교육' 후기를 싣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지 3년 이내의 (신입)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나누고 활동가로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자리, 활동에 꼭 필요하지만 쉽게 배울 수 없었던 실무를 조금이나마 익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기획한 행사입니다. 역량튼튼 교육에는 약 20여명의 청소년인권활동가 그리고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이 함께했는데요, 후기글은 경남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시는 수경님이 보내주셨습니다. 

 

 

 

11월 23일에서 24일, 1박 2일 동안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가 마련한 ‘청소년인권활동가를 위한 역량튼튼 교육’에 다녀왔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민이 뚜렷하게 정리되어서 기대했던 목적을 달성한 자리였다. 각별히 기억에 남는 내용과 내 느낌을 중심으로 남긴다.

 

사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주최 측이 교육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받았다. 이제껏 써 본 글과 써 보고 싶은 글의 종류를 질문한 결과, 많은 참가자들이 성명, 논평, 기자회견문과 같은 글을 써 본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대답한 참가자들과 나의 활동 연차가 비슷하거나 내가 훨씬 적었는데도, 나는 성명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글을 써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삶의 경험은 나이에서 비롯된다는 류의 말을 비판해왔는데, 정작 활동의 경험은 연차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있던 나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물론 그것은 주로 하는 활동의 성격이 다른 까닭도 있겠다. 또 성명, 논평, 기자회견문, 발언문, 발제문, 토론문, 기획안, 안건지 등의 글쓰기를 경험한 활동가와 대부분의 글을 경험하지 못한 활동가가 분리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각 모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반적인 경험의 양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그 이유가 활동 기간의 차이는 아닌 것 같고, 같은 활동을 하지만 어떤 기회들은 특정 활동가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얻었던 기회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였다(그럼에도 활동가마다의 능력이 있고, 앞에서 말하기, 글쓰기 등의 특정 능력은 활동판에서 자주 요구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활동을 비롯해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고 성장을 했다면, 그건 자신의 힘으로만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영향이 나를 스치고 간 흔적이 모여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것은 많은 것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활동가로서의 능력과 성장을 잘 축적하면서, 조직에 남기고 또 동료들에게 나누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인권활동가 글쓰기 가이드북>에서 발췌한 글쓰기 전략과 몇 성명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여기서 제시한 전략들이 나중에 글을 쓸 때 도움이 많이 되겠다 싶어서 정리해두었다.

쉽고 평범한 말

쉬운 말이라고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식, 정보, 이론만이 아니라 감정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사상은 역사가 진보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상만으로 인권이 진보한 것은 아니다. 사상과 더불어 동시대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글들이 만나 진보한 것이다. 우리가 쓰는 글은 지식, 정보, 이론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떤 정치적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질문하게 만들기

서로 주고받을 생각이 없으면 설교문을 쓰게 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가상의 독자와 주고받는 상상을 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이 사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여기까지 읽었어. 다음에는 무엇을 알고 싶을까? 무엇이 궁금할까?”

 

만약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때는 멋있는 문장이 아니라 질문을 연상하면서 쓰자.

토론과 빨간펜의 힘

사람들이 이 글에서 무엇을 궁금해 할까 주고받는 연습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조직의 토론과 빨간펜의 힘이다. 일상적으로 토론하고 서로에게 빨간펜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직문화가 서로 성장하는 데에 가장 큰 힘이 된다.

성명, 논평, 기자회견문

이런 기준으로 다시 보기

글에서 전하고 싶은 마음과, 글의 말하는 위치를 고민한다.

이 사건을 대하는 인권의 원칙을 분명히 제시한다.

누가 쓴 것인지 분명하고 고유성이 있어야 한다. ‘베끼고 싶은 문장이 있는가? 아무데나 인용해도 이어지는가?’를 고민한다(보도자료의 기능).

분노에 치우친 글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 들어오기 힘들다.

불필요한 비웃음과 비난만 하다보면 누구보고 들으라는 건지 모호해진다.

잘 모르는 의제에 대한 글일 경우 : 자료요약과 정리가 핵심이다. 기자의 요약을 기대하지 말자. 이 글이 당대에 가장 사회를 잘 보여주는 기록물로 남을 것을 염두에 두자.

농담이 칼보다 강하다. 예) CBS에 대한 청와대의 소송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2014.05.15). : 잊힐 만하면 CBS를 때려줌으로써 권력과 언론의 긴장관계가 늘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청와대의 세심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 그는 “우리가 남이가?” 하고 싶을지 몰라도 우리는 남이다.

결론의 부담

“좌시하지 않겠다”를 버리자. 늘 똑같을 필요가 없다(+우리는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과 연대로의 초대면 충분하다. 우리는 대안 제조기가 아니다.

개인적/구체적 책임을 상사하게, 조직적/구조적 책임을 균형 있게 : 책임을 최고 권력자나 구조적 모순에 돌리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허무하게 쓰이는 글일수록 상투적이다. 결론의 부담을 버리고 조금 더 자유로워지자.

 

성명서에 초점을 둔 내용이지만, 여러 글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인 것 같다. 이런 전략을 시선으로, 본인 혹은 우리 조직이 이제껏 썼던 글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외에 또 어떤 전략이 있을지 이야기해보는 자리를 가지면 글쓰기 역량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서로의 글쓰기 팁을 공유하기도 하고, 여러 모임에서 그런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계획서가 마련되어도 참 좋겠다.

 

사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능력주의, 보호주의, 나이주의에 대한 강의를 들어가면서, “잘하는 사람이 계속 하는 게 효율적이다”라는 문장을 비롯해 여러 키워드를 두고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다른 것 중에서도 위의 첫 키워드에서 맴돌게 되는데, 이를 둘러싼 생각들이 기록해두고 곱씹을 만한 의미가 있었다.

 

- 잘하는 사람이 계속 하는 게 일의 결과를 따졌을 때 효율적인 것은 분명하다.

당장은 잘하는 사람이 계속 하는 게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교체성이 빠른 청소년운동의 특성상 한 사람이 계속 똑같은 일을 맡게 되고 그 일을 한 사람만 할 수 있고 잘하게 되면 그 사람이 운동에서 나갔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에게 하나의 일이 집중되는 건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이지 않다.

조직이 어떤 가치에 기준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겠다. 진행(결과)의 효율인지, 조직(구성원의 성장 등)의 효율인지.

‘잘하는’ 사람이라는 건 뭘까? 좋아하면서 결과가 좋지 않아도 잘한다고 할 수 있고, 싫어하면서 결과가 좋은 걸 보고 마냥 잘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 후의 강의도 좋았는데, 집중을 못한 탓에 기억에 남는 게 많지 않다. 마지막에 청소년인권을 침해하는 상황과 발언을 이야기하면서 이와 비슷한 처지를 공유하고 있는 약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끝난 뒤에 진행자 님이 마무리로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인권침해와 억압은 연결되어있다. 그 말은 서로의 삶이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정체성은 단일할 수 없다. 뭉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는 것이다”

 

이 교육을 다녀오고 지금까지 계속 어딘가 설레는 구석이 생겼다. 프로그램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런 자리를 만드는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다. 활동이 아니라 활동가의 실존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그 고민을 하나로 엮고, 사회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상상력이 첨가된 판을 짜는 것, ‘인권교육’의 세상을 처음 접한 뒤로 또 짜릿한 느낌이었다. 이 자리를 마련한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를 비롯한 많은 활동가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들이 지속하고 있는 고민과 이야기가 청소년운동, 세상을 바꾸는 모든 운동 진영에서 존재감 있게, 멋지게 이름 붙여지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거기에 나도 함께할 것이다.

 

 

- 글: 수경(조례만드는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