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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24호][관점들]“어쩌다 청소년인권활동가” 집단상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는 지난 7월 총 4회차의 ‘청소년인권활동가를 위한 집단상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며 부딪히는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며, 활동가들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후, 참여자 중 일부가 다시 모여 참여 소감과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 작성: 쥬리

 

<회차별 프로그램>

7월 10일 - 비정상/비주류로 살아가기: 우리가 놓친 것들

7월 17일 - 다른 길: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7월 24일 - 무능력: 나는 충분한가?

7월 31일 - 세상은 크고 운동은 작을 때: 그래도 다시 한 번

 

청소년인권활동가를 위한 집단상담 프로젝트 "어쩌다 청소년인권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며 부딪힌 고민과 미래의 불안들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회차 및 프로그램 소개) 본 프로그램은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가 주최하고 인권재단 사람이 지원합니다.

 

 

<어쩌다 청소년인권활동가 -집단상담 프로젝트> 참여 소감은?

 

A: 온전하게 나로 말하는 법, 현존하며 듣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전에도 심리상담을 받아 봤는데, 이번 프로그램이 가장 좋았다.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복기하기보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B: 다른 참여자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아쉬웠던 건 청소년인권운동과 직접 관련된 고민은 충분히 나누지 못했던 거 같다. 오히려 개인적인 진로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는 하다. 시간이 좀 더 충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C: 프로그램상 4회차 중 회차별로 각각 주제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주제들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많이 못 나눈 것 같다. 예상보다 참여 인원이 많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참여하면서 깨달았던 건, 내가 생각보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기를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까 있는 그대로 다 말하기가 어려웠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서 배운 기법들, 예를 들면 ‘두 팔의 비폭력’ 같은 것들이 앞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내 실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고, 단체 안에서 다른 활동가들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D: 더 깊은 이야기를 차후에 나눌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느낌의 시간이었다. 나는 상담 프로그램 이후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A: 이 시간을 통해 다른 활동가들의 생각과 내 생각의 차이점,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쉬고 있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길 나눌 수 있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나왔는데, 좀 더 활동과 관련된 이야기로 좁혔으면 더 좋았겠다.

 

D: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듣는 연습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들려오든 가치 판단을 하거나 평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사실 운동하면서는 모든 것을 평가해야 할 때가 많다. 평소의 태도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의미 있었다.

 

E: 나는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2, 3년 밖에 안 됐지만, 그동안엔 이런 자리가 없었다. 활동가들의 복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다들 건강하게 활동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

 

C: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겪는 심리적인, 개인적인 고민을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했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활기가 앞으로 계속 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비정상·비주류처럼 느껴질 때

 

C: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것이 인지도가 너무 낮고, 활동가라는 직업 자체도 생소하게 여겨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꿈’ 이라고 하면 바로 어떤 직업을 가질지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직업 중에 청소년인권활동가나 사회운동활동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류에서는 빗겨나는 것으로 취급되는 것 같다. 밖에서,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정도가 적어서 그런 게 아닐까.

 

F: 예전부터 ‘명함’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않으면 뭐 어때’ 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마음가짐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건지도 늘 불분명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다.

 

C: 최근에 동창을 만났는데 동창이 “우리나라에도 불쌍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네 좋은 일 한다”라고 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무엇을 하는 건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A: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활동가로서 자긍심이 더 생겼다. 이전에도 장래희망에 ‘청소년인권 전문가’라고 적었었다. 사람들이 “그게 뭐냐” 물어봐도 “너 이거 몰라?”라고 좀 더 뻔뻔하게 얘기했다. 주변 사람들이 “나는 그런 일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인데.”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F: 병원이나 미용실 같은 데서 처음 보는 사람이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뭐라 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할까봐 위축되고 그래서 그냥 “대학생이요” “취준생이요” 대답할 때는 비참한 느낌도 든다.

 

D: 나는 오히려 저를 대학생으로 소개하기 싫어서 활동가라고 소개해왔다. 나도 한동안 내가 비정상이란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활동가들이 좀 특이하지 않나. 다른 사람들이 다 괜찮다고 하는 것에 안 괜찮다고 하고, 남들 웃는 거에 안 웃기다고 하고. “그래, 내가 비정상이야” 하고 마음먹기가 오래 걸렸다.

 

C: 내가 하는 운동이 좀 더 사회적으로 알려지면 좋겠다는 마음, 청소년인권운동이 무엇인지 내가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활동을 해왔다.

 

A: 사회가 요구하는 똑같은 삶이 너무 재미없어 보인다. 남들은 유머라고 하는 폭력적인 상황에 내가 웃지 않을 때, 자신에게 큰 안도감이 든다. 내가 남들처럼 저거에 웃었으면 실망스러웠을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

 

E: 내가 비주류적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양가적인 느낌이 든다. 본가에 가면 부모가 “저쪽 아들은 이번에 뭐가 되었다더라” “그쪽은 근데 또 하다가 망했대” 이런 얘기들을 한다. 듣다보면 지긋지긋하다. 그런 세계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 비주류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 좀 회의적인 감정도 든다.

 

F: 학교 다니면서 친구를 못 사귀었다, 활동하느라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친구를 사귈 자신도 없었다. 친해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야 하는데, 이 운동에 대해 이해받을 거란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제 와서는 학교 친구를 사귈 걸 그랬나, 아쉬움도 든다. 같이 갈 친구가 없어서 축제도 한 번도 못 간 게 슬프기도 하고.

 

D: 비주류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선호와 취향이 다 비주류는 아닐 거란 생각도 든다.

 

 

다른 길을 고민했던 순간들

 

A: 내가 상근활동가가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상근자라는 역할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고, 그렇다보니까 고민이 된다. 안정적인 상근자리도 없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상황 상 활동가들이 한 가지 역할만을 하기도 어렵다.

 

E: 만약 내가 고등학교를 계속 열심히 다니고 대학을 갔다면 어떻게 살게 됐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하지만 결국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에 제과·제빵 자격증을 땄다. 다른 길을 가려면 지금도 갈 수 있다.

 

F;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서 상근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원사업 심사를 받고 있다. 만약에 선정이 안 돼서 상근자를 둘 수 없게 된다면 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직업을 가지기 위한 준비를 한 게 없다.

 

C: 예전에 악기 연주를 전공으로 하려고 준비했었다. 가끔 아쉽다. 청소년인권운동을 계획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어쩌다보니 하게 됐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대부분 직업 선택을 그렇게 하지 않나 싶다.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어쩌다 보니 시작을 했는데 하다 보니 마음에 들고 잘해보고 싶게 되고 그런 것 같다.

 

G: 사실 지금 여기 와 있는 게, 부모에게는 자격증 시험 준비하러 도서관 간다고 하고 온 거다. 나는 사실 이렇게까지 활동을 빡세게 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지금도 활동가로 살겠다고 확정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어떤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참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서, 어떤 식으로든 운동에 참여할 것 같다. 이제까지도 늘 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해서 만족한다.

 

 

무능력에 절망했던 순간들

 

C: 활동가는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E: 학교 다닐 때 성적이 굉장히 좋았다. 그때는 성적이 좋으니까 내가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처럼 대우받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활동을 시작하고 보니 내가 가진 역량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엑셀이나 워드도 할 줄 몰랐고, 너무 무능력하다 하는 자괴감이 빠졌던 적이 있다.

 

F: 개인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운동의 상황이 역량을 키우기 어려운 여건인 게 사실이다. 역량을 키우려면 같이 일하고 배울 수 있어야 하는데 청소년인권운동 단체들은 안정적인 상근자리가 없거나 혼자 상근을 하니까. 엑셀이나 워드 같은 건 강좌 듣거나 책 보면서 할 수 있는데, 그런 개별적인 기술 말고 운동에 필요한 역량이라는 건 책 보고 강좌 듣는다고 알 수 없는 게 많아서 막막함에 계속 부딪혔다.

 

B: 활동 경험이 적으면 역량이 적은 게 당연하다. 능력의 유무 자체보다 중요한건 사람들이 평가나 비판에 너무 취약하고, 결과물에 대해서 수정 요구를 받으면 힘들어하곤 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 학교에서 항상 평가를 혼내는 식으로 하니까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H: 나는 오히려 활동을 하면서 평가나 비판을 받지 못할 때 혼란스러웠다. 예전에 발언이나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했었는데, 피드백이 없었고 알아서 하는 식이었다. 청소년 당사자니까 그냥 발언하고 말을 한 것만으로 대견하게 느끼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A: 평가하는 위치, 평가받는 위치가 고정된다는 느낌이 든다. 능력이라는 개념을 탈피하고 싶다.

 

F: 활동을 더 오래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 피드백 하는 게 부담스럽다. 가르치려 든다고 생각할까봐. 그러니 더 입을 닫게 되고 소통이 어렵고 답답한 게 쌓인다.

 

C: 경험이나 활동연차에 따른 차이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이유

 

B: 요즘 번아웃이 자주 찾아온다. 운동하다보면 승리보다 패배가 더 많다. 활동을 계속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누군가는 활동가들의 상호 지지를 얘기할 수도 있을 거고, 운동의 정당성이나 비전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을 거고.

 

E: 운동을 지속하는데 이유가 너무 명확한 것도 오히려 힘들지 않을까.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을 왜 하냐고 물어보면 명확하게 “돈 벌려고 한다” 그러는데, 그런 것도 좀 좌절스럽지 않을까.

 

D: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울해진다곤 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사실 살아가는 목적이나 이유를 잘 생각 안 한다.

 

A: 계속 화가 나서 운동을 하는 것 같다.

 

F: 이런 운동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데 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나라도 해야지 뭐, 이런 마음인 것 같다.

 

C: 나는 요새 좀 오기와 자부심이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E: 특정 활동가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멋있게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본 사업은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인권프로젝트-온)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