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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3호][사는 이야기] 지각과 성실함_학교와 등굣길이 무지갯빛깔이라면 나도 한 성실하겠다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2018년부터는 활력소 준비팀(청소년운동기록모임) 멤버들의 편집자로서의 권한으로(?) SNS 등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글을 싣습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현재 편집 멤버인 치이즈, 난다에게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조례만드는청소년'에서 활동하는 하지 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지각과 성실함_학교와 등굣길이 무지갯빛깔이라면 나도 한 성실하겠다

 

 

글: 하지(조례만드는청소년)

 

 

한창 학교가기 싫어서 지각할 때 “성실해야 사람들이 너의 말을 잘 들어주고, 너의 성실함을 검증받으려면 지각을 하면 안돼!” 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정확히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이랬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짜증이 나서 한 시간 내내 지각과 성실함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했었다. 내가 낸 결론은 그들은 서로 관련이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아래는 그때 적어뒀던 글이다.

 

지각은 성실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각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장소 혹은 약속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거다. 그 장소 혹은 약속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라도 지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성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 장소에 대한 열정은 없지만 '성실함'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저 의무감에 지나지 않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의무감. 의무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의무감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성실하다'고 칭할 수 있다면 그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순종적인' 사람인 게 아닐까?

 

성실함이 신뢰의 기준이 된다면 우리는 '성실함'의 의미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가 정말 불성실한 것인지, 순종적이지 않은 것인지, 그 곳에 열정이 없는 것인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성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따라서 내가 지각을 하는 이유는 내가 불성실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지금 학교에 대한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고, '성실함'이란 타이틀에 대한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각하면 불성실한거고 불성실한 사람은 신뢰를 잃을 거다, 신뢰를 잃으면 너의 주장을 아무도 듣지 않을 거야’ 라는 말에 대해 주장을 내는 것에 대한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각을 하는 이유는 학교에 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오기 싫다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가득한데 집을 나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데 내 마음을 어르고 달래서 겨우 겨우 온 시각이 그 시각인건데 내가 얼마나 힘을 냈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꾸 더 힘을 내라고 한다. 성실함과 신뢰를 위한 등교라면 내 안에 큰 동기부여가 없는 한 계속 지각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