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
서울학생인권조례개악대응, 청소년노동자 사망, 역사교과서, 청소년의 성 실태 조사 등
(2014.01.01 ~ 2014.03.29.)공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청소년운동 단체들이 발표한 성명, 논평, 기자회견문 등의 입장을 모아서 전합니다. 활동가들이 언론에 발표한 글 등도 전합니다. 일일이 모든 단체들을 찾아보지 못하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청소년운동 메일링으로 온 소식, 제 눈에 띈 것들을 위주로 정리하겠습니다. 혹시 추가되길 바라는 게 있으면 알려주시면 언제든 반영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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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행동 이반스쿨,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등 [기자회견문] (2014.01.08.)
서울학생인권조례 함부로 개악마라!
- 너는 언제 한번이라도 시행한 적 있었더냐!
서울시민의 주민발의를 통해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공포 2주년을 앞두고 있는 이때, 서울시교육청이 조례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민의 힘으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 보장의 책무를 서울시교육청에 부여했건만, 교육청은 그 책무를 이행하기는커녕 대법원 소송을 핑계로 조례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 결과 서울학생인권조례는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조례의 효력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이번엔 조례의 기본 취지와 내용을 크게 훼손시키는 개악안을 입법예고하며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한 본격적 행보를 시작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학교생활에서 학생의 인권을 최우선적으로 최대한 존중하고 보장하기 위해 만든 조례다. 그런데 교육청 개악안은 학생인권을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갖은 이유만 갖다 대면 함부로 제한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이미 표기된 구체적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함으로써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잔혹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 과연 학생인권 보장의 법적 책임을 부여받은 교육청이 할 일인지 의심스럽다.
교육청 개악안은 ‘교육상 필요’에 의해서라면 학생의 인권을 학칙으로 제한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지난 수십 년간 학생인권은 교육적 필요나 학생지도라는 명분으로, 학교 명예나 질서 유지라는 명분으로 자의적으로 제한당해 왔고, 그에 대한 사회적 반성의 결과물이 바로 학생인권조례였다. 교문 앞에서도 인권은 멈추어선 안 되며, 인권을 보장하는 바탕 위에서 교육이 이루어질 때 가장 교육다울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교육의 틀을 짜기 위한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였다. 그럼에도 교육청 개악안은 구시대의 유물을 버젓이 들고 나와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취지를 압살하려고 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의 개악이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이 함부로 제한되는 구실이 될 것은 자명하다.
차별금지 사유에서 애초 언급돼 있던 임신출산,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삭제된 것 역시 놀랍기 그지 없다. 기존 조례에 명시돼 있던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하는 것은 해당 학생에 대한 차별은 허용된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차별금지 사유에 명기된 열거 조항들은 역사와 관행 속에서 해당 사유를 이유로 한 차별들이 횡행하였기에 특별히 그 차별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차별에 대한 정의 조항에도, 서울조례에 앞서 제정된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도 똑같은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교육청은 적극적 권리 실현의 지원 대상이 되는 소수자 학생의 범주에서도 성소수자 학생을 제외시켜 버렸다. 이는 인권의 차별없는 보장이라는 인권의 대원칙을 위배하는 것임은 물론,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차별을 오히려 조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미 학생의 기본권으로 확인한 두발자유조차 교육청 개악안의 표적이 됐다. 학생의 머리카락이 어떠하든 그것이 누구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인가. 개악안은 소지품검사의 대상과 범위까지 확대했다. 사전 통보만 하면 불특정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몸뒤짐을 가능케 하겠다니, 교육청은 학생인권의 시계를 유신시대로 되돌리려는 것인가. 학생인권옹호관의 독립성과 인권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포함됐던 조항들도 교육감의 인사권과 정책결정권을 해친다는 명분으로 잘려나갔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옹호관 조례를 대법원에 제소하여 지금껏 옹호관을 임명조차 하지 않아 학생인권침해사건이 있어도 독립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왔다. 그러면서 학생인권옹호관을 교육감의 예속 기구로 삼을 근거나 챙기고 있는 것인가.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교육을 열망하는 시민입법의 소중한 결실인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지금껏 교육부와 교육청의 방해로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한 채 표류해왔다. 게다가 지난 한 해 동안 두발단속과 체벌, 언어폭력과 같은 학생인권침해 사례가 성행하고 학내 벽보 게시 등 평화적으로 의사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가 폭력적 지도와 징계 위기에 처한 사례들이 속출했다. 그럼에도 교육청은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학생인권조례를 홍보하여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처럼 조례를 제대로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은 학생인권을 존중하는 교육을 만들 의지가 없음을 만천하에 고백하는 꼴이 아닌가.
학생인권은 여전히 더 많은 보장과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문용린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은 수많은 학생들의 자발적 운동과 서울시민의 주민발의, 서울시의회의 민주적 의결을 통해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즉각 멈춰야 한다. 교육감의 인권 감수성이 곧 학교의 인권수준을 결정한다. 차별과 인권침해를 용인하는 학생인권조례안을 입법예고한 교육감에게 서울교육을 맡길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악 저지를 위해 온힘을 다할 것이다.
2014년 1월 8일
무지개행동 이반스쿨,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강북교육연구모임, 교육공동체 나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관악동작 학교운영위원회협의회, 노동당 청소년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 서울 교육희망네트워크, 서울 녹색당,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 시민모임 즐거운교육상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정의당 서울시당,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청소년알바노조(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역모임,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서울학부모회, 학벌없는사회,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희망의우리학교
무지개행동 이반스쿨,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등 [성명] (2014.01.16.)
반인권적 폭언 및 폭력으로 토론회 참여자 및 토론자들을 위협한 극우단체 회원들.
폭력을 방치하며, 사실관계조차 왜곡하는 토론자로 토론회를 파행으로 이끈 서울시교육청.
토론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악시도 토론회.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아닌, 인권침해와 폭력의 문제이다.
극우단체의 폭력과, 서울시교육청의 문제행동에 대한
올바른 보도와, 서울시교육청의 사과를 촉구하며.
1
월10일, 약 일주일전 진행된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악안에 대한 토론회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보수단체들은 토론회
시작부터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라!”, “여기가 통진당 행사냐?”라고 고함과 막말을 퍼부으며 참가자들에게 모욕과 위협을 가하며
토론회 진행을 방해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해결방식은 폭력행위에 대한 경고와 조치가 아니었다. 교육청의 담당자는
시간관계상 생략하였던 애국가 1절을 부르도록 하였고, 1절 제창이 끝나자 이번에는 4절까지 모두 다 부르라고 계속해서 진행을
방해하는 그들을 강력하게 제지하기는커녕, “죄송하다.” “잘못했다.”, “다음에는 그렇게 하겠다.”라는 식의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토론회는 약 15분간 지연되었다.
그 이후 토론 시간에도 극우단체들의 폭력적이고 무례한 언행은
멈추지 않았다. 첫 토론자인 학생참여단 김수경씨가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교육청을 비판하자, 극우단체들 회원들은
“아가리를 찢어버리겠다.”, “공부나 해”, “저런 버르장머리를 봐라.”라며 야유와 폭언을 해댔다. 이 과정에서 나이가 적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차별적 발언과 하대가 반복되어서 심각한 언어폭력이 행해졌다.
반면, 극우단체 회원들은 ‘교총’과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토론자들의 발언에는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학생인권조례 폐기하라”라고 구호를 외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역시 너무 심해서 토론회가 계속 지연되어 수 차례 자제를 요청했을 정도였다. 그들은 자기주장을 크게 외치는 데만 관심이
있었지, 다른 주장을 듣고 토론을 하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서울시교육청의 토론자 선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네 번째 토론자로
나온 이경자씨는 “학생인권조례가 곽노현의 작품이다. 정치조례를 폐지해야 한다. 학생인권위원회 등은 좌파가 자리를 차지하려고 만든
것이다. 예산 낭비다.”라며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지와 편견만을 쏟아냈을 뿐,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토론을 하지
않았다. 교육청이 기계적으로 숫자를 맞추려다가 토론자로서의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사람을 부른 건 아니었나 의심스럽다.
이
경자씨 뒤에 이어진 학생인권위원회 배경내씨의 토론 때 극우단체 회원들은 더더욱 큰 폭언과 비난을 쏟아냈다. 급기야는 “다리 꼬지
말고 풀고 앉아라!”는 등 토론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인신공격의 소음도 이어졌다. 그 뒤에 발언한 김성기 협성대 교수도 장내가
소란해서 이야기를 못하겠으니 조용히 해달라고 호소할 정도였다.
자유발언에서 보인 그들의 행태는 더욱더
가관이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토론인데도 별다른 연관성이 없이 전교조 등의 단체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으며, 동성애가 에이즈
확산의 원인이라는 등 사실관계가 맞지 않은 소수자 차별적 발언을 계속 내뱉었다. 그러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발언을 하려고
하면 웅성거리고 야유를 보내며 발언을 방해했다.
그 과정에서 토론회 진행과 사회자를 무시하는 행태도 역력했다.
사회자가 교사 발언자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했는데도 교사가 아닌 최우원 교수가 발언권을 얻어서 발언을 하고, 발언자가 단상 쪽으로
나와 서서 발언을 하려고 하자 사회자가 자기 자리에서 발언하라고 요청했으나 전혀 듣지 않았으며, 주제와 상관없는 발언이 이어지자
사회자와 참가자들이 중단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완전히 무시했다.
사회자의 진행 역시 미숙하거나 편파적이었다.
사회자는 학생 발언을 두 명 모두 학생인권조례에 부정적인 입장만 듣고 넘어가려고 해서 참가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면서도 최우원
교수 등이 사회자의 진행을 무시하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정상적인 진행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항의를 무마시키기 위해 학생인권조례에 긍정적인 학생의 발언을 들었으나, 이미 이때는 장내는 어수선해질 대로 어수선해졌고
사회자는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마음밖에는 남지 않아서 계속 발언을 빨리 끝내라고 재촉했다. 주최 측인 교육청은 토론회 진행
자체를 방해하고 참가자들에게 폭언과 폭력 등을 휘두르는 극우단체 회원들을 통제할 마음이 없거나, 통제할 수단이 없는 듯 보였다.
이처럼 토론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극우단체 회원들이 안하무인식으로 행동하여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자, 분노한 참가자들 일부는
준비해왔거나 즉석에서 쓴 작은 피켓을 들고 조용히 침묵시위를 했다. 그러나 이처럼 행사 진행을 별반 방해하지도 않는 침묵시위에
대해, 극우단체들은 과민반응을 보이며 욕설을 퍼붓고, 위협을 가하고, 피켓을 빼앗아 파손하고, 책자를 휘두르는 등 폭력으로
덤벼들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X년” 등의 욕을 하고 때리는 시늉을 하거나 실제로 손을 휘두르며 다른 사람들을 공격했다. 일부
시민들은 극우단체 회원들의 폭언과 폭력에 눈물까지 보였다. 결국 토론회는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고, 경찰이 진입하여 장내를
정리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을 그 토론회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모두 다 지켜보았다. 하지만 토론회가 진행된지
1주일이 지나도록 서울시교육청이 섭외한 토론자의 문제나, 극우단체들이 막말과 무례함과 폭력 행위로 토론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라고 다루며 그 당시 극우단체들의 폭력에 거의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었단
다수의 참여자들까지 공범인 양 묘사한 기사들이 다수였다. 적어도 극우단체들이 사회자의 진행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언어폭력,
차별적 언행, 때로는 물리적 폭력까지 휘두른 사실은 보도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단체들은 자신들의 사이트에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토론회를 무산시켰다는 등, 명백한 거짓말을 게시하고 있다.
극우단체들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학생인권 보장과 차별금지, 인권교육이 왜 필요한지 말해주었다. 성소수자와 청소년 등에 대해
소수자 차별적 발언들이 난무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폭력으로 위협받던 그 토론회 현장의 경험은 인권 보장과 인권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우치게 해주었다. 최소한의 인권의식이 없다면 토론과 대화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언론이 당시 상황을 기록한 자료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면밀히 취재하여 제대로 된 기사를 쓰기 바란다. 우리는 왜곡 보도한
언론과, 폭력행위를 방조한 서울시교육청에게 토론회가 난장판 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참여자들 중
하나로서, 학교+너머는 서울시교육청과 행사에 온 극우단체, 그리고 언론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서울시교육청은 사실관계조차 왜곡하는 등 부적절한 토론자 초청 사과하라!
2. 서울시교육청은 극우단체의 반인권적인 폭력행위에 대한 미온적 대처 사과하라!
3. 청소년, 성소수자,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토론자들에게 막말, 욕설 등의 도를넘는 폭얼을 퍼부은 극우단체 회원들은 공식적으로 사과하라!
4. 언론은 극우단체의 폭력과 서울시교육청의 문제있는 행동으로 토론회가 파행된 경위와 배경에 대하여 객관적 사실대로 보도하라!
2014년 1월 16일
무지개행동 이반스쿨,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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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강북교육연구모임, 교육공동체 나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국제엠네스티 대학생네트워크,
관악동작 학교운영위원회협의회, 노동당 청소년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 서울 교육희망네트워크, 서울 녹색당,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
시민모임 즐거운교육상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정의당 서울시당,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청소년알바노조(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역모임,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서울학부모회, 학벌없는사회,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희망의우리학교
청소년성소수자 1232인 [선언] (2014.01.14.)
우리의 존재를 지우지 마라!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을 반대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1232인 선언
지난 12월 30일, 서울시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들과 시민들이 직접 나서
서울시민 1퍼센트에 달하는 10만 명의 주민발의 서명을 받고, 정당하게 의회를 통과하여 만들어진 조례인데도 문용린 서울교육감이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개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개정안 내용이 더 가관입니다. 두발 및 복장규제와 소지품 검사 등 인권 침해
행위를 다시 개별 학교장의 판단 하에 부활시키는 조항이 들어갔으며, 심지어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조항들, 성소수자 청소년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항들을 삭제해버렸습니다. 이미 차별금지 조항에 들어가 있던 걸 삭제한다니, 청소년
성소수자는 차별받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2년이 되어갑니다. 성소수자
차별금지조항과 권리보호조항들이 학생인권조례 속에 버젓이 있음에도 학교 안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차별을 받고, 동료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으며,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느라 힘들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차별당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서울 교육청 인권센터에
문의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학생인권조례 속 성소수자 권리보장 조항들이 학교에서 실제로 적용되도록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용린 교육감은 임기 내내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서 지켜지는 것을 방해해왔습니다. 하물며 이제는 아예 학생인권조례를
뒤바꾼다니요? 우리는 학생들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다음 선거 때 모을 동성애혐오자들의 표만 계산하는 교육감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한국 땅에서,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당하고 차별받으며 살아온 청소년 성소수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일들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시 교육청과 문용린 교육감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분명 이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고 싶고, 진정한
나로 살아가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개정 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속 성소수자 인권보장 조항들이 제대로 빛을 발하며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학생인권조례 속 다음 조항들을 꼭 지켜내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1절/제5조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제4절/제14조
학생은 가족, 교우관계, 성적, 병력, 징계기록, 교육비 미납사실, 상담기록, 성적지향 등의 개인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10절/제28조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빈곤 학생, 장애 학생, 한부모가정 학생, 다문화가정 학생, 외국인 학생,
운동선수, 성소수자, 근로 학생 등 소수자 학생이 그 특성에 따라 요청되는 권리를 적정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논평] (2014.01.08.)
교과서, 니들 맘대로 좀 하지 말라고!
- 역사교과서 논란, 학생 참여와 교육의 다양성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교학사에서 만든 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있다. 이 교과서는 학술적 오류와 부실한 출처 등의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 의도적으로 이승만 등 특정한 정치인을 과대포장하려 했다거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덜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점, 국가에 의한 학살 사건을 축소 서술했다는 점 등으로 욕을 먹고 있다. 일단 학술적인 면에서 기준 미달의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정부가 이를 제대로 검증하기보다는 진영적 계산에 따라 특혜를 주고 ‘밀어주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어이없고 걱정스러운 사건이라 할 것이다.
1. 학교운영위원회, 교육과정결정 등에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
이미 여러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이 역사교과서를 비판하고 있다.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에는 시민단체, 교사, 학부모, 학생 등이 강력히 항의하면서, 채택을 철회하는 학교들도 늘어나고 있다. 수원 동우여자고등학교, 전주 상산고등학교처럼 학생들이 나서서 대자보를 붙이고 행동을 하며 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이처럼 교과서 채택 등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지금껏 교육과정을 결정할 때는 교실 수업의 단계에서든 국가적인 정책 결정의 단계에서든 학생들의 참여가 배제되어 왔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라는 구도 속에서 학생을 수동적으로 교육을 받는 존재로만 아니면 기껏해야 서비스의 ‘소비자’로만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은 교육활동에 참여하여 함께 교육을 만들어나가는 교육의 주체이다. 학생은 자신이 경험하고 함께하는 교육활동에 관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교과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서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교육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며 자신들이 배우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제시하고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울 교과서도 학교가 정한 대로만 따라야 하는 현실,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사각에 방치된 현실에 맞서서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보장, 교육정책 결정 참여 보장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길 기대한다.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학교 자치와 학교 민주주의의 필요성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계속 주장해온 것이다. 교과서 채택을 결정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제대로 민주적으로 운영이 되었다면, 학생들이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면, 교과서를 섣불리 채택했다가 나중에야 문제가 커지는 그런 모습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만이 아니다. 교육정책의 모든 단계에서 학생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할 권리는 중요하게 보장되어야 할 인권인 것이다.
2. 정답 주입식이 아닌, 진정한 교육의 다양성을!
교학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은 너무나 여러 사람들이 말해왔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열거하지는 않겠다. 그중에서 일부 논란들에 관해서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이런 교과서도 만들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교사, 학생, 시민 등이 그 교과서를 비판하거나 교과서 사용을 거부하는 것 역시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함을 뜻한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베트남전쟁 파병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서술하거나 국가의 폭력, 학살 사건을 미흡하게 서술하는 등의 부분은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에 비춰볼 때 강하게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이 대통령과 집권 정당이 다른 교과서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등의 억지를 부리며 한 교과서를 밀어주고, 여러 압력 때문에 교사들이나 학생들의 뜻과 다르게 교과서 채택이 이루어지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그야말로 교육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태이다.
교학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상황에는, 그 서술의 의도부터 정권의 개입까지 문제들이 많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재의 다른 역사교과서나 역사교육들은 그럼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좀 망설여진다. 문제의 뿌리는 학생들에게 ‘교과서대로’만 역사를 배우게 하려는 교육방식 자체가 아닐까? 현재 역사교육은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들을 교사가 가르치는 대로 달달 외워야 하는 방식이다. 입시와 결부되면, 학생들은 교과서가 제시하는 ‘정답’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교육의 다양성은 아무리 교과서가 다종다양해도 확보될 수 없다.
우리는 역사교육을 포함하여 우리 교육이 ‘정답주의’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교육은 여러 가지의 교재와 자료를 활용하며 역사를 읽는 다양한 방법을 익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역사를 학생들의 삶과 현재의 사회와 연관지으며,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석을 나누는 장이 되어야 한다. 좀 더 인권과 평화와 다양성의 관점에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과정이 되어야 한다.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역사 교육을 위해서는, 교과서나 교사의 이념이나 해석 역시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참고 사항이 되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교과서나 교사의 편향성이나 비정치성 문제 같은 소모적이고 답도 없는 논란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입시 중심 교육의 개혁, 교육의 주체로서 학생들의 권리의 보장, 교육 방식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학문적으로 기준 미달인 교과서는 채택뿐 아니라 교과서로서의 인증 자체가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해당 학교의 학생들이 반대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나아가, 우리는 이번 역사교과서 논란이 단지 ‘문제가 심각한 교과서를 퇴출시키는’ 일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정답 주입식 역사교육 방식의 문제, 학생의 교육과정결정 참여권 등에 관해 더 나아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단지 당장 이번에 기준 미달인 교과서를 걸러내는 문제, 또는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를 놓고 여러 세력들이 주도권 다툼을 하는 문제 정도에서 멈추고 말 것이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 학교와 교육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 정치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진정으로 다양성이 숨쉬는 교육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진짜 과제일 것이다.
2014년 1월 8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1618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 등 [기자회견문] (2014.01.21.)
너무나도 '당연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국회와 새누리당에 촉구한다.
2014년 1월 16일, 민주당이 현행 19세 이상인 선거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자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제안했다.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권 연령이 현행인 19세로 낮춰진 이후 거의 10년 만의 선거권 연령에 대한 논의인 것이다.
지금껏 청소년의 정당한 요구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청소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정치적 의제 또한 철저히 비청소년의 관점에서, 비청소년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었다. 대표적으로, '셧다운제'나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통제적인 정책들이 청소년을 옥죄고 있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곧 정치 참여의 주체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청소년의 정치 참여란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선 청소년 선거권 보장 논의의 물꼬를 트는 의미에서 민주당의 제안을 환영한다.
물론 선거 가능 연령이 한 살 내려가는 것을 온전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으로 보기는 힘들다. 단지 한 살 내려가는 것이기에 새로이 선거에 참여하는 청소년 인구가 많지 않고, 청소년 내에서의 비율도 얼마 되지 않는다. 아울러, 선거권 연령은 만 나이로 세기 때문에 18세이더라도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선거권 연령 하향 논의는 '18세'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또한 지나치게 높은 피선거권 연령으로 인해 청소년과 청년은 ‘선택할 수는 있지만, 선택받을 수는 없는’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를 억압하고 있는 피선거권 연령의 하향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회에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의 직접적 당사자인 청소년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감 선거에서의 더 낮은 연령 하향을 제안한다. 교육의 직접적 당사자인 청소년이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교육감 선거에서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은 당연한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너무나도 당연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에 대해 어떠한 논의대상에 조차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늦게나마 민주당의 ‘18세 선거권’ 제안으로 시작되고자 하는 상황에서 ‘청소년은 행위무능력자’라는 새누리당의 궤변 속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실망스럽다. 새누리당에 궤변을 중단하고, 너무나도 당연한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하길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국회와 여야 정치권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2014. 1. 21.
1618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노동당청소년위원회,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교육청소년위원회, 시민모임즐거운교육상상, 인권교육센터 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희망의 우리학교
노동당청소년위원회 [논평] (2014.02.18.)
청소년 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를 중단하고 보호조치를 강구하라!
지난 10일, 울산의 어느 특성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청소년이 현장실습 노동을 하던 중 폭설로 인해 공장 지붕이 무너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지난 달 20일엔 충북 CJ 계열사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었던 어느 청소년이 직장 내에서 동료 직원의 지속적인 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두 건 모두 피해자가 청소년이었고 현장실습생이었으며 참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현장실습생에 대한 착취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까지도 수없이 많은 현장실습생/청소년 노동자들은 초과노동으로, 노동착취로, 그리고 이들을 보호할 제대로 된 법과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이에 어떠한 책임 있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교육부는 ‘현장실습생은 학생이지, 근로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등 망언을 내뱉기도 했다.
현재의 현장실습은 교육과 취업이라는 미명 아래, 청소년 노동자를 싼 값에 부려먹는 것에 불과하다. 어느 누가 이를 교육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교육은 착취에서 비롯되는 그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이를 방관하는 공공기관들의 태도에 분노를 표한다. 지금 즉시 현장실습 노동을 행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적 보호조치를 강구하고, 수없이 많은 현장실습 제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라.
떠나간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이 땅의 수많은 현장실습생들과 청소년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멈출 때까지 노동당 청소년위원회는 함께 할 것임을 밝힌다.
2014년 2월 18일
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성명] (2014.02.17.)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침해 속에 희생된 청소년 현장실습생들을 기억하며
청소년 노동인권에 대해 무관심한 정치권과 교육당국을 규탄하며 제도개선을 촉구한다.
울산 모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A모 청소년이 졸업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울산 북구에 위치한 한 자동차 협력업체에서 현장실습으로 야근을 하는 도중에, 밤 10시경에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공장 지붕에 깔려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평소에도 A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동차 부품을 나르고 교체하는 일을 주로 했으며 때때로 야근을 했다고 한다. 교육부의 현장실습 개선방안에는 근로기준법 상 만 18세 미만 노동자와 동일하게 현장실습 시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게다가 사고 당일 날 대설특보가 발효되어 원청인 현대자동차도 조업을 하지 않았다. 이런데도 해당 업체는 조업을 강행하였고, 결국 사고가 벌어졌다. 결국 이 사건은 명백한 인재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에는 충북 진천군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었던 B모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는 지난 16일에 있었던 회식자리에서 모 직원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유족들은 B씨가 그 전부터도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해당 직원은 지난 12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었다. 현재 수사는 계속 진행 중에 있지만 원인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유족들은 정부부처의 현장실습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현재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의 현장실습을 인정하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는 청소년 현장실습생에게 사업주가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를 강제해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없다. 처벌조항을 담은 개정안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중 대다수는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야간노동 및 휴일노동 금지조항에서 제외돼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정부당국과 시도교육청, 특성화고교 현장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취업률을 강조할 뿐 노동환경 개선과 현장실습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노동착취 근절 노력에는 소홀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현장실습 청소년은 노동자가 아닌 그저 취업률 숫자를 올려주는 수단적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결국 청소년 노동 인권에 무관심한 정부당국과 시도교육청, 특성화고교, 정치권의 행태와 노동착취를 일삼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방치하는 일부 현장실습업체로 인해 청소년 현장실습생의 희생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청소년 현장실습생들의 희생행렬을 당장 멈추도록 국회는 관련 법률을 청소년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신속히 개정하고, 정부당국과 시도교육청, 특성화고교는 청소년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여 현장실습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취업률 위주 정책을 폐기하며 노동인권교육을 현실화하여 실시하라. 현장실습업체는 청소년 현장실습생 노동착취를 전면 중단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라.
2014. 2. 17.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성명] (2014.02.25.)
그 어떤 체벌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 모든 체벌을 금지하라!
- 체벌로 인한 순천 고등학생 A씨의 뇌사 사건에 대하여
2월 18일 아침, 순천 소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청소년 A씨는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30여명의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실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스스로 부딪쳐야 했다. A씨가 머리를 살살 부딪치자 담임교사는 A씨의 머리채를 잡고 A씨의 머리를 세게 2~3차례 벽에 찧었다. 또한 같은 날 오후, 담임교사는 청소시간엔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A씨에게 20여m 복도를 오리걸음으로 걷는 벌을 받게 했다. A씨는 그날 오후 친구들과 저녁에 다니던 사설 체육관에서 몸 풀기 운동을 하는 중에 쓰러져 현재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뇌사 상태에 빠졌다.
학교 측은 뇌사의 원인은 체벌이 아니라며 A씨가 18일 당일 조퇴한 기록이 담긴 출석부를 제시하였으나, 조퇴 기록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사건을 축소 및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족들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였고, 이에 경찰은 “체벌과 뇌사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학생의 머리를 벽에 찧게 한 행위 자체가 교육적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며 22일 담임교사를 입건했다. 언론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앞 다투어 보도했고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이건 너무 심했다”,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다”, “도가 지나쳤다”는 등 체벌은 충분히 있을 수 있으나 교사가 너무 심해서 체육교사가 꿈이었던 학생만 불쌍하게 되었다는 식의 얘기를 하며 분노했다.
굳이 법 조항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등의 행위가 폭력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고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교사/부모/어른이, 학생/자녀/아이를 때리는 행위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교사의 변명과 학교의 책임 회피, 경찰의 입장뿐만이 아니라 이번 사건을 언론을 통해 접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별반 다를 바 없다. 과도한 체벌과 과도하지 않은 체벌을 구분하고, 폭력과 체벌은 별개이며, 체벌을 교육적인 목적으로 교사가 행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과도한 체벌과 과도하지 않은 체벌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체벌은 그 심한 정도에 관계없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폭력과 다를 것 없는 폭력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체벌을 교육적인 목적으로 교사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하는 것은 단지 '교육'이라는 핑계로 폭력을 합리화하는 억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과잉된 체벌'로 이번과 같은 일들이 불거져 나왔을 때, 교사의 권위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 않고 특정한 개인의 일탈이라고만 바라보는가. 왜 학생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학생 집단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면서, 이런 문제는 단지 개인의 문제라고 속단하는가. 이는 마치 '무서운 십대'를 강조하는 기사 제목마냥, 학생은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지만 교사는 그럴 리 없다는 편견에 근거한 판단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권력 차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문제가 되는 개인을 처리하고 덮고자 하는 피상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판단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집중된 교사의 권력을 제도로 규제하고, 더 나아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보다 평등하고 인권적인 관계로 바꾸어나가기 위한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A씨의 사례와 같은 비극이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체벌 금지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하긴 했었는가. 학교 현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체벌을 빙자한 폭력과 학생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이번과 같이 사망 사례가 발생하는 등 자극적이고 뉴스거리가 될 만한 소재가 발생하지 않는 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잖은가. 교육부는 오히려 체벌 금지가 포함되어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려할 때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체벌은 금지하지만 '직접 때리지 않는 형태의 체벌은 허용되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유권해석으로 상위법 위반을 운운하고 학생인권조례 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등 조례 시행을 방해하지 않았었는가. 과연 현재 교육부는 학교 현장에 법적으로 현재 체벌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얼마나 홍보하고 교육하고 있으며, 체벌금지를 정착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한 번 따져 묻고 싶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과잉 체벌'은 일부 문제 있는 교사들의 개인적인 일탈행위라며 넘어간다면 다 되는 일인가.
분명 순천에서 있던 이 비극적인 일은 담임교사와 학교, 그리고 도교육청 모두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젠 당연하게 물어야 할 책임을 묻는 것 그 이상을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폭력으로 학생들과 청소년들을 죽일 것이고 그 때마다 그저 문제된 이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 것인가.
이제 더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도 지겨우니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말한다. 모든 체벌을 금지하라!
2014년 2월 25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기자회견문] (2014.02.26.)
제대로 된 방학 보장을 요구하는 '개학반대' 기자회견문
다음 주면 개학이다. 방학은 학기 중 고된 학습으로 인해 지친 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다. 하지만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제대로 쉴 수 없다. 바로 이름만 ‘자율’인 강제보충학습 때문이다. 강제로 이루어지는 보충수업은 없다는 교육청의 입장과 달리, 개학반대 캠페인에서 수많은 학생들은 ‘쉴 수 없는 방학’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학생이 방학기간동안 보충을 듣지 않을 경우 ‘방학 중 학습계획서’를 작성해야 했으며, 심지어 학교 컴퓨터실에서 강제로 방과후학교 수업신청을 하고, 나중에 신청서를 주며 “지금 듣는 과목에 동그라미 쳐서 내고, 부모님 동의란에 학생이 싸인 해서 지금 내라” 라는 이야기를 담임선생님께서 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학교는 무한경쟁사회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경쟁하고 상대방을 밟고 올라서기를 반복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학이라고 쉬기란 불가능하다. 오히려 학기 중보다 힘들게 학교, 학원, 독서실을 전전해야한다. “방학도 제대로 안 했는데 개학은 무슨 개학” 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무한경쟁위주의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쉴 권리는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
또 다시 개학이다. 학교에서는 똑같이, 청소년들에게 ‘방학에 뭐 했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청소년들은 ‘방학이 있었느냐’고 답할 것이다. 이럴거면 그냥 방학을 하지 말던가. 잘 쉬었냐고 물어보기 전에 잘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2014년 2월 26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천지역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입장] (2014.03.21.)
내뱉는 말을 되돌아보라구! 누구를 위한 핵 없는 세상인건데?
반핵과 탈핵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여러분께,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유에서 반핵과 탈핵을 주장하고 계신가요?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구요?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더 좁혀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하여 반핵과 탈핵을 주장하시나요?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매우 익숙한 구호입니다. “알게 모르게 매일 세슘, 플루토늄을 먹고 사는 내 아이와 가족!!” 3월 20일, 녹색 단체들이 주최하는 탈핵 강연의 홍보 문구입니다. 여기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핵 없는 세상’을 외치는 분들이 ‘우리 아이’들을 호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아이들’은 ‘여러분’과 함께 핵 없는 세상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신가요?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이라는 구호는 아이를 배제한 성인만이 외칠 수 있는 구호입니다. “내 아이와 가족”을 위한 탈핵과 반핵 담론에 그 아이들은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이 스스로를 장애우라 부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이란 문구는 아이,청소년들을 어른들의 탈핵/반핵 담론에 그저 기댈 수밖에 없는 의존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역시 핵 없는 세상을 외칠 수 있고, 있어야 합니다. 반핵과 탈핵을 주장하시는 여러분들 역시 그것을 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반핵과 탈핵을 주장하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이 핵 없는 세상을 곧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탈핵에 대한 강연회를 열고,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이유 아닌가요? 지금, 여기, 여러분과 함께 핵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여러분이 위하며 보호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여러분과 같은 위치에서 동등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왜 계속 ‘아이들을’ 위하려고 하시는 걸까요? ‘핵 없는 세상’을 외치는 분들이 모두 아이와 함께 사는 부모는 아닐텐데,왜 탈핵을 말하는 문구들은 “내 아이와 가족”을 지칭하고 있나요? 저런 수사는 ‘순수하고 보호해야 하는 아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타인을 위한 운동은 크리스마스에만 높아지는 기부율처럼 반짝 하고 지나가는 시혜와 동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대상화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우리는 ‘여러분’, 즉 ‘어른’들에 의해 보호받거나 대변되기를 거부합니다.
2012년 같은 문구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녹색당 사무처장이었던 하승수씨는 위 문구가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 하며 이 표현이 “녹색당 내부에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점을 공유하도록 하겠”다고 공개 답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2014년인 지금도 녹색당은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녹색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녹색’을 외치고 ‘탈핵’을 주장하는 여러 곳에서 우리는 이 같은 구호를 자꾸만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아이’는 함께 동등한 주체로 포함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핵 없는 세상을!”
2014년 3월 21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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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민중의소리」 (2014.01.10.)
[기고] 교과서 논란의 또 다른 측면 - 학생의 권리
학교운영에 학생들의 참여가 있었다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은 어땠을까? <원문링크>
하나.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현재 학교의 근본 문제는,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데 있다.
교칙 제정을 비롯한 전반적인 학교의 운영에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의 의사가 당연히 반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교육관은
학생을 학교 운영으로부터 제외시켜 민주적인 교육의 실천과 실습의 기회를 박탈하여 학생을 학교와 유리시키고 자율적인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교육의 근본 목적을 망각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의 제 1주체로서 학교 운영에 당연히 참여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절차를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현재 각급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사, 학부모, 지역인사만의 참여만이 이루어져 지고 있으며,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의 참여권과 제대로 민주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우리는 지금 무너져 가는 학교와 교육을 살리기 위하여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선언한다. 학생대표는 단순히 참관의 형태가
아니라, 교사, 학부모, 지역인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학교 공동체의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의사결정에
주체적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즉각 교육법규를 개정하여 이를 보장하고, 현재의 학교를 민주화하여 진정한
교육개혁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라는 단체가 발표한 글이다. 제목은 ‘학생의 학운위 참여를 선언한다!’.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내걸고 모였던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2001년에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운동을
전개했다.
최근 역사 교과서 문제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문득 이 13년 묵은 자료가 떠올랐다. 교과서 선정 과정은, 먼저 교사들이
몇 종을 선별한 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교장이 최종 선정을 하게 되어있다. 해당 교과와 학문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사들이 고르고 나면, 학교운영위원회에서는 학부모 등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도록 되어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은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교과서 선정 문제에서 교사들과 함께 가장 가까운 당사자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2001년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주장처럼, 또는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국회에
발의되었던 학생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법률안처럼 학생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학교운영위원회가 마냥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만 해도 학교운영위원회를 제대로 통과하지도 않고 교장이 교과서를 정한
사례 등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여러 학교들에서 학교운영위원회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고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구가
되어버렸다. 학생 대표가 한두 명 참여한다고 해서 학교운영위원회의 현실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가 참여하고 학생들이 교과서 선정에 대해 토론하고 집단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과정이 있었다면,
교과서 선정도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 안한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창문여고 학생들](http://archivenew.vop.co.kr/images/c1e8a000473957b8c5d51542c4c75e0c/2014-01/03123341_CHUL1492.jpg)
3일 오전 서울 강북구 창문여고앞에서 참교육학부모회 등 강북지역시민단체 회원들이 친일, 역사왜곡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채택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 중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안한다고 소식에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한편 창문여고측이 기자회견 직전 학교운영위를 열어 교학사가 아닌 지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기뻐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김철수 기자
둘. 학생의 표현의 자유
다시 몇 년 전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학생에게도 학교 안에서 언론·표현의 자유가 있고, 집회의 자유가 있으므로
이를 보장해야 하고 함부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권고를 했다. 경기도의 어느 고등학교 안에서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던 학생이 허가받지 않은 전단지를 배포했다면서 선도위원회를 열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던 사건,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학내시위를 한 사건 등이었다. 특히 전단지 배포를 가지고 징계를 위협한 경우는 해당 학교 학칙에 거기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선도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전주 상산고등학교에서도,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05년, 학교 안에서 두발자유 주장하는 전단지가 배포되자, 학생부 교사는 의심되는 학생을 불러서 네가 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학교 안에서 나눠주거나 하려면 미리 교무실에서 “검인” 도장을 받아야 하며 마음대로 전단지를 배포하는 것은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강제적인 자율학습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써서 중앙현관 바닥에 붙인 학생에게는, 부모에게 징계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전화를 걸기도 했다. 2006년에는 상산고등학교 인권동아리에서 축제 때 쓰려고 택배로 배송받은 학생인권 관련
배지를 기숙사에서 교사가 중간에 가로채고 전달하지 않아서, 그 배지를 발송한 담당자였던 내가 내용증명까지 보냈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 상산고등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철회를 주장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학교에 의해 철거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토론을 위해서 교과서 2개를 채택한다고 주장한 상산고 측이었기에,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출을 막은 것에 대해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게 되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혀를 찼다. 상산고는 2005년, 2006년의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사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 안에서도 학생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권고를 내리고, 전북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시행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말이다. 만일 상산고등학교와 그 교직원들이, 몇 년 전 학생들에 의해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전단지가 배포되고 대자보가 붙었을 때 여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면 어땠을까? 이번 교과서 채택 문제로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며 의견을 표명했을 때 이를 좀 더 존중하고 학교 측의 말대로 정말 열린 ‘토론’을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2013년 여름에 전북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을 때, 입시교육 말고 그런 소식에도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살펴보았다면
함부로 대자보를 철거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원고 대자보](http://archivenew.vop.co.kr/images/33471878eeb1fa99050130125a1d5b3e/2014-01/03112712_1.jpg)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에 항의하는 동원고 대자보들. 학생들은 3일 오전 7시 15분께 일시에 대자보를 학교 곳곳에 붙였고 곧바로 학교측에 의해 철거됐다.ⓒ동원고 학생 제보사진
셋.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자
살다 보면, 과거를 돌아볼 때 안타까운 일들이 참 많다. 그때 그랬다면 지금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한탄하게 된다든가, 그때
거기에서 배웠더라면 지금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우리 사회가 2001년 학생들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면, 상산고 또는 최근에 대자보를 철거하고 대자보 붙인 학생들을 탄압해서 문제가 된 다른
학교들이 학생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그랬더라면 아마도 이번에 역사교과서 채택 논란에서 많은 문제 부분이 학생들의 참여를
통해 사전에 ‘예방’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상산고나 동우여고 등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었던 학교들의 경우, 학생들이 불필요한
걸림돌과 다툼 없이 의사를 표현하고 학교 안에서 민주적인 토론과 논의의 과정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역사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렇게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내일을 더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의 교양으로서 배우는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역사교과서 논란은, 교학사의
역사교과서가 그런 교양을 학습하기 위한 최소한의 학술적 기준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일 터이다. 일부
우리가 반성해야 할 역사에 대한 불충분한 서술과 현재 집권 정치세력의 노골적인 밀어주기 역시 심각한 문제일 것이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교과서 문제를 놓고서도 우리가 내일을 고민하며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당장 문제가 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게 하고, 검정을 취소시키면 될 문제인가? 애초에 우리의 역사교육 방식 자체가 교과서의 ‘정답’을 암기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면서 민주시민을 위한 교양 교육으로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의 ‘문제 교과서’를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학생들이 교과서 채택을 비롯하여 교육정책 결정 전반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만 학교/교육 민주주의에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이 정치적 문제, 사회적 문제, 자신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을 우리
사회가 보장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일’을 바라보기보다는 국정교과서 도입을 운운하면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새누리당에는 정말 질릴 노릇이다.
교과서 검인정 제도에 따라 다양한 교과서가 있어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니, 자신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논리고 뭐고 내다 버리니까 뭐라고 지적질 하기도 지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할 일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 애쓰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교육이,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애써야 한다. 적어도 학생의 표현의 자유와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면 좋겠다. 그런 태도가, 진짜로
역사로부터 배우는 길일 터이다.
![울산 현대고, 교학사 교과서 채택으로 몸살](http://archivenew.vop.co.kr/images/0de51f21355a1f071e694d6f0a97acd4/2014-01/03101825_1.jpg)
지난 1월 1일부터 울산 현대고 게시판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항의하는 글로 가득차고 있다.ⓒ홈페이지 캡쳐
공현(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참교육실천대회 토론마당 발제문 (2014.01.13)
게임규제와 스마트폰 규제
- ‘중독위험’을 앞세운 통제의 욕망 <원문링크>
“남의 개인정보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막 다뤄져도 되는가?”
2013
년 5월, 트위터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어느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트위터리안이 “남의 개인정보가 소유자가
고3이라는 이유로 막 다뤄져도 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올린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3학년 9반 전원 LOL(리그오브레전드.
유명한 AOS 게임이다.) 계정을 탈퇴 처리할 것이니 억울해하지 말라는 담임 교사의 공지가 칠판에 적혀 있었다.
교사가 학생의 주민등록번호와 그 친권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게임 서비스를 검색하여 계정을 확인한 뒤 이를 모두 강제로 탈퇴
처리하는 행동. 너무나 ‘비정상적인’ 그런 행동이, 입시에 집중해야 할 고3 시기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학교의
현실이 아닌가? 이 사진을 올린 사람이 처음 남긴 질문은, “고3”이라는 자리에 “학생”을 넣어도 별 위화감 없게 와닿는다.
“남의 개인정보/사생활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막 다뤄져도 되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입시 등을 이유로 학생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의 자유를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현재 학교에서는 대개 청소년들의
게임을 직접적으로 규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인터넷게임중독예방법”에는, 만19세미만 청소년들의 이용
게임 종류, 이용 시간 등의 정보를 학교 담임 교사에게 제공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만약 이것이 통과될 경우 담임 교사들은 게임
규제의 주체로 불려나오게 된다. 그럴 경우, 학부모들이 담임 교사에게 “선생님, 우리 얘 게임 좀 못하게 잡아주세요.”라는 부탁을
할까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직접적으로 게임을 대상으로 한 규제가 아니더라도, 게임과 비슷한 구도로
논의가 되고 있는 규제 대상으로 휴대전화(특히 스마트폰)이 있다. 이 역시 ‘중독’을 규제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하면서, 스마트폰을 규제하는 각종 법안, 어플리케이션 등이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규제 역시 게임규제와 마찬가지로 학생의
개인정보, 사생활의 자유 등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들이 많으며, 학교나 수업과 연관 지어서 논의되는 것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강화되는 스마트폰 통제
서울시교육청 등 일부 교육청들은 ‘아이스마트키퍼’라는 어플리케이션을 몇몇 학교들에서 시범운영하고 있다. 이 앱의 기능은 간단히
말하면, 학교/친권자가 학생의 스마트폰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다. 학교용 앱을 사용하면 학교 전체나 학급단위로 교사가 이 앱이
설치된 학생의 스마트폰 이용을 금지시키거나 특정 앱만 허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부모용 앱은 친권자가 설정한 시간에 자녀의 스마트폰
이용을 금지시킬 수 있다. 야간자율학습 때 적용하는 기능도 있으며, GPS 기능과 연동하여 학교 안에 있는지 학교 밖에 있는지를
파악하여 적용할 수도 있다. 앱의 삭제 여부까지도 권한이 있는 관리자가 허용/불허할 수 있으며, 쉬는 시간으로 설정된 시간에도
사용을 금지하거나 특정 앱만 허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됐을 때 대부분의 게임 종류의 앱들은 금지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교육청이 ‘아이스마트키퍼’를 시범 운영하는 것은 전체 학교에 이와 같은 스마트폰 통제 정책을 도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앱은 당연히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다. 이 앱을 개발, 배포하는 기업 측에서는 논란을 의식하여 “학부모 동의를 받고 학생과의
협의를 통해 학생이 스스로 설치하도록 유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의 절차는 당연히 허울 좋은, 형식상의 것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이스마트키퍼’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어플리케이션을 학교가 설치시키려고 한다고 제보해온 인천 모고교
학생은 제보를 하면서 “저희 고등학교에서 깔도록 지시했는데 형식상으로만 동의를 얻지 사실상 반강제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 앱
다운로드 페이지에 달린 사용자 리뷰에는 학생들의 성토가 가득하다. 애초에 학생들의 진짜 동의하에 설치하는 것이라면 삭제 자체를
막는 등의 조치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 사실 ‘아이스마트키퍼’는 신사적인 편이다. 훨씬 악질적인 다른 앱들도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녀/학생의 앱 사용 내역, 인터넷 접속 내역 등을 모두 조회해볼 수 있으며
위치 추적 기능, 앱과 사이트 차단 기능까지 제공한다. - 엑스키퍼, 클래스와 등)
현재 경기도, 광주, 서울
등지의 학생인권조례에서는 휴대전화 이용을 수업시간 등에는 학교에서 민주적으로 결정된 규칙을 통해 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다만 휴대전화의 소지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보장함으로써, 쉬는 시간이나 통학시의 휴대전화 이용을 금지하지 못하게
하는 취지를 가지고 제정되어 있다.(물론 이 또한 쉽게 무시당하고 아침부터 압수/수거하거나 소지를 금지하는 학교들이 다수 있다.)
이는 일정한 타협의 결과로, 애초 학생인권 운동에서는 휴대전화 통제 문제에 대해 학교교육 자체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학교 수업이 학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수업을 받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학생들이
필연적으로 딴짓을 하게 만들며, 40~50분 동안 교사 1명에게 학생 수십명이 모두 집중해야만 한다고 요구받는 상황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었다. ‘아이스마트키퍼’ 등 통제 앱의 보급은, 우리 교육이 근본적 비판에 마주하기보다는, 통제를 통한
현상유지로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 속에서 학생의 사생활의 자유 등이 심각하게 제한당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논란은
형식적이고 강요된 ‘동의’로 피해가려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교육을 학생이 함께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지 않으며 학생을
교육의 주체에서 배제하는 사고방식 역시 발견할 수 있다.
‘공부할 자유’만이 허용되어 있는가?
청소년들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런 극단적인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표면적으로는 주로 ‘중독’ 문제이다. 스마트폰
중독, 게임중독 등을 말을 들고 나오면서, 또 특히 심각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공포를 조장하고 규제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로 의학적으로 충동조절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 받는 수준의 ‘중독’과, 보통의 사람들이나 친권자들이 불만을 느끼는 ‘중독’의
수준에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자.
“10대 이하
청소년 10명 중 4명이 하루 1시간 이상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10대 이하 청소년 10명 중 3명은
모바일게임 유료 결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돼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연합뉴스 2014년 1월 13일자 기사)
40%가
1시간 이상 모바일 게임을 하고, 30%가 유료 결제를 한 경험이 있다는 게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근거가 된다. 좀 이상한 기준이다. 중독성이나 충동조절 장애 등을 보려면 단순 이용시간보다는 이용 양태나 생활에 지장 초래 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교사, 친권자 등)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청소년들이 게임을 많이 하느라 공부를 하지
않는 것,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 등의 모습일 것이다. 이 기사는 그런 사람들의 욕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심각한 사례들 일부를 들고 나온 뒤 두루뭉실한 조사 결과를 가져와서 이용자들 전체를 규제하는 방식은, 마치 심각한 알코올중독의
사례들을 들고 나와서 음주자 전반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정책을 합리화하는 것이거나, 심각한 도박중독의 사례들을 들고 나오면서 포커,
고스톱, 내기 바둑, 내기 장기 등 전체를 규제하는 정책을 합리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도 청소년들에게만 그런 규제가
가해지는 것은 대단히 차별적인 조치이다. 이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유사-과학적 주장도 등장하게 된다.
-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 연수(2104, 01)에서 대구광역시 교육청 배은희 장학사
교사/친권자에게 칭찬을 받거나 성적이 올라서 보상을 받을 때의 쾌감은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 쾌감과 비슷한지 어떤지 묻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학생들의 사생활에 대한 극단적 통제를 가하고, 문화적 권리 등의 인권 침해 소지가 큰 게임규제/스마트폰 규제 정책들은 중독
예방을 내세우며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가 진짜 중독 예방인가? ‘아이스마트키퍼’ 등의 앱이 학교에서 도입된다면, 그
도입을 논의하는 교무회의/학교운영위원회 등에서 주로 이야기될 것은 ‘중독 예방’이라기보다는 교실 권력의 강화(보호?)일 것이다.
다수의 친권자들이 스마트폰 이용과 게임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은, 게임을 하기보다는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또는 청소년들의 삶을 하나하나 통제하고 평등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소유물로 대하려는 욕망. 거기에서 청소년에게 허용되어 있는 것은
오직 ‘공부할 자유’ 뿐이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 사회가 암묵적으로 청소년을 바라보는 합의된 시각은 아닐까. 청소년에 대한
게임규제/스마트폰 규제는 가정에서 인권 문제 그리고 입시와 교육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문제이다. 어쩌면, ‘중독성’ 논란은,
겉핥기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쥬리·루나캣(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인권오름」(2014.02.26.)
[미성숙 폭동] 청소년의 성, 실태를 살펴보다
‘2013 서울시 청소년 성문화조사’를 중심으로 <원문링크>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은 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성적 실천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의제로 활동하기 때문에 현재 청소년들의 실태가 어떠한지는 늘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이가 같은 청소년일지라도 성별과 계급, 성적지향, 지역에 따라, 또 사실은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전체 청소년이
어떠하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들-가 주변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청소년들은 자신을 성적
주체로 인정하고 성적 실천에도 적극적인 경향을 보이지만, 우리가 접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다른 경향을 띌 수도 있다.
특정 집단을 표방하는 운동을 할 때 운동의 주체, 혹은 대중의 정세와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도구는 조사 자료와
통계이다.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에서는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2013년에 서울시 초중고생 3,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현재 청소년의 실태에 대한 감을 잡아보려고 했다. 물론 서울시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이기에 타
지역이나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의 실태는 알 수 없다는 점, 청소년에게 금기되는 성을 주제로 교실 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이기에
답변의 정확성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했다. 또한 통계 결과를 그저 현상으로 읽어내지 않고, 이 현상이 나타나는 사회적
맥락과 억압의 실태를 함께 분석할 필요가 존재 했다.
‘2013 서울시 청소년 성문화 조사’ 결과 요약 및 분석
*원 자료 링크: https://www.ahacenter.kr:46165/data/room/23921
*통계 수치는 소수점 이하는 반올림하였다.
1. 성교육
-초등학교에서 성교육은 72%가 보건 교사에 의해 이루어지며, 초등학생의 43%는 성교육이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초등학생이 경험한 성교육 주제는 ‘성범죄 예방’ ‘사춘기 몸과 마음의 변화’ ‘몸의 명칭과 역할’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 순으로 많았다. 초등학생의 61%는 성지식을 주로 성교육 시간에 습득하였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성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0.7%로 거의 모든 학생이 성교육을 경험하였다. 중고등학생이 경험한 성교육 주제는 ‘사춘기와 2차 성징’ ‘성폭력 예방’ ‘임신과 출산’ ‘피임’ ‘성병 예방’ 순으로 많았다. 남성 중고등학생은 성교육 시간에 배우고 싶은 내용으로 ‘성관계 준비’ ‘사랑/데이트’ ‘성평등’ 순으로 대답하였고, 여성 중고등학생은 ‘성폭력 예방’ ‘사랑/데이트’ ‘임신과 출산’ 순으로 대답하였다.
-중고등학생의 43%는 성교육이 성에 대한 지식을 얻는 통로라고 응답했고, 21%는 성교육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성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성교육의 성지식 전달 통로로써의 기능은 초등학생에게는 과반 이상에게 효과가 있으나 중고등학생의 경우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많이 이루어지는 성교육 주제는 ‘성폭력 예방’ ‘2차 성징’ ‘임신과 출산’ 등으로, 중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싶다고 꼽은 ‘성관계 준비’ ‘사랑/데이트’ 주제는 그다지 다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의 성교육은 청소년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과 성적 정체성, 욕망을 탐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가이드하기보다는 예방적이거나 생물학 중심의 교육이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성적 고민
-초등학생의 29%는 성 관련 대화를 주로 엄마와 하고, 성과 관련한 얘기를 부모님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학생은 38%였다. 하지만 남학생의 경우 부모님과 성 관련 대화를 하는 경우가 적다.
-중고등학생의 34%는 성 관련 고민을 동성 친구와 주로 의논한다. 부모와 의논하는 경우는 9%이다. 한편 남학생의 경우 의논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경우가 51%였다.
여성은 경향적으로 초등학생은 부모님과, 중고등학생은 친구와 성적 고민에 대해 의논하는데 남성의 경우 성과 관련해서 의논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높다. 특히 남성 청소년들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통념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성우월주의가 이들이 자신의 성적 고민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야기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은 아닌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희롱하는 언어는 만연하지만 성에 대해 진솔하고 깊이 있는 논의는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소년기 때부터 자신의 성에 대해 언어화하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
3. 성충동
-초등학생이 성에 관련하여 가장 자주 하는 상상은 15%로 이벤트를 포함한 데이트 상상이었다. 다음으로 결혼에 대한 상상이 12%, 포옹이나 키스 5%, 성관계 3%, 다른 사람의 벗은 몸 2% 순이었다.
-초등학생의 23%는 속옷만 입고 있는 장면이 19금이라고 생각했으며, 41%는 19금을 절대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여성 중고등학생이 성에 관련하여 가장 자주 하는 상상은 데이트 상상 36%, 결혼에 대한 상상이 21%였다. 남성 중고등학생은 데이트하는 상상 19%, 포옹이나 키스, 스킨십에 대한 상상이 19%로 나타났다.
-여성 중고등학생의 58%는 ‘성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남성 중고등학생은 19%였다.
-언제 성충동을 느끼는가에 대해서는 여성 중고등학생은 야한 소설/만화를 볼 때 11%, 야한 영화를 볼 때 10%, 남성 중고등학생은 야동을 볼 때 33%, 노출 심한 사람을 볼 때 22%라고답했다.
-성충동 해결 방안으로는 남성 중고등학생은 27%가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통해, 21%가 자위를 통해 해결한다고 답했다. 여성 중고등학생은 12%가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통해, 11%가 그냥 다른 생각을 한다고 대답했다.
초등학생의 상당수가 ‘19금을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답한 것을 볼 때, 이 사회가 청소년에게 성에 대한 금욕을 도덕적인 차원에서 강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충동 경험과 관련해서, 중고등학생의 경우 성별 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나는데, 여성의 경우 58%로 과반 이상이 ‘성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의미하게 보아야 하며,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지만 성적 주체가 되는 것은 가로막히는 여성 청소년의 인권 실태를 개선할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성충동 해결 방안으로 여성과 남성 모두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통해 해결한다고 답했고, 특히 여성은 그냥 다른 생각을 한다고 답한 비율이 높아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제대로 응시하거나 인정하기보다는 회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적 욕망을 회피하는 것은 행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청소년들이 성적 욕망에 잘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기반이 필요하다.
4. 연애, 섹스, 자위
-초등학생의 41%는 연애 경험이 있으며, 스킨십 경험에 대해서는 포옹 23%, 뽀뽀 10%, 성관계 3%, 성기나 가슴 만지기 2%, 벗은 몸을 찍어서 주고 받기 2%로 나타났다.
-중학생의 38%, 고등학생의 42%는 연애 경험이 있다. 가장 짧게 연애한 기간으로는 1주일 미만이 30%로 가장 많았고, 가장 길게 연애한 기간으로는 3개월~6개월이 21%로 가장 많았다. 중고등학생의 데이트 할 때 신체접촉은 손잡기 31%, 껴안기 26%, 키스 18%, 성관계 9% 순이었고, 스킨십을 하지 않는 경우는 9%였다.
-중고등학생이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25%의 응답을 보였다. 그 외에 ‘학칙에 어긋나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중학생의 1%, 고등학생의 13%가 성관계 경험이 있으며, 처음 성관계를 가진 나이는 중학교3학년이 4%, 중학교 2학년이 3%였다.
-중학생의 27%, 고등학생의 51%가 자위 경험이 있으며, 자위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중고등학생은 남성이 72%, 여성이 8%였다.
초중고등학생 모두 연애 경험률이 40% 가량으로 나타났고, 중고등학생의 경우 데이트하면서 스킨십을 전혀 하지 않는 비율이 9%로 대부분 스킨십을 하고 있다. 청소년의 연애와 스킨십은 통계적으로도 보편적이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가장 짧게 연애한 기간이 1주일 미만으로 가장 많고, 가장 길게 연애한 기간은 3개월~6개월이 가장 많다. 아마 다른 연령층에 비해 연애 기간이 짧은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청소년이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는 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경제적 자립, 사회적 시선, 인간관계의 주체성 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중고등학생이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로 ‘나중에 해도 되니까’를 가장 많이 꼽았다는 것을 볼 때, 여전히 청소년기를 무성적인 기간으로 상정하고 이른바 ‘대학 가면(가서야) 연애할 수 있다’는 생각과 입시경쟁이 만연한 것을 알 수 있다.
중학생의 1%, 고등학생의 13%가 성관계 경험이 있는데 처음 성관계를 한 연령으로는 중학교 3, 2학년이 가장 많음을 볼 때 청소년의 성관계 경험이 아예 성적으로 실천을 하지 않는 집단과 비교적 일찍부터 하는 집단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분석을 할 수 있다. 청소년기의 성적 행동에 따르는 금기와 낙인이 양극화의 효과를 내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위 경험과 관련해서도 성별 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는데, 여성 중고등학생의 자위 경험 비율이 8%로 나타난 것을 볼 때 이들이 가장 접근성 높은 성적 행동을 하는 것마저 환경적, 심정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5.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 중고등학생은 81%였다.
나머지 19%의 청소년은 어떤 정도와 범위로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과 관련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소년 일반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탐구하고 질 좋은 정보를 접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의 중요성이 통계적으로도 나타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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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성, 청소년이 더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성적 억압이 삶의 행복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증명되고 있고, 많은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성을 금기시하거나, 진보적인 관점에서도 ‘해결’하거나 ‘예방’해야 하는 문제로 접근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과 성교육은 청소년의 행복을 위해 성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청소년의 성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성에 얽힌 죄책감과 수치심, 폭력과 금기를 해결해야 한다. 이제 ‘웬만하면 하지 말아라’ ‘막을 수는 없으니 교육이라도 해야지’ 차원을 넘어 청소년의 행복을 위한 성적 권리의 실현을 모색해야 한다.
영서(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인권오름」 (2014.02.26.)
[영서의 인권이야기] 졸업식, 어쩌면 출소식 <원문링크>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3년 전의 나는 예일디자인고등학교 패션디자인과에 합격했었다. 원하던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게 기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학식을 갔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기쁜 마음에 간 입학식이었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기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우리학교는 입학식 때 기도를 하게 했고 찬송가를 불렀다. 매주 1시간씩 정규수업시간으로 예배가 있었고 2학기에는 학교 목사님에게 종교수업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학기 초에 선심 쓰듯이 나눠주던 성경은 교과서 구입 영수증에 그 가격이 포함되어 있었다. 신입생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성경을 샀던 거다. 미션스쿨이란 걸 알고 지원한 학교였지만 강제적인 예배와 종교 수업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날 힘들게 했다. 예배를 하는 날 아침엔 학교에 가는 게 두려워질 정도였다.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건 예배뿐만이 아니었다. 입학식을 하기 전, 야간자율학습과 방과 후에 있는 국영수 수업 신청서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은 강제는 아니지만 모두가 꼭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입학식 이전이니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은 입학을 안 하면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신입생 거의 모두가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다.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를 치룬 뒤 과에서 12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 소집됐다. 그 학생들은 ‘샤넬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더 좋은 자율학습실을 쓸 수 있고 방과 후 학교 장학금까지 받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성적을 가지고 누구는 명품이고 누구는 아니고를 따지는, 유치하고 치졸한 짓이었다.
2학기가 되고 나서 한 번 더 야간자율학습과 방과 후 수업 신청서를 받았다. 그 때 선생님은 이번엔 정말 강제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와 몇몇 아이들은 이번에도 말만 강제가 아니라고 하는 줄 알고 어쩔 수 없이 야자를 신청했다. 그게 정말 강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땐, 야자를 하지 않고 집에 가는 친구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였다. 그 때 나는 노예로 살다 갑자기 자유를 얻게 되면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두발규제와 복장규제는 당연히 있었다. 매일 아침 등교할 때마다 교문 앞에 서있는 선도부와 생활지도 교사를 지나쳐야만 했다. 명찰을 가져오지 않은 건 아닌지, 타이는 챙겼는지 뭔가 꼬투리를 잡히지는 않을지 죄인처럼 맘을 졸였다.
학교를 다니며 가장 힘든 건 등교시간이었다. 고3이 되어서는 등교시간이 7시 20분으로 앞당겨졌다. 등교시간을 맞추려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로 학교에 갔다. 지각생이 많아지면 등교시간이 10분씩 앞당겨지곤 했다. 매일 잠이 부족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은 잠자리에 들 때, 지금 여기서 자고 일어나면 정신없이 바로 학교에 가야된다는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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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앞에 붙었던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12년 만에 벗어났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규제와 강요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6년 만에 내 머리카락, 내가 입는 옷도 내가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비인간적인 등교시간에서도 벗어났다. 그리고 이젠 매주 억지로 예배나 종교수업을 듣지도 않아도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것들인데 다시 찾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생활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교장선생님은 졸업식에서, 우리학교를 다녔던 시간들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분의 말처럼 학교를 다니던 시간들은 앞으로 살면서 정말 잊지 못할 것만 같다.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와 억압 속에 살았던 시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졸업장과 꽃다발을 받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학교 밖을 나서는 기분은 홀가분한 것보다 찝찝한 마음이 더 컸다. 내가 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그리 많은 것들이 바뀌지 않을 테니까. 다음 달이면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있다. 그 중에 누군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학교 안에서 답답해하지 않을까. 찝찝한 졸업식이었다. 어쩌면 출소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쥬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인권오름」 (2014.03.26.)
[미성숙 폭동] 무엇을 위한 ‘보호’인가?
- 술, 담배, 청소년유해매체, 숙박업소 그리고 청소년 <원문링크>
1991년 한국 정부는 ‘UN 아동권리협약’의 조약 당사국이 되었다. 위 협약은 만 18세 이하의 인간들에게 차별과 폭력,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표현과 집회 및 결사, 모임의 자유, 교육과 건강,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위 협약의 서론에는 "아동은 신체적, 정신적 미성숙으로 인하여 출생전후를 막론하고 적절한 법적 보호를 포함한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이 선언의 기초적 정신이라는 점이 함께 명시되어 있다. 아동이 정말로, 어느 정도로 성인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냐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아동 및 청소년의 ‘보호’가 당사자들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정책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부정하고 배제하는 가장 큰 근거로 활용되는 현 한국 사회의 실태를 고려할 때, 이 보호받을 권리를 어떻게 재해석하며
악용되지 않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쟁점이자 고민거리로 지속되었다.
아동과 청소년의 보호와 ‘권리’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한국의 법과 정책을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 갈래로 나눌 수 있다.
2)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권을 위해 교육목적상의 권리 제한을 허용
3)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 건강, 여가, 생존을 위한 복지
4) 친권자의 양육 의무와 친권자의 보호 아래 있을 미성년자의 의무
그리고 아동과 청소년의 보호와 ‘권리’를 위한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지만, 이들을 미성숙하고 결정능력이 없는 존재라고 전제하기 때문에 행해지는 여타의 권리 제한이 있다.
2) 금전과 관련한 법률행위 권한의 제한
이 중에서도 이 글은 비청소년에게는 허용되나 청소년에게는 금지되는 가장 대표적인 청소년 보호 정책인, 성적인 매체와 숙박시설, 술과 담배 이용 및 이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 제한을 살펴보고자 한다.
청소년유해매체
청소년보호법 제9조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2.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3.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 행위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4. 도박과 사행심을 조장하는 등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것
5.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沮害)하는 반사회적·비윤리적인 것
6. 그 밖에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
청소년유해매체로 선정된 영화, 방송, 책 등의 매체는 판매할 때 신분증 검사 등을 통해 나이를 확인하여 청소년에게 판매하지 않아야 하며, 청소년이 볼 수 있는 곳에 광고하거나 포장을 하지 않은 채로 진열하지 않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그것이 성적인 충동을 자극하는가, 비윤리적이거나 반사회적인가의 여부이기 때문에, 어떤 매체가 청소년유해매체로 등록되느냐는 이 사회가 특정 소재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일례로 청소년보호법에는 동성애가 유해매체의 판별 기준으로 포함되어 있었으나 성소수자인권운동의 결과로 삭제되었으며,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친구사이?’는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15세 이상관람가로 등급이 바뀌었다.
![](http://hr-oreum.net//photo/15/2655/chingusai.jpg)
![위 사진:](http://sarangbang.or.kr/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
사실 청소년에게만 유해한 소재나 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공적으로 드러나도 된다고 여기는 것들만 다루면
청소년이 접해도 되는 것으로 허용되지만, 그 기준을 넘으면 청소년유해매체가 될 뿐이다. 성인들에게는 유해한 것들을 유해하다고
판단하고 모방하지 않을 판단력이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없다는 전제가 이런 정책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섹스와 범죄, 반체제와 여타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을 다룬 매체는 마냥 건전하고 ‘공익적’인 매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쾌락과 드러내지 못하는 진실을 내포한다.
그래서 판매할 수 있는 대상이 한정되고 광고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짐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유해매체’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소비되며, 기실 청소년들도 다른 경로들을 통해 이용한다.
숙박업소
청소년의 모텔, 찜질방, 고시원 등 숙박업소 이용을 제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청소년이 친권자 등 보호자들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나 독립적인 하루 혹은 삶을 살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민법에는 친권자의 권한 중 미성년자의 ‘거소를 지정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고, 그래서 여러 이유로 집을 나와 가출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려고 할 때조차 친권자에게 자신의 위치가
알려지는 일이 발생한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섹스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숙박업소는 모텔, 호텔, 펜션 등이고, 집이 아닌
다른 숙박업소를 이용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도 섹스 때문이다. 보통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게 되는 대다수 청소년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들이야말로 독립적으로 이용할 제2의 공간의 필요가 절실한 집단이지만, 청소년에게 (친권자의 동의 없이) 숙박 시설을 제공하는 건
불법이다. 모텔을 이용하기 어려운 청소년 커플들이 룸카페를 대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알려지자, 최근엔 룸카페도 19금이
되었다(룸카페는 대체로 문을 잠글 수 없는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카페이고, 일부는 침대나 샤워시설도 있다고 전해진다).
술과 담배
술과 담배는 건강에 유해하며 금지된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보통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탈’이다.
하지만 연령에 따라, 성별에 따라, 기타 여러 신분에 따라 이 일탈이 다소 허용되는 집단과 허용되지 않는 집단들이 있다. 어떤
공간에서 흡연을 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나뉘는 건 누구에게 권력이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부는 술과 담배에 높은 세금을 매겨서 재정을 충당하면서도, 술과 담배의 유해성을 홍보하고 금주, 금연을 독려하는 캠페인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사회문화적으로는 금주와 금연이 절제와 청결의 이미지와 함께 좋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술과 담배를
함께하지 않는 사람을 답답해하거나 무리에 끼워 주지 않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술과 담배를 하는 데 필요한 갖가지
예절(윗사람에게는 두 손으로 술 따르기, 고개 돌려 술 마시기, 윗사람과 맞담배 하지 않기, 윗사람이 라이터로 불붙여주면 손으로
가려서 받기)이 생겨나고, 술과 담배를 함께 한다는 것이 공동체 의식의 함양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코스가 된다. 그런데
술과 담배를 함께 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신분의 사람들, ‘우리’끼리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보다 아랫사람이 내 앞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다는 건 내 권위에 대한 무시이고, 꼴 보기 싫은 일이 된다. 나이 많은 남성이 길에서 흡연하는 여성이나
청소년에게, 작게는 눈치를 주고 훈계를 하거나 크게는 폭행을 하는 사건은 이 맥락에서 발생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술과 담배 판매의 금지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에 유해하고, 청소년은 특히 신체적으로 미숙하므로 건강에
더 유해하며 정신적으로도 미숙하여 절제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정부나 어른들은 유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청소년에게 건강에 유해한 것을 차단함으로써 보호하겠다는 명분은, 실제로는 술 담배 하는 청소년을 낙인찍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보호’와 ‘분할통치’ 중 무엇이 진짜 목적인지 헷갈리게 한다.
한국 중고등학교 중 절대 다수의 학교에선 음주와 흡연을 교칙으로 금지하며-법적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판매’를 금지하지만
교칙에서는 청소년의 ‘이용’을 처벌한다.-모범생과 날라리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활용한다. 2011년에는 남양주
가운고등학교에서 흡연을 이유로 무려 40여 명을 무더기 퇴학 조치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음주나 흡연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점을
받고 체벌(폭행)을 당하는 일은 구태여 말할 이유도 없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다음은 서울 J여자고등학교의 학생이 증언한 내용이다.
2학년 올라가서, 건강검진을 했다. 학교에서 지정한 병원에 가서 키 재고, 피 뽑고, 소변 검사 하고, 엑스레이 찍고 하는 검진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학교로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고 교사가 나와 몇몇 사람들을 불렀다. 건강검진 결과 우리에게서 흡연했던 흔적이 발견됐다고 했다. 교사들은 건강검진에서 흡연한다고 나온 학생들을 따로 관리했다. 종종 불시에 교실에서 복장, 용모검사를 할 때가 있는데, 그 리스트에 오른 학생들은 소지품 검사도 했다. 그러다 또 걸려서 징계를 받았다. 처음 흡연으로 걸리면 교내봉사 1주일에 금연교육 2시간, 두 번째 걸리면 교내봉사도 하고 교외봉사에다 금연교육 6시간, 세 번째는 교내봉사와 교외봉사에다 금연교육 14시간, 네 번째부터는 정학이다.”
이쯤 되면, 그렇게 주창되는 보호가 무엇으로부터의 보호인지 되묻게 될 것이다. 더불어서, 그렇게 겹겹이 쌓인 규제와 감시망을 뚫고서라도 기어이 음주와 흡연을 하고야 마는 청소년들의 욕구가 분명 존재하는데 규제로 일관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술과 담배에 얽힌 권력과 일탈, 전복의 상징적 의미들을 모두가 분명히 인식하고 활용하면서, 짐짓 ‘다 너희 건강을 위해서야’라고 변명하는 게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난다(인권교육 온다 상임활동가), 「노동과세계」(2014.03.25.)
가장 큰 편견은 ‘편견’이라 인식조차 되지 않는 것
반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문링크>
편집자 주 = 우리 사회에는 저마다 다양한 생각과 삶에 대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 역시 노동자들처럼 새로운 세상, 그간 우리가 살아온 것과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노동운동은 인간애를 실천하는 운동인 만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모든 이들과 어깨 걸고 연대해야 한다. <노동과세계>가 노동자들의 인식을 고양하기 위해 청소년 인권과 여성차별·성차별·나이차별 관련 글을 종이신문과 온라인에 게재한다.
1회= 가장 큰 편견은 ‘편견’이라 인식조차 되지 않는 것_ 난다 ‘인권교육 온다’ 상임활동가
2회= 우리 같은 노동자-일터에서 사라지는 노동자 이야기(가)_ 형태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3회= 청소년과 성차별 그리고 섹슈얼리티(가)_ 쥬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이 만나자마자 “어, 안녕? 만나서 반갑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어느 회의 자리에 참석한 당신에게 “넌 누구 따라 회의 왔니?”라고 물어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낯설기도 하고, ‘이 사람 왜 이래’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를 이런 경험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어려보이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쉽게 말을 놓고는 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누군가가 갑자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친한 척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군가에겐 당혹스러운 일이 누군가에겐 그렇게 대접받아도 상관없는 일로 여겨져 왔다면, 그 ‘당연함’에 대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동안 처음 만난 사람을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으로, 나에게 반말을 쓰는지, 존대를 하는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첫인상을 판단하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쉽게 반말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야말로 청소년인권이 어느 정도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사람에 대한 ‘너무 익숙한’ 편견
나이가 적다는 것. 몇 년 늦게 태어났다는 것. 보통 그것만 가지고도 그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청소년들은 나이를 이유로 미성숙한 존재, 아직 덜 되고 부족한 존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규정당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참여를 경험하거나, 어떤 결정에 동참하는 것에서 쉽게 배제되도록 만듭니다. 어린이, 청소년의 주체성을 의심하는 것이죠.
오늘날 만약 “여성은 남성에 비해 판단력이 부족하므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라거나 “흑인은 백인에 비해 유전적으로 열등하므로 시민의 자격을 갖출 때까지 일정한 교육과정을 받아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몇 백 년 전에는 그 사회에서 당연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졌고, 소수자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근거로 쓰였다고 합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기준이 될 때, 나이를 넘나드는 관계와 구조를 잘 상상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이야”, “나이도 어린 것이...”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요구받는 순간, 그 누구도 특정한 사회적 기준과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나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말에는 그 사회의 모습이 담겨있다고들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가, 그리고 당신이 어린이,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관점과 태도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한’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함께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한겨레21」 노땡큐 연재 (저작권 문제상 원문링크로만 표시)
학생을 겁박하는 교육 [2014.01.13. 한겨레21 제994호]
다리 꼬지 마! [2014.02.10. 한겨레21 제997호]
현장실습과 ‘학생 장사’ [2014.03.03. 한겨레21 제1000호]
차마 던지지 못한 질문 [2014.03.24. 한겨레21 제1003호]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폭군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동생에게 칼을 휘두른 적도 있었다. 그 충격으로 동생은 한동안 기저귀를 차고 다녔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녹내장으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