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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7호]『연민의 굴레』 : 미스터리의 기치를 온누리에

 

[덕질(?)들] 

『연민의 굴레』 

: 미스터리의 기치를 온누리에


필부 (노원지역청소년인권동아리 화야)



다른 청소년활동가들과 같이 보고 싶고 같이 나누고 싶은 나의 덕질(?)들을 받는 리뷰코너입니다. 

이번에는 화야에서 활동하는 필부님이 리뷰를 보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태껏 송고되어 온 글 중 가장 덕력이 발휘된 글 같네요.

소개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덕질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활력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 <연민의 굴레>의 스토리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은 분들은 미리 <연민의 굴레>를 읽고 리뷰를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글쓴이는 <연민의 굴레>를 상당히 덕질하는 사람이므로 작품에 대한 평이 칭찬 일색일 수 있습니다. 좀 더 객관적으로 <연민의 굴레>를 평가하고 싶으신 분들은 직접 읽는 것이 제일입니다.

 

 

 

 

양한나 : ‘내가 태원 선배의 말에 동요한 것도 이런 곳에서 멋대로 휘둘려지고 있는 것도 이 풍경이 부럽단 생각이 드는 것도 이제와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스쳐지나간 바람 때문이었다.’

 

한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애정결핍을 가진 오빠(양선생)에게서 끊임없는 보호와 통제를 당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자유분방한 한나는 옛날엔 어머니처럼 자라라는 오빠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지만, 오로지 자신에게만 매달리는 오빠를 연민해서 결국 오빠가 원하는 - 언제나 고분고분하고 착실하고 우수하고 성실하며 품위있고 예의바르며 겸손하고 단정하며 평등하고 사려깊고 조신하며 아름답고 분별력있는 모범생 동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다한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중학교 선배 이태원이 만든 동아리에 들어간 한나는 그곳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점점 내적 갈등이 심해진다. 그러다 동아리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내려는 오빠의 강박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은 모범생의 가면을 내려놓는다. 그 과정에서 이태원은 한나를 구하기위해 한나의 오빠와 직접 대립했고, 이태원의 동아리는 온갖 불량학생들이 모여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만 치는 곳으로 찍혀 해산당했다.

 

한나는 미스터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동아리를 다시 만든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는 미스터리 클럽을 탐탁치 않게 본다. 사람들은 미스터리 클럽을 경계하고 무서워하거나, 무시로 일관한다. 한나의 친구인 학생회장 임선재는 몰래 미스터리 클럽의 뒤를 봐주고 있지만, 학생회 임원인 채승은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미스터리 클럽을 없애려 한다. 이렇게 미스터리 클럽은 편견과 무시의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클럽은 등장 인물들의 삶을 바꿔내는 중심이 된다.

 

 

 

 

 

담임 : “우리 반에 자네 아니면 뽑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지. 이왕 이렇게 된거 민 군이 조금만 고생해줘. 반을 위해!”

안민 : “......알겠습니다.”

 

안민은 완벽한 모범생으로 통한다. 학교 안에 안민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인기도 많고, 농구부에서 제발 들어와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운동도 잘한다. 하지만 안민은 농구를 좋아하면서도 너무 많이 하면 싫증날까봐 농구부에 들지도 않고, 반장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매번 반장을 맡는다. 그러다 결국엔 전교부회장 이수열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학생회에도 들어간다. 안민은 이런 자신을 어중간한 모범생으로 평가한다.

 

 

 

 

 

차련 : “죄송해요.. 거짓말이에요. 사실은 하고 싶은 일 같은거 없어요.”

 

차련의 삶은 <연민의 굴레> 첫 대사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은 정말 재미가 없다’. 진로희망 조사서에 쓴 진로희망도 없고, 재미있어 보이는 동아리도 없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인연과 사건들을 기대하는 미나에게 별거 없다고 김 빼는 사람도 차련이다. 결국 미스터리 클럽에 들어가는 것도, 보충학습을 듣는 것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휘둘린다. 차련에게 무엇이든 빨리 골라!’라고 요구받는 상황은 늘 고민과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주체성을 찾으십시오!, 당신 인생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라는 말 앞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채승은 : “겨우 그깟 일로 화내거나 하지 않아. 나는 너희 같은 어린애들과는 다르다.”

 

채승은은 누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중심적이고 배려심 없고 직선적이고 제멋대로인데다 융통성도 애교도 없는 늘 음침한 재수없는 여자애이다. 평소엔 조용하지만, 한 번 폭발하면 앞뒤 안 가리고 미친듯이 달려들곤 해서 학교에서 악명이 높았다. 자존심이 세서 중학교 때 간수미 일당에게 극심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고 맞섰다. 하지만 김희완이 자신과 맺어온 관계를 모조리 부정하자 결국 마음의 문을 아예 닫아버린 뒤, 다한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하며 그런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김희완 : “별 수 없잖아. 내 탓이라고 인정해봤자 뭐가 변한다는 거야?”

 

김희완은 공감 능력이 별로 없었다. 집에서 기르던 개 해피가 죽었을 때 방긋 웃던 김희완의 모습은 어머니를 두렵게까지 했다. 그래서 김희완은 친권자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동생을 따라하며 감정을 속이는 것을 택했다. 중학교 시절, 채승은과 관계를 맺어가다 결국 파탄내버린 김희완은 뒤늦게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채승은을 따라 다한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김희완은 속마음을 온전히 내보이지는 못한 채 채승은을 향해 헤매고 있다.

 

 

내가 <연민의 굴레>를 유일하게 수 년 동안 주기적으로 덕질 하고 있는 이유는 위와 같이 등장 인물들을 옭아매던 트라우마와 갈등, 고민이 이리저리 엮이면서 점점 풀려나가는 과정이 혀를 내두를 만큼 치밀하고 입체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수보살이 저글링 하는 마냥 수많은 소소한/중요한 떡밥들이 뿌려지고 거둬지기를 반복하며, 상황·감정묘사가 허술하지도 않고, 그 사이사이로 패러디와 개그가 상당히 들어가는데도 작품의 맥을 끊는 법이 없다. 이 모든 것을 정말 한 사람이 전부 해낼 수 있는건지 수십번을 보면서도 실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민의 굴레>에서 좋았던 점은, 미스터리 클럽의 모토였다.

 




전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이태원 : “선생님 저는, 이런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루하루가 어쩌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는지.”

 

미스터리 동아리의 시초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이태원의 동아리. 이태원은 친구 김송현과 같이 지내기 위해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때 그때 내키는 일을 한다.’라는, 생각나는 대로 대충 지은 듯한 동아리 활동 내용 덕에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소소하고 즐거운 동아리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는 자신에게 상처입을까봐 친구들을 점점 밀어내려다 이태원과 동아리를 만났다.

 

 

양한나 : “지금까지 내가 오빠를 몇번이나 용서해왔는지 알아? 하지만 이번만은 안돼. 여기있는 사람들을 건들지 마. 날 미움받게 만들지 마.”

 

 

그리고 한나는 이태원이 졸업한 후, 이태원의 동아리를 이어받아 미스터리 클럽을 만들고 이태원에게 받은 깨달음을 미스터리 클럽에 담는다.

 

 

 

 

 

 

 

 

 

그리고 그 모토는 다시, 변화를 만들어낸다.





미스터리의 기치를 온누리에

 

변화는 원래의 상태에서 벗어나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는 지금의 상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빨리 떨쳐버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은 필사적으로 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왜 이 모양 이 꼴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특히 더 나은 나의 모습을 만들고, 거기에 얼마나 빨리 다가갈 수 있는지 비교를 하고, 목표에 도달하면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보여주고, 바뀌지 않으면 궁핍하고 힘겨운 삶을 살게 된다고 계속 겁박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청소년의 삶은 밑바닥에서 계속 가라앉고 있다.

 

<연민의 굴레> 전체를 관통하는 미스터리 클럽의 모토는 현재의 자신을 직시하고 긍정하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자신을 긍정한다는 것은 변화의 고삐를 늦추는 것이고, 미래의 불안보다 지금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비록 성적이 잘 나오진 못하더라도 무의미한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비록 주변 사람들의 기대나 요구에 부응하진 못하더라도, 그에 휘둘려 마음에 없는 모범생 노릇은 하지 않는 것이다. 관계의 고통이 힘겹더라도 그 상처를 품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의 감정이 두려워지더라도 끝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연민의 굴레는 항상 떳떳하지 못한 나에게 좀 더 성실해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불어넣는다.

 

 

 

 

단 하나 아쉽다면, 작가 스스로가 이 작품을 픽션이라고 한정지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학교는 열심히 다닙시다라는 말을 남긴다. <연민의 굴레>와는 전혀 결이 다른 현실의 목소리다.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아직까지 차련과 같이 학교를 그만둘지 고민하고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소외당하고 있다. 미스터리 클럽은 픽션인 거고, 학교는 열심히 다니는게 정상이다. 이런 사회에서 마냥 카르페 디엠(현실을 즐겨라)’을 외치는 것은 겉만 번지르르 할 뿐 그 이면에 겪어야 하는 고통은 책임지지 않는, 공허하기 그지 없는 말이다. 작가의 역할은 만화를 그리는 것이지, 현실을 그리는 것은 아닌 것이다(물론 그래도 저 부분이 옥의 티라고 생각하는 건 변함 없지만! 으으으).

 

그래서 그 픽션을 현실로 그려내는 것을 나의 몫으로 하고 싶다. 청소년의 일상 속에서, ‘우린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지금 하고 싶은대로 하자라고 제안하고, 더 나아가 지금 이대로로 괜찮을 수 있는 사회/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현실이 거대한 미스터리 클럽이 된다면(사상 최대의 팬아트가 되겠지) 적어도 청소년에게 지워지는 짊은 지금보다 훨씬 덜어지는 사회일 것이다. <연민의 굴레>에서 그랬듯이.

 

 

 

 

 

추신) 나름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쓰고 싶었던/써야 했던 리뷰입니다만, 다 쓰고나서 보니 참 두서가 없네요. 내용이 이해 안 가시는 분들은 기왕 이렇게 된거 연민의 굴레 한 번 읽고 오세요!! 아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