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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16호][사는 이야기]사치스러운 무료함


[16호] [청소년 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사치스러운 무료함



작성 : 루블릿 (전 아수나로 서울지부 활동회원)



'사는 이야기'는 청소년활동가들의 사는 이야기,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을 기고 받아 싣습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활력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2017년에 활기의 활동 계획을 논의하면서 소식지 <활력소>도 작게 개편했습니다. 먼저 '소식들' 코너와 '목소리들' 코너를 하나로 합치고, '사는 이야기' 코너를 신설했어요. '사는 이야기'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 삶에 대한 이야기(에세이)를 기고받아 싣습니다. '사람들' 코너에서는 청소년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수 있도록 개인 활동가의 인터뷰를 통해 청소년운동의 의미에 대해 살펴볼 예정입니다. 기존에 진행하던 단체 활동 소개 인터뷰도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고민 중입니다. '관점들' 코너는 기존의 '덕질들' 코너가 전환된 것으로, 그 동안 다뤄온 것처럼 책, 영화, 방송, 미디어 등을 청소년인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조금 더 비평/칼럼의 성격으로 바뀐 점입니다. 그리고 이번 호부터는 활기의 재정 내역을 활력소에 싣지 않습니다. 청소년운동 전반의 소식을 담은 웹진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재정 보고/결산은 활기의 후원인 분들께 별도로 발송됩니다!  

개편을 준비하면서 발행이 조금 늦어졌습니다만, 최대한 규칙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올 새로워진 <활력소>가 청소년운동에 '활력소'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난다 (편집담당 /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활동도 그만두었고 대학도 졸업했다. 몇 년 동안 일상에서 가장 오랜 비중을 차지하는 두 가지가 사라졌다. 예전부터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대학원도 떨어진 후 접은 지 오래였고, “요새 뭐하고 지내?”하면 취업준비라고 했던 두루뭉술한 말도 지금 일상하고는 거리가 멀다. 막말로 놀고먹으면서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물론, 이런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아직도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아니 정확히 엄마는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어야지 않겠냐.”며 좋아하는 걸 찾거나 배울 수 있을 때 배우라면서 소위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얘기하였다.

 

그 정도면 속편하게 지낼 법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을 뿐더러 언제까지 불안정한 삶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한테 생활비를 받아쓰는 만큼 간섭과 눈치는 늘어나며, 그들이 화수분이 아닌 이상 생활비 또한 무한정 받을 수는 없으니까. 이미 엄마는 말을 뒤집어서 집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낭비하는 돈을 줄이기 위해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고 얘기하기도 하였고. 문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며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뭐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있는 거라고는 대학 졸업장 하나밖에 없는 사람을 가장 반기는 곳은 어딜까.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로 올렸더니 귀신같이 전화를 주거나 문자를 준 곳은 모두 학습지 회사였다. 세상에 어느 회사가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일하라고 환영하겠느냐던 누군가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그래도 사람대접은 받으면서 돈을 벌고 싶었다. 문제는 그런 곳에 가려면 지금 당장 갈 수는 없었다. 스펙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거나, 인턴으로 갈리거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하거나 하는 등 어느 정도의 돈, 시간, 노력과 같은 대가가 필요했다.

 

날로 먹을 생각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약 없고 보장 없는 취업 준비에 떠밀릴 엄두 또한 나지 않았다. 잘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마침 작년 <요즘것들> 배송 작업을 하면서 삐끗했던 허리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의사는 오래 앉아 있는 게 허리에 가장 안 좋다고 얘기했다. 아직 생활비는 받고 있고, 허리 아픈 상황에서 어차피 무언가 하기엔 어려울테니 아예 푹 쉬자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그동안 학교 다니느라 활동하느라 휴일없이 살고는 했으니 이참에 좀 쉬면 어떻겠냐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지내는 날은 불안했다. 하루는 내가 지금 당장 도대체 무얼 해야 하나 싶어서 우울해지기도 했다. 아무거나 하면서 나는 무언가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하는 건 거짓된 효능감이란 걸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했다. 무료했다. 속절없이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 있을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잠식해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 방을 한바탕 뒤엎고는 대청소를 하기도 하였다. 방학 때나 겨우 했던 드라마 정주행도 하고 보고 싶은 영화도 다니고 장을 봐서 요리를 하기도 하였다. 물리치료도 꼬박꼬박 다녔고. 그렇게 지낸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었다. 다음 달엔 수영을 다니려고 구민들이 이용하는 체육회관에 등록도 하였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뭔지 모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단 생각 또한 여전히 하고 있으며, “요새 뭐하고 지내?”하는 질문엔 여전히 두루뭉술하게 취업준비 해라고 얘기한다. 다만 당장 지원하지도 않을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며 불안해하는 일은 관뒀다. 어차피 당장 어찌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기약 없이 갈 길이 먼 데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지는 말아야하니까. 일단 몸부터 나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