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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게시글/어떻게됐대?

[10호] 청소년활동가와 대학 이야기

[10호] [어떻게됐대?] 대학입시거부 그 후

- 청소년활동가들과 대학 문제


 라일락



어떻게됐대?

활력소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꼭지, [어떻게됐대?]는 청소년활동가들의 삶의 고민들을 다룹니다.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니고, 살아가면서 노동이나 주거, 병역, 연애 등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청소년활동가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운동 또는 자신의 활동가 정체성과 연관지어서 어떤 생각들과 선택들을 하며 사는지 소개하자는 취지로 기획하였습니다.

세 번째 주제는 '대학'입니다. 라일락님이 대학거부를 하고 난 그 후의 이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지난해에 활기에서 한 '삐삐롱수다킹'에서 다룬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준비되었습니다.


 



 

2015년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작년 1113, 대학 입시를 거부했다. 다른 이들이 수능을 보고 있는 그 시간에, 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했다. 수능일을 기점으로 날씨가 추워지는 만큼, 기자회견을 하는데 손도 많이 시리고 마음도 많이 무거웠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또래의 사람들보다 여러 해 일찍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의대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17살에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수능을 봤는데, 공부한 것에 비해 결과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이렇게 쭉 공부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수능 이후에는 매일매일 독서실에서 공부했는데, 공부가 안될 때마다 많은 경쟁자들을 이기고 의대에 합격한 학생들의 수기를 읽으며 자극받았다. 내 자신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교의 의대생이 되어 있는 것을 상상하면, 내 인생은 밝은 앞길만 있을 거 같았고 자신감이 생겨났다.

 

하루하루 같은 목표를 향해서 달리던 어느날, 나는 내가 왜 의대가 가고 싶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내 삶이 의사의 삶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까의 고민보다는, 다른 누군가를 이겨서 꼭대기에서 1프로가 되어있는 모습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은 나에게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얻어낸 특권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고민을 한 끝에- 입시를 그만두기로 했다. 적어도,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없이,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대학입시거부를 한 이후, 나에게 멋있다거나 그게 진정 행복한 삶이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랬을까? 나도 얼마 전까지는, 대학입시거부는 나의 행복, 내가 추구하는 삶을 위해서 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대학입시거부를 한 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나는 지난 1년간 입시공부 대신에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안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 하나 없이 불안불안하게 삶을 지속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입시거부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닌 거 같다. 대학입시거부를 통해서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대학을 안가도 행복할 수가 있어가 아니라, 대학을 안가면 불행하고 낙오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입시구조와 사회가 문제라고 외치는 것이었던 거 같다.

 

요즈음의 나는 대학 졸업장이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낀다. 여성단체에 관심을 가지다가 성폭력 상담사 교육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성폭력 상담사 교육을 받을 받고 자격을 취득하려면 전문대학 졸업이상의 학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문이 들어 교육을 하는 곳에 전화해서 문의해보니, 본인들도 자격증 취득과 학력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언젠가 인터넷에서 학력은 그 사람이 학창시절에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검증할 수 있는 지표라는 글을 보았다. 누군가의 노력을 학력이라는 기준으로 획일화해서 정해놓고, 그것에 미달하면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니!

 

알아보니까, 더 많은 자격증들이 학력제한이 있었다. 심지어 나이제한이 있는 자격증도 있었다. 현재 내가 준비를 시작한 공인노무사 시험은, 미성년자는 아예 응시를 못하도록 제한이 있는 시험 중의 하나다. 결과발표가 있는 11월을 기준으로 만 19세가 되어야하는데, 나는 12월에 태어나서 내년에 있을 시험에 응시조차 못한다. 1달을 늦게 태어나서 시험장에 발도 못 들인다니.. 대학에 가지 않았거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한 현실에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대학입시거부를 함께 했던 투명가방끈과 대응을 하기로 했다.

 

나는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한지 약 3달 정도 되었는데, 공부하면서 박탈감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같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다른 수험생들은 내년 시험에 붙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나는 열심히 공부해도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이니 말이다. 내가 과연 내년에 시험을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억울하고 화난다. 나는 안되는 이유가 뭔지, 왜 나는 발조차 못들이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학력이나 나이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분명히 없어져야하고, 본인이 원한다면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