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들

[29호][사람들] "청소년운동이 더 넓은 운동으로 확장되었으면 좋겠어요!" - 수수님 인터뷰

이번 [사람들] 코너에서는 '과거의 청소년인권운동가들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그리고 탈가정 청소년을 위한 <나름안내서>를 만드는 활동을 하셨던 수수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지금은 여성 성폭력 피해 쉼터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수수님의 인터뷰, 바로 만나볼까요?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피아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수수라고 하고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라는 곳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셨던 청소년인권활동은 무엇인가요?

 

저는 아수나로 대구지부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어요. 처음 했던 활동은 학교 서약서에 반대하는 캠페인이었어요. 대구지역 학교 중에 입학 할 때 학생들에게 어떤 서약서를 쓰게끔 강제하는 학교가 있었는데, 내용들은 주로 학생들의 어떤 행동들에 대해 금지하거나 입막음 하는 조항들이었어요. 예컨대 두발규제라던지 선생님들의 처벌같은 것들에 동의한다는 식의 내용이 담긴.. 그래서 당시에는 신체포기 각서나 다름없는 서약서 반대한다는 캠페인을 진행했었어요. 그 이후로는 서울에 와서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함께 했어요. 청소년 정치적 권리를 위한 원탁모임, 줄여서 청정원이라는 단체에서 연령하향이나 정당 내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마련하라는 운동을 했었어요. 뭔가 이것저것 많이 했었는데.. 아수나로에는 탈가정하거나 원가정과 사이가 안 좋은 청소년들이 꽤 있었어요. 가출신고가 들어와서 아수나로 사무실에 경찰이 난입한다거나 총회 때 부모가 난입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들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원가정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안전하게 탈가정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담아. <탈가정 청소년을 위한 나름안내서>를 같이 만들었어요.

 

탈가정을 탐험하는 비행청소년들을 위한 안내서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안내서"_아수나로

 

<나름안내서>를 만들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인터뷰어는 나름안내서로 안전한 탈가정을 성공한 적이 있다!)

 

원가정과 협상하는 방법이라는 코너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꼭 탈가정하는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가족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청소년은 부모나 본인이 속해있는 가정에 자원을 의존해야하는 상황이 많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이나 관점을 소통하고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되게 중요한 일인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고, 지금의 제 활동과도 연결되어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운동 이후에 어떤 삶의 경로를 밟아오셨나요?

 

2016년에 여성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갔어요. 이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대학원 생활에 치이면서 아수나로 활동을 그만뒀어요. 사실 여성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도 청소년운동이랑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나 청소년에 대한 여러 편견들, 혹은 통제하기 위한 논리들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논리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 논리들을 더 잘 정리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서 여성학을 공부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대학원이 끝나고 뭘하고 살아야하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당시 같이 연구하던 친구가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는 것 어떠냐하는 제안을 해서 일하게 되었어요. 열림터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 비율이 높아서, 개인적으로 청소년운동의 경험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지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오게 된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미처 몰랐던 것은 제가 했던 청소년운동은 당사자로서 권리를 요구하고 외치는 당사자 운동에 가까웠는데, 쉼터 운동은 피해자 지원 운동이라는 차이가 있더라고요. 이건 쉼터로 이동하고 난 다음에 뒤늦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상담소에서 활동을 하시면서, 청소년운동의 경험이 영향을 주나요?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공명하는 것들이 있어요. 열림터에는 친족(친부, 친오빠, 친조부 등)이 가해자인 이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요. 성폭력 피해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서 피해가 있는 시점에서 집을 나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과거 피해의 후유증으로 지금 있는 곳에서 더 살기가 어려워 쉼터로 오시는 경우도 있어요. 가정공간을 벗어난 분들은 주로 친족인 가해자로부터의 추적을 피해야하는데, 휴대폰이라던가 SNS 사용이라던가 여러가지 방식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면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가족들이 휴대폰 위치추적을 한다거나, SNS 게시물의 위치 알림을 보고 찾아온다거나 하는 일도 있거든요. 이런 상황을 만날 때 청소년운동을 하며 탈가정청소년을 위한 나름안내서를 만들었던 생각이 많이 나요.

 

 

인터뷰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청소년운동에 대한 애정과 부채감 같은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청소년운동 안에서 얻고 배운 것들이 굉장히 많아서. 여러모로 저를 키워준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청소년운동은 자원이 별로 없잖아요. 나이라던가 사회적으로 경계적인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당사자로서 많이 참여하고 있으니까. 다들 활동하면서도 각자의 생계나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등의 진로 고민을 많이 하고요. 그래서 활동을 같이 하던 동료나 친구들이 어디론가 이동하거나 사라지는 것을 되게 많이 봤어요. 그래서 운동을 정리할 때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라 크게 아쉬움이 있었던 것같아요. 그래서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꼭 찾아야겠다는 부채감이 있어요.

 

다른 운동과 청소년운동이 더 많이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저 스스로를 표현할 언어를 많이 익혔어요.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의 자원을 쌓았는데, 성폭력 피해 지원 현장에서 오게 되면서 원가정에서의 폭력적인 양육 기간동안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의 자원을 획득할 수 없었던 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취약한 상황의 청소년이나 여성들... 지금 겪고 있는 경험들을 사회에서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청소년운동이 이런저런 운동영역으로 확장된다면 이런 식으로 더 많이, 새롭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분명히 생길 것 같아서. 그래서 청소년운동이 더 넓게 확장되었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응원 했으면 좋겠어요. 늘 응원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