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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9호][사는 이야기] ‘청소년활동가’라는 이름을 내려놓으며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활기에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다가 활동을 잠시 쉴 예정인 목성돼지 님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활력소 사는 이야기에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그런 원고를 맡아도 되나?’였다. 그 생각의 근원을 좀 더 파고들어 보면 한구석에는 우선 이제 활동을 (적어도) 한동안 그만둘 사람이 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고민을 나누는 건 좀 그렇지 않나?’가 있을 테고, 다른 한구석에는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라는 마음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나의 경험이나 고민에 대해 기고하거나 발표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내 사는 이야기는 SNS를 통해 차고 넘치게 많이 이야기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나서는 것을 꺼리는 마음도 존재했다. 그래서 활동을 정리하는 지금의 고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개된 공간에 풀어보고자 한다.

 

2020년 4월 총선 당시 청소년 참정권 요구 1인 시위를 하는 목성돼지. 아마도 셀카인 듯? (사진 제공 : 목성돼지)

 

추하고 평범한 기득권이 되진 말아야 할 텐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을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 청소년운동을 한 기간이, 휴가와 복귀를 반복하며 어찌어찌 7년을 넘겼다. 그중 후반부 3~4년간은 활동 내 나의 위치에 대해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위치가 너무나 어정쩡하다고 항상 느꼈다.

 

난 항상 활동에 전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름 활동 때문에 바빴지만 따지고 보면 활동보다 이른바 현생이 앞섰다. 과제나 시험기간 때마다 일정 몇 개씩을 펑크 냈고, 방학만 되면 본가에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셀프 안식년을 1년에 3개월씩 가졌다. 주변 사람들은 때로 활동과 일상의 균형을 잘 잡는 거라고 말해 주기도 했지만, 내가 현생을 위해 미룬 일이 다른 사람들의 일이 되니 마냥 그 말에 수긍할 수는 없었다. 활동을 할수록 미안한 감정이 점점 커졌고, 단순한 후원자보다는 더 많은 참여를 하고자 하지만 여기에 온 힘을 들이지는 않을 나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활동을 하면서도 내 역할을 한정 짓게 했다.

 

대학 졸업이 다가오자 이러한 고민은 진로에 대한 고민과 묶이며 더 깊어졌다. 시스젠더 남성으로서 나이를 먹어가고, 활동을 위해 포기한 게 없다 보니 활동을 하면서도 점차 사회 내의 기득권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나아가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그냥 평범한 기득권층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특히 요즘에, 비슷한 고민을 하며 활동을 떠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옛날에는 나도 잘 나갔었지에 빠진 추한 기득권이 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사람은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이 맞는다면,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기위한 방법은 꾸준히 청소년운동과 관계를 맺어나가며 자신의 삶에 꾸준히 청소년운동의 맥락을 엮어내는 것이지 싶다. 근데 어떻게?

 

 

이제 어떻게 청소년운동과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을까

 

청소년운동의 역사는 아직 짧아서 비청소년, 비전업 활동가가 청소년운동과 꾸준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사례가 많지는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생계를 운동 밖에 두면서 자신의 역량 일부분을 들여 오랜 기간 꾸준히 운동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운동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러한 적당히활동하는 사람의 필요성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실 나도 청소년운동에서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대학을 졸업했고, 일단 활동을 잠시 그만두고 어떤 분이 표현한 것처럼 3~4년은 쑥과 마늘을 먹는시간으로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영영 청소년운동을 떠나기보다는, ‘나중에 높은 지위의 사람이 되어 세상을 좋게 만들어라의 함정도, 그저 평범한 타도 대상이 되어버리는 뻔한 결말도 피하고, 자신의 생계와 삶과 활동의 균형을 잡아가며 청소년운동에 적당히 오래함께하는 나의 역할을 찾아나가고 싶다.

 

이는 비청소년, 비전업 활동가로 살아가는 삶에 어떻게 청소년운동의 맥락을 엮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당연히 혼자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 테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활동을 이미 떠났거나 떠날 것을 고민하는 동료들, 그리고 꾸준히 고생하고 계시는 활동가분들과 꾸준히 고민을 나누어 보고도 싶다.

 

 

화이팅.

 

요새 여러모로 활동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활동가들이 희망을 품기 쉽지 않은 시대인데, 코로나로 인해 더욱 힘들어하는 친구와 동료들을 많이 본다. 하지만 좀 더 길게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미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큰 변화들은 항상 깊은 어려움 뒤에 찾아왔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활동을 떠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 덕담밖에 없는 입장이다. 잘 버티시리라 믿는다. 화이팅.

 

 

- 글 : 목성돼지(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