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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8호][사는 이야기] 이름이 세 개인 사람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현재 편집 멤버인 피아, 윤달, 공현에게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투명가방끈, 하자센터, 불꽃 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서님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넌 여러 가지를 하잖아. 보면 항상 바쁜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글을 제의받으며 덧붙여진 말은 이랬다. 그러고 보니 올해 처음 투명가방끈에서 반상근을 하게 되었을 때, 몇몇 활동가 친구들은 활동하는 이 여러 군데인 나를 신기하게 여겼다. 좋아 보인다고도 했고, 무리하지 말라며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동료들 입에서 들으니 내 상황이 새삼 새롭게 인식되었다. 심지어 나는 활동할 때 이름이 세 개나 된다. 윤서, 나무, 시원. 과한가 싶지만 모두 크고 작게 여러 군데에 발을 걸치고 연대하고 있으니까. 내가 흔한 경우는 아닐 수 있겠지만 특별한 경우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바쁜 윤서 (사진 제공: 윤서)

이름이 세 가지씩이나 되는 이유는 기반으로 삼는 곳이 크게 세 곳이기 때문이다. 기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지난 3년 정도 그곳들이 내 기초가 되는 바탕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기반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웠다. 청소년 인권의 언어로,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그 밖의 형형색색의 필터로 사람을 만나고, 말하고, 공부하고 있다. 좁디좁았던 내 시야를 틔우고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저항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던 시간들에 조금씩 무게가 쌓여가고 있는 모습에 뿌듯함과 신기함을 느끼고 있다. 본명만큼 귀에 익숙한 이름이 두 개가 더 생겼고, 내 성씨를 외우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이름들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도 문제없이 잘살고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은데 올해 나는 자주 무너질 뻔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지각해서, 책임지지 못해서 된통 깨진 날도 있었다.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뻔뻔스레 말하기엔 3년째 이렇게 살고 있어서 민망하다. 좀 더 내 역량과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뼈아픈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도 하고 있다. 나의 판, 나의 영역, 나의 활동. 그건 뭘까. 나는 지금도 떠도는 걸까, 정착한 걸까. 이름이 세 개인 사람은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할까. 나는 문어발 활동가일까?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내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대학을 거부해야만 했고, 아버지에게 대들어야만 했던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다 보니 나는 이런 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균형을 맞추고, 비전을 가지려고 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너무나 다채롭고 복잡하니까. 그래서 언제나 나는 문어발 활동가일 거 같다.

 

 

-글: 윤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하자센터, 불꽃페미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