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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7호][사는 이야기] 어느 활동가의 쉬는 이야기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현재 편집 멤버인 피아, 윤달, 공현에게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안식년을 가지며 활동을 쉬고 있는 난다님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올해 3월부터 활동을 쉬고 있다. 어느덧 4개월째. 활력소팀으로부터 이번 호 활동가의 사는 이야기코너에 글을 써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수락했지만 막상 노트북을 켜고 앉으니 어색하다.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돌아와서 낮잠을 자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다가, 때맞춰 끼니를 챙겨 먹은 후, 뒹굴뒹굴하다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재충전 프로젝트 <일단, 쉬고> 지원사업을 통해 요가 수업을 등록해서 꾸준히 다니고 있다. 안식년을 맞아 3월에는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지냈고 4월부터 요가를 시작했으니 요가도 약 3개월째 하고 있다. 요가를 하기로 마음먹은 건 몇 년 전부터 심해진 목과 어깨 통증 때문이다. <일단, 쉬고> 프로젝트의 사업명을 긴장 풀고 이완 경험하기로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2008년에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청소년운동에는 그동안 상근활동가와 같은 자리를 가진 단체가 많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활동가가 쉬었다가 복귀한다는 절차와 체계가 마련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단체/운동에서 실행하고 있는 안식년(일 년 동안 유급 휴가)’이라는 개념이 없기도 했고 활동가가 쉬었다가 복귀한 경험도 거의 없었다. 개인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알아서 휴식이나 복귀를 결정하곤 했다. 나 또한 몇 년 정도 다른 단체에서 상근활동을 했을 때를 제외하면 생계를 위한 일과 청소년운동을 같이 해오다 보니 오히려 언제쯤 쉼을 가져야 할지 떠올리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다 2017년에 슬럼프를 겪었다. 활동한 지 10년째 되던 해였다. 새로운 운동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버겁고, 지금까지의 내 삶과 운동에 대해 좌절감이나 무력감이 커진 것은 그만큼 내가 지쳤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쉬기로 했다. 한때는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 쉬기에 괜찮은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그 시기를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선물해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청소년운동 안에서 비교적 오래 활동해 온 사람인 내가 쉼을 갖고, 재충전해서 다시 돌아오는 사례를 만들고 경험하고 싶었다. 비록 우리 단체의 상황상 유급 휴가도 아니고 일 년 동안 휴식도 어려워지긴 했지만(올해 10월에 복귀할 예정이다), 동료들의 응원과 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안식년, 제주도에서 보낸 시간. (사진: 난다 제공)

 

 

긴장 풀고 이완하기를 목표(?)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뭉친 몸과 마음이 단번에 풀리지는 않는 것 같다. 마음만큼 쉴 수 없는 사건들이 있어 매일 잠을 설치기도 했고, 쉬기 시작한 초반에는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도 했다. 아마도 쉬는 날들에 적응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제 약속한 시간의 절반쯤 보냈고, 앞으로 절반쯤 남았다. 사실 목표가 꼭 이뤄져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바라는 모습만큼 튼튼해지지 않더라도 슬퍼하지 않으려고 한다. 쉬는 동안 몸과 마음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기보다는 그저 아무래도 괜찮은 시간을 경험하고 싶다. 별생각 없이 요가 동작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어깨가 풀렸다고 느껴지듯, 문득 마음을 일으키고 싶은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다른 일들 탓에 몸과 마음이 뭉치더라도 다시 이완하고 풀어줄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