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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27호][사람들]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들을 더 잘 담아낼 수 있는 만화를 고민해요" - 조행하님 인터뷰

이번 [사람들] 코너에서는 '과거의 청소년인권운동가들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청소년인권운동의 삽화, 디자인 작업을 주로 맡아주셨던 조행하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을 하다보면 어디선가 한번쯤은 꼭 봤을 그 그림체! 아수나로, 투명가방끈, 전교조,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까지 두루 섭렵(?)한 조행하님의 이야기, 바로 만나보아요!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공현, 피아

 

그림 출처 : 조행하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부산에서 만화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영제라고 합니다. 예전에 아수나로에서 활동할 땐 활동명 겸 필명으로 행하(조행하)를 썼었는데 이젠 본명으로 작가생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셨던 청소년인권활동은 무엇인가요?

 

청소년이었을 때 학교 안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에서 체벌 금지, 복장, 두발 규제 금지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했었는데, 이걸 도와주거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찾다가 아수나로를 알게되었어요. 그렇게 2016년도에 아수나로 부산지부에 가입해서 활동회원으로 1년 정도 활동을 했어요. 그 이후에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느라 지부 활동은 멈추게 됐고요.

 

제가 하는 일이 주로 삽화 작업과 디자인이다 보니, 꼭 아수나로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곳에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제일 오래 일했던 건, 아수나로에서 발간하는 <청소년신문 요즘것들>의 대표 삽화 작업이었어요. 20163월에 발간한 요즘것들 9덕질의 자유부터, 20호랑 21호를 제외한 20203월에 발간한 26이제는, 학생 저항의 날까지 쭉 했었어요. 아수나로 10주년 스티커 요즘것들의 말대꾸도 디자인 했었고요. 다른 단체에서 한 일로는, 투명가방끈의 현수막 디자인을 했고. 전교조에서 1년에 한 번씩 발행하는 학생의 날 신문2번 정도 대문 삽화와 만평 작업에 참여했었어요. 외주격으로는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책의 표지 삽화를 그렸고요. 책에 필자로도 함께 했었는데, <걸 페미니즘>에 이승엽과 같이 페미니즘을 만난 남학생 - 남학교 청소년이 바라본 여성혐오라는 글을 썼어요.

 

 

<걸 페미니즘>에 쓰셨던 글이 트위터에서 여러 번 걸쳐서 회자되었어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제가 쓴 글을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잖아요. 어딘가 신선한 기분도 들었고, 속도 시원했어요. 남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안에 있는 여성혐오가 고인 물처럼 썩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주변에서 남학생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만 말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누군가가 이게 문제다하고 공론화하는 일도 여태까진 딱히 없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 것을 저희가 노골적으로 써버려서, 내부를 시원하게 폭로해버린 느낌이었어요. 그걸 많은 분들이 여러 차례 공감해주시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웠던게, 제가 학교 다니면서 그래도 친밀하게 지내고, 저를 신경써준 교사가 있었는데, 글에 그 남성 교사의 여성혐오적 언행을 폭로하는 구절을 적었었거든요. 그 글이 인터넷에서 거듭 회자가 되고, 책으로 출간이 되고 할수록 혹시라도 만에 하나 그 사람이 그 글을 보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지금은 별 걱정은 없는 것 같아요. 친밀한 건 친밀한 거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그림 출처 : 요즘것들 24호 대문 삽화 : 조행하님

 

아수나로 부산지부에서 했던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맨 처음 기억에 남는 건 남포동 거리에서 할로윈 때, 분장을 하고 학습시간 줄이기 캠페인으로 스티커 투표를 받는 활동을 했었던 거예요. 저는 그게 시민단체에 참가한 오프라인 활동으로는 처음이었어서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지부의 연락 담당이라든가 지부 내의 담당을 하나씩 맡아서 실무를 했던 게, 특별하게 단기적인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잖아요. 그 자체가 저로서는 또 그런 책임을 맡고 지부의 일을 맡아서 해 나간단 게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처음 부산지부 오프라인 활동을 한다고 해서 간 장소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였어요. 허름한 빌딩 안으로 들어갔는데, 벽에 딱 호치민 그림이 있었어요. 그리고 전면에는 맑시즘 포스터가 붙어 있고. 책장에 진보운동 하시는 분들이 낸 출판물 등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그런 것도 제가 살면서 처음 본 광경이라서 이게 운동권분들의 장소구나 싶었어요. 그것도 꽤나 큰 문화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장소가 그리운 것 같기도 해요. 거기서 회의를 많이 했는데, 이런저런 활동 이야기를 나눈 것들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억압적인 고등학교 생활에서 일탈이기도 했기 때문에.

 

 

청소년인권운동을 하시다가 이후에 어떤 삶의 경로를 밟아오셨나요?

 

원하는 대학 전공 학과에 합격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만화가를 준비하고 있는데, 합격했던 학교에서 제가 원했던 만큼 만화를 잘 가르쳐주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휴학을 하고 혼자서 만화 공부를 하면서 프로 만화가가 되기 위한 이야기 공부, 시나리오 공부 등을 하고 있어요. 이야기에 담길 소재들을 공부하는데, 제가 아무래도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그런 사회적인 메시지들, 진보적인 메시지들을 좀 더 재밌게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관련 학문이라든지 글 같은 걸 찾아 읽어 보기도 하고요. 그런 공부들이랑 만화 공부, 사회 공부 등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만화가/삽화가로 작업을 하시면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할 때의 경험이 영향을 주나요?

 

, 아무래도. 삽화를 처음 그릴 때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사람을 그릴 때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편견 없이 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자리잡게 됐던 것 같아요. 여러 명을 그릴 상황이 오면 성별이라든가, 나이 상관없으면 연령대라든가, 장애 등등을 신경쓰며 그렸어요. 그리고 제가 만화를 그리려는 사람이라서, 이야기 속에 그런 문제의식을 넣고 싶었거든요. 근데 제가 아직까지는 대표할 만한 이야기라든가 만화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그려 낼 만화에서 그런 문제의식들을 더 잘 드러나게 작업하고 싶어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느끼기엔 한국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의 입지가 굉장히 좁은 것 같아요. 요즘 많이 관심 가지는 건 페미니즘이고.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도 많잖아요. 근데 청소년인권에 대해서는 크게 이슈에 오르거나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오랜 시간동안 활동을 이어오시고 사람들을 모으고 사업을 벌이고 유지를 해나가시는 게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해요. 제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서 드문드문 청소년인권 활동가분들이 올리시는 글을 보면 많이 힘들어하시는게 보였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고 계시는 것같아서.. 좋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활동이랑 멀어져 있다 보니 제가 하는 말이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어서 표현에 고민이 드네요.

 

그리고 부산지부 분들께 따로 하고 싶은 말은.. 제가 너무 갑자기 활동을 그만둔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 연락 같은 것도 제대로 못 드리기도 했고, 의도치 않게 답장을 못한 적도 있어요. 과거 같이 활동한 분이 보낸 메시지를 제가 읽고 답장을 안 한 적이 있더라고요. 몇 개월 뒤에야 그걸 알았어요. 부산지부가 활동이 잘 되던 지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 갑자기 떠나서 죄송하단 말씀과 당시 1년 몇 개월 활동했을 때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 또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해보면 좋을 거 같다고 말을 남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