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4호][사는 이야기] 외국어를 잘 못 하면 외국에 가지 말아야겠다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2018년부터는 활력소 준비팀(청소년운동기록모임) 멤버들의 편집자로서의 권한으로(?) SNS 등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글을 싣습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현재 편집 멤버인 치이즈, 난다에게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에서 활동하는 공현 님의 유엔아동권리위원회(제네바) 방문기를 실었습니다.

 

 

9월에 스위스 제네바에 갔다 왔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유럽 여행이라도 즐긴 것 같겠지만, 순전히 일을 하러 간 것이었으며, 일단 나는 해외 여행을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영어를 포함하여 외국어에 매우 서툴고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하며 외국에 가면서 그 나라 말을 기초적 수준도 못하는 건 예의가 없는 것이란 가치관까지 가지고 있다. 돈 들이는 것도 그렇고 장시간 비행기 타기가 힘들다는 점도 그렇고, 여행은 그냥 한국 안에서 다니면 되지 멀리 가는 것은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이번에 제네바에 가게 된 것은 UN아동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에 대한 정기 심의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UN인권기구 심의 과정에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가가 참여해 보면 좋겠단 욕심은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다. 다만 나 아닌 다른 가까운 활동가가 갔다 와서 이야기 들려주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 8월 중순쯤 급하게 제안을 받았는데, 이번에 민간단체 보고서 작성 등의 과정에도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지라 내용 이해도도 높았고, 또 일주일쯤 시간 내서 스위스에 다녀올 여건에 있던 사람도 별로 없었기에, 결국 내가 스위스에 가게 되었다.

 

공익법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두루의 변호사와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람들의 도움 속에 숙소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는 해결할 수 있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분담금을 모아서 비행기 값과 숙박비 등 체류비를 대 주었다. 스위스에서 머문 시간은 9월 15일부터 19일까지 총 4박 5일이었고, 15일 밤에 제네바에 도착하여 16일부터 19일까지 매일같이 회의, 아동권리위원회 위원 미팅, 자료 작성, 심의 현장 모니터링 등을 했다. 돌아다닐 일이 없고 한국 활동가들에게 찰싹 붙어서 다니니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제네바는 식당 메뉴판에 요리마다 들어가는 재료들이 대부분 설명되어 있고 채식자를 위한 메뉴가 따로 있는 경우도 많아서 식사는 오히려 편한 측면도 있었다. 가격은 비쌌지만.

 

최대의 문제는 UN본부에 들어갈 때나 UN아동권리위 위원을 직접 만날 때 생겼다. UN본부에 들어갈 때는 미리 신청했던 통행증 발급에 좀 문제가 생겨서 프론트에서 돌려보내질 위기에 처했는데, 직원이 하는 말(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발급받는 걸로 신청을 해서, 이중으로 발급을 해 줄 수가 없다는...)을 대충 알아먹긴 하겠는데 내가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패닉에 빠졌다. 결국 다른 활동가를 급히 데려와서 설왕설래 끝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함께 방문한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사진 : 공현)

 

위원들과 만나서 한국 사회의 인권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이러저러한 질문이나 지적을 해 달라고 요청을 할 때도 말을 못하는 게 문제였다. UN아동권리위원회의 공식 일정 때는 동시통역이 제공되었지만, 위원들과 따로 만나는 자리에서는 우리가 알아서 의사 전달을 해야만 했다. 내가 직접 영어로 설명을 했다면 예를 들어 10문장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을, 한국어로 말하고 다른 사람이 영어로 통역을 해 주려 하다 보니까, 아무리 사전에 준비를 했어도 6문장만큼밖에 내용을 전하지 못한다. 위원들 미팅은 보통 1시간 이내로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고, 전달할 이슈와 내용은 너무 많기만 하다. 그러니 영어로 직접 말을 못 해서 낭비된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위원들 여러 명이 좀 멀리 떨어져서 말을 빠르게 할 때는 내용을 알아듣고 쫓아가기도 버거웠다. 외국에 UN아동권리위원회 심의 대응을 가려면, 역시 영어 실력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다음번에는 영어 좀 하는 활동가에게 미리 UN인권기구 절차 등에 대한 이해나 보고서 내용 등에 대한 이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제네바 체류에 관한 일상적인 정보들은 내 블로그에 따로 정리해 두었으니, 혹시 나중에 제네바에 갈 일이 있는 활동가들은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