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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23호] [사람들] "청소년인권운동은 그 자체로 삶의 치료제" 입시와 활동을 병행했던 '푸딩'님을 만나다

이번 [사람들] 코너에서는 아수나로가 발행하는 청소년신문 요즘것들의 필진이셨던 '푸딩'님을 만나보았습니다. 푸딩님은 현재 대학 입시 때문에 불가피하게 활동을 쉬고 계신데요, 이전에도 입시와 요즘것들 활동을 병행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대학 입시 준비가 청소년의 숙명처럼 여겨지는 사회이기에 청소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굉장히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인권단체이지만 막상 입시가 끝나고 비청소년이 되어서 활동을 하겠다고 하시는 청소년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과거에 청소년인권활동을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현재는 활동을 하는 게 어렵지만 입시가 끝나면 활동을 더 활발히 하겠다는 푸딩님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푸딩'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요!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치이즈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요즘것들팀 활동을 하다가 그만 둔지 세 달쯤 되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사실 요즘것들팀 활동을 할 때도 그랬지만,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집에 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전엔 그 사이에 활동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서 희망이 없어진 느낌이다. 학교에서 불합리한 삶을 살다가도 활동을 하면 그런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는데 지금은 그저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활동을 쉬면서 경남학생인권조례 운동 소식을 들었는데, 농성을 시작했을 때 경남에 너무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 학원에 있었고,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무기력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게 당연해진 느낌이었다.

 

 

지난 요즘것들팀 활동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좋았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좋았던 때는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23호의 기사를 마쳤을 때다. (기사 : ‘어디로 갈 수 있을까’ https://yosm.asunaro.or.kr/378) 일단 내가 할 일이 끝났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썼던 기사 중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했다. 몇 년 동안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데, 그런 경험을 가진 청소년들을 위해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걸 하고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팀에 적응하는 데에 오래 걸려서 그 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힘들었던 순간은, 어디 들어가서 바로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성격이라, 처음에 편집회의를 했을 때 사람들이 빠르게 수정 의견을 내놓는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온라인회의를 자주 하다 보니 천천히 의견을 쓰고 있는데 비슷한 의견들이 먼저 올라와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기사를 쓸 때도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려고 해도, 나 같은 경우는 단체에 들어오자마자 팀 활동을 하다 보니까 아는 사람이 치이즈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누구한테 물어보아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과거로 돌아가서, 아수나로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아수나로에 들어오기 전에 요즘것들을 먼저 알았다. 트위터를 통해 처음 웹진에 있는 기사들을 읽어봤는데 너무 공감이 되었다. 그 때는 고1때였는데, 매우 힘들었다. 야자 시간에 계속 자기만 했다. 불합리한 걸 경험했을 때도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면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아수나로에 들어오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수나로 SNS에서 천안추진모임에서 영화를 상영한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 때 친구랑 갔는데 이알님이랑 청인님이랑 나랑 딱 넷이었다. 청인님은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이알님은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청소년인권 그리고 청소년인권 활동이 푸딩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늘 자거나 인권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지냈다. 청소년인권 운동의 주장은 급진적이어서 마음에 들었고, 실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걸 할 수 없다는 게 슬프기도 했다. 그런 주장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삶에 치료제가 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살지만, 저 너머에는 이런 주장을 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힘이 됐다.

 

어렸을 때부터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빠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다 알고 있다, 말할 때와 말하지 않을 때를 가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학교 역시 내가 하는 말들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소년인권운동에 들어오니까 토론 자리가 있으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고 있더라. 처음에는 잘 적응이 안 됐다. 원래 할 말이 되게 많았는데 막상 기회가 오니 생각보다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기회가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듣는 게 익숙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활동을 하면서 점점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계속 비주류였던 것 같다. 엄한 가정에서 자라서 그런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주변 사람과 내가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들어오니까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INTP(MBTI의 성격 유형 중 하나. '논리적인 사색가형'으로 알려져있다.)만 모일 수가 있지? 총회 때 모인 활동가들이 다 INTP 라고 해서 너무 신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맞거나 꾸지람을 듣다보니 윗사람만 보면 공손하게 대하는 게 기계처럼 배어 있었다.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공손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그런 이미지였는데, 활동할 때의 나와 학교에 있는 내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학교 활동과 단체 활동을 병행하다보니 삐걱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학교 과제랑 활동을 다 하느라 잠을 포기하기도 했다. 또, 부모가 활동하러 가는데 붙잡아서 못 가기도 했다. 일탈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윗사람의 말을 거역하고 내 맘대로 하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게 몸에 새겨진 것 같다.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청소년인권 운동의 주장은 무엇이었는지?

 

청소년들이 가정에 묶여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청소년도 사생활을 가져야 하고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할 때, 부모는 내가 선동 당했다고 했다. 선동을 당한 거라고 해도 그게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부모와는 그런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아수나로에 들어오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해왔다. 학교에서 발표할 때 그런 주제로 발표하거나 학교에 청소년인권 내용이 담긴 종이를 붙이고 다녔다. 그런데 부모는 네가 단체에 들어가서 선동당한 거다, 너는 원래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더라. 내가 지금 정신과를 다니고 있으니까, 청소년인권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게 정신적인 문제인 것처럼 몰고 가기도 했다.  

 

 

활동하면서 처음 해보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또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대전추진모임에서 여성청소년수다회를 열었다. 행사 주최를 하면서 예산안을 짜고 기획을 하고, 진행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데 그런 게 다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사회를 보는 건 나한테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할 사람이 얼마 없어서 팀 안에서 진행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때 너무 떨렸다.

 

남들 앞에 서는 일들이 너무 어려웠다. 활동에는 다양한 영역이 있으니까 앞에 서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찾아보려고 한다. 회의 때마다 이렇게 말해야지, 이렇게 말해야지 하는 계획을 세워서 ‘인싸력’을 끌어 모아서 한다. 여전히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렵다.

 

처음에 왔을 때 반겨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게 없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회의 끝나고 노래방에 간다거나 했을 때도 재밌었다. 활동을 하고 뒷풀이를 할 때도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보는 학생들은 대부분 취미가 획일화되어 있어서 다수와 좋아하는 게 다를 때 부담스러웠다. 여기는 각자 좋아하는 게 워낙 다양하고 그걸 당당하게 표현하니까 좋았던 것 같다.

 

 

푸딩님에게 입시란 어떤 의미를 가지시는지도 궁금하다.

 

입시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 있던 생애 주기의 한 단계 같은 느낌이다. 현재 나의 모든 선택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입시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없고, 교사나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한다. 입시가 아니라 다른 길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없고, 선택권도 없는 느낌이다.

 

무슨 활동을 하던 나는 끝나고 또 도서관을 가야하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입시는.

 

 

입시가 끝나고 나면 무얼 하고 있을 것 같나.

 

이알이 수능 날 차를 끌고 와서 시험을 치르고 나온 나를 회의로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어쨌든 활동 계속 하겠다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본 적이 없고 3년 동안 공부만 했는데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입시가 끝나면 농성장에서 밤도 새보고, 시위하는 곳마다 갈 것 같다. (신남)

 

 

푸딩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현재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정이 없어야 하고, 학교가 없어야 한다. (!!) 그리고, 충분한 덕질을 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학교 끝나자마자 도서관에 갔다가 학원에 갔다가 집에 가니까 정말 나의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1~2시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공부하기 싫을 때는 도서관에서 트위터를 하거나 노래 듣는다. 하루 종일 책 읽으면서 보내기도 한다. 어쨌든 도서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매주 월요일에만 도서관 휴관일이어서 가지 않고 집에서 누워서 논다. 그러나 눈치가 보인다.

 

 

마지막으로, 청소년활동가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오늘도 입시의 세계에서 트위터로 여러분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여러분 보고 싶어요!”

 

푸딩님과 푸딩님이 사랑하는 마라샹궈가 함께 있다 (사진: 치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