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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2호][사는이야기] 3월 27일의 일기 : 학교 안의 나를 너무 부정하지 말아야겠다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2018년부터는 활력소 준비팀(청소년운동기록모임) 멤버들의 편집자로서의 권한으로(?) SNS 등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글을 싣습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현재 편집 멤버인 치이즈, 난다에게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에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권리모 활동가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글로 일기를 쓰려다보니 귀찮기도 하고 시간도 없고 힘들어서 쓰는 오늘의 일기. 손글씨로 쓰고 싶지만 요즘 상태가 안좋은 내겐 너무 고난이도의 일이다!

 

이 세상에 바뀌지 않는건 없다고, 숏컷이 왜인지 두려워 단발을 유지하던 내 머리카락은 짧아졌고, 어떤 별들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자퇴할거라 다짐했던 때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학교에서 버텨내고 있고, 나는 벌써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항상 교사들에게 되도 않는 자그마한 키로 대들었다. 그건 차별적인 발언인 것 같은데요, 동성애는 에이즈로 직결되지 않는데요- 라는 말들과 함께 폰을 무작정 사용하기도 하며 괜히 심술을 부렸겠지. 나의 작은 반항을 '심술'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방법이 어찌 되었든 저항하는 사람이 아닌 '아직 미성숙해서 사회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의없이 대드는 아이'로 비춰졌음에 있다. 몇년전도, 제작년도, 작년도. 나의 삶은 그렇게 어쩌면 다를 것 없이 유지되었다.

 

올해도 학교를 다닌다는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 속의 나는 변했다. "요즘 학생인권 하는데 그렇게 자는거 교권 침해고 다른 학생들 학습권 침해야!" 아무 말 않았다. 조용히 들으며 날랜 글씨체로 기록만 해놨다. 예전이었으면 무턱대고 "자는 행위는 시끄럽지도 않고, 지금은 조별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학습권 침해죠?" 라거나 "교권의 정의가 뭔데요? 정확히 어디가 침해되는건데요?" 라는 등의 말을 했지 않으려나 싶었다.

 

가만히 있고, 교사의 비위를 맞추고, 어쨌든 죄송하다 고맙다 네 그렇습니다! 해야 하는 삶은 내게 무기력감과 무덤덤함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뿅하고 사라지나? 지금까지의 내 삶은 뭐지? 학교가 건물 이라면 나는 그 건물 속의 묵힌 먼지 같았다. 내 존재가 희미해지는 기분. 그러나 그 시간들도 내 삶이겠지. 조용히 있고 가만히 있고 침묵한다고 내 이전의 고민과 흔적들이 지워지는건 아니겠지. 그리 생각하며 나는 학교 안의 나를 너무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삶은 지금 이순간이 아닌, 미래도 아닌, 내가 존재해 온 때부터 무수히 긴 순간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흔적들이니까.

 

우주에는 공기가 없어 달에 흔적을 남기면 누군가 일부러 지우지 않는 이상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나, 그리고 많은 곳에서 싸우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흔적도, 그처럼 지워지지 않았으면.

 

 

- 글: 권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