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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22호][사람들] "디자인도 활동의 한 영역" 청소년운동을 디자인하는 '정다루'님을 만나다

이번 [사람들] 코너에서는 자타공인(?) 청소년운동의 디자이너 '정다루'님을 만나보았습니다! 활기와는 활기 브로셔, 빽빽프로젝트 홍보물 디자인을 맡아주시며 인연을 쌓은 분입니다. 여러 활동들을 하다보면 홍보가 참 중요한데요. 그렇다보니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를 매번 고민하게 됩니다. 만약 각 운동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어느 활동가의 숨은 노고가 있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여느 운동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청소년운동은 '전문(?) 디자이너'에게 제작을 요청할 여건이 안 되어서 몇몇 활동가들이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디자인을 주먹구구 식으로 해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인터뷰를 정리하다보니 청소년운동을 스쳐간, 디자인 실무 역량을 스스로 갈고 닦았던, 여러 활동가들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청소년인권운동 인포그래픽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하시는 '정다루'님의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다루'님의 이야기를 만나보아요!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치이즈

 

 

 

 

청소년인권운동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

 

원래 인권에 많은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노동 문제 기사 가끔씩 보고, 이명박 정부 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소식 같은 것 듣고 하는 정도?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서 국가고사(일제고사)를 보는데, 어떤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거부했다. 교사는 이 시험을 보지 않으면 출석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강제했다. 그래서 결국 모든 학생들이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어떤 학생이 일부러 객관식 문제의 답을 한 번호로 쭉 답하는, 일명 한 줄 찍기를 했다. 그걸 교사가 알고서 해당 학생에게 벌을 주고, 아침마다 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깜지를 쓰게 했다. 깜지를 쓰지 않으면 때렸고, 나중에는 앉았다 일어나기와 같은 간접 체벌을 했다. 그 때 ‘이게 뭐지?’ 하는 싶었다. 잘 몰라도, 일단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뭘 할 수 있을까 찾다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라는 단체를 알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가입했다.

 

 

가입해서 어떤 활동을 했나.

 

다니던 학교에서는 기숙사도 성적순으로 방배치하고, 핸드폰도 다 압수했다. 교문지도를 하는데 무릎에 자를 대서 치마 길이를 쟀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단속을 하는지 학생들한테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요구했더니 담임 교사가 학급 게시판에 기준표를 붙였다. 그런데 게시되어 있는 규칙과 실제 적용하는 것이 달랐다. 이유를 물었더니 3월이라 첫 달은 더 엄격하게 잡아야 한다고 하더라. 퇴학 기준 벌점이 120점이었는데 한 달에 열흘 정도 넥타이를 안 매고 오면 퇴학이 될 정도로 벌점을 많이 주고 있었다. 전북학생인권조례를 인쇄해서 학생부실에 가서 따졌다. 교사들로부터 온갖 비웃음과 이상한 말들을 들었다. “원래는 용의불량 검사를 하면 안 되지만 특별 단속 기간이니까 잡아도 된다.”, “여학생들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 남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 “학생들이 미성년자니까 선도를 해야 한다.” 등등. 어떤 교사는 “나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거니까 봐 달라, 벌점 입력 업무를 막내인 자기가 하니까 너는 빼주겠다”고 하기도 했다.

 

혼자서 하면 꼰대질만 듣고 끝날 것 같아서 사람을 모으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다들 겁에 질려 있었고,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너 큰일 나”라는 말을 들었다. 교사들은 지나가면서 내가 인사해도 받아주지 않았고, 그 이후부터 교문지도를 당하지 않기 위해 6시에 첫 차를 타고 학교를 갔다. 아니면 아예 늦게 가거나. 깜지를 쓰게 할 때도 일부러 안 하고 때리라고 손 내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모든 것을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무언가를 하지 못한 게 여전히 아쉽다.

 

 

디자인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기 전에도 꾸미는 걸 좋아했다. 더 보기 좋은 방식으로 바꾸는 것. 항상 어디를 가든 그런 게 눈에 띄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디자인이 필요한데도 활동가들이 그 중요성을 잘 모르고 디자인에 무신경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2016년 여름에 아수나로 총회에 갔는데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디자이너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전까지 신문 디자인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얼떨결에 지원하게 됐다. 이전에 디자인을 하던 영서한테 어렴풋이 인수인계를 받고, 이전 호들을 뜯어보면서 비슷하게 모방하는 식으로 디자인을 했다. 처음 요즘것들 14호를 그렇게 했다. 인디자인도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것들을 디자인해왔나.

 

- 아수나로, 활기 브로셔

- 체벌거부선언 포스터, 책자, 스티커

- 요즘것들 14호 - 23호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토론회 자료집

- 빽빽프로젝트 브로셔 및 웹 홍보물

등등

 

보통 활동가들이 홍보를 위한 간행물의 디자인을 부탁할 때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문안만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업 계획서 같은 걸 찾아서 읽고 어떤 사업인지 파악한 후에 디자인의 상을 잡을 때도 있다. 아수나로에서 발간한 체벌거부선언 포스터 같은 경우는 사업을 파악할 때, 청소년과 부모과 교사, 세 단위의 선언이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각각 표지에 그려서 선언의 주체를 드러내려고 했다. 학생, 학부모, 교사를 그려 넣으려는데, 각각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찾기 위해 구글에 검색을 했다. ‘학생’을 검색했더니 나오는 이미지가 완전 단정하게 교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었거나 전혀 교복을 입지 않은 소위 ‘날라리’ 학생만 나오더라. 현실과 괴리된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결과적으로 학생을 그릴 때는 교복 치마 아래에 체육복 바지를 받쳐 입게 했다. 이런 식으로 청소년이 들어가는 디자인을 할 때, 청소년에 대한 허구의 이미지를 깨면서도 그것이 어쨌든 청소년이라는 걸 알아보게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있나.

 

일단, 전문성이 부족하다. 디자인은 기술이라 갈고 닦아야 하는데 그런 숙련이 부족했다. 제대로 배워서 한 디자인이 아닌 지라, 전문 기관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도 있는데, 나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청소년운동 근처를 돌면서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내가 활동가로서 한 게 있었나 싶어서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디자인도 큰 실무 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디자인은 모든 게 완성되고 그것을 실체화하는 작업이지 않나. 그 전의 기획에 참여하는 것이 막연하고 두려운 것 같다.

 

한편으로는 디자인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겉모습에 치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각디자인이 잘 발달한 영역이 상업이지 않나. 주로 무언가를 팔기 위해 홍보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이것과 인권 활동이라는 영역이 붙어있을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디자인하는 페미니스트 모임이 있던데 그런 사람들의 고민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하는 이유는?

 

보기에 잘 만들어져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행사의 웹자보 디자인이 부족하다면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딱딱하고, 명조체로 가득 차 있으면 행사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주니까. 원래 인권 활동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일단 디자인이 재밌기도 하고, 디자인이 가진 힘을 아직은 더 알아가 보고 싶다.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나.

 

안과 밖이 떨어져 있는 디자인을 제일 경계하는 것 같다. 그냥 예쁘기만 해도 상관없지만, 이 분야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내가 왜 이 디자인을 하는지 계속 생각하면서 디자인을 해야 한다. 예컨대 아수나로의 경남 지부 활동가분들이 하는 디자인을 보면, 활동가들이 직접 활동을 기획하시면서 같이 디자인을 하니까 의도하는 분위기와 디자인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디자인도 활동의 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활동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디자인에 잘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선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앞으로 디자인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청소년인권운동 인포그래픽 프로젝트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청소년인권운동 관련 통계 자료를 모으고 싶고, 그것을 닿기 쉬운 형태로 만들고 싶다. 그런 자료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써먹기도 쉬울 테니까. 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는데 혼자 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서 해야 할 것 같다.

 

 

청소년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디자인을 청탁할 때는 이 사업이 어떤 인상을 주고 싶은지 정도는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것 역시 기획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감이 급하면 디자인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셔야 한다. 그러니 공들여서 하고 싶으면 미리 주시라.

 

나는 디자인을 할 때마다 다른 활동가들과 멀리 있어도 도울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디자인을 하면서 활동에 도움이 되고 싶다.

 

 

(생생한 현장을 전하기 위해 마지막 말은 다루님의 입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전국에 계신 활동가 여러분!!!!!!!!!!! 제 생계를 책임져 주세요!! 활동이 없으면 디자인도 없으니 같이 갈립시다. 저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여러분과 저는 함께 굶습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저희 식당에서 식사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와 손님은 함께 굶습니다" 라는 글자가 창문에 붙어있는 식당 모습입니다. (사진 출처: 다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