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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3호] 『안티조선운동사』 : "조중동"이란 말이 언제 만들어졌나 궁금하다면

[덕질(?)들]

책 『안티조선운동사』

: "조중동"이란 말이 언제 만들어졌나 궁금하다면

공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다른 청소년활동가들과 같이 보고 싶고 같이 나누고 싶은 나의 덕질(?)들을 받는 리뷰코너입니다.

세 번째로 활기의 공현이 책 『안티조선운동사』를 소개해줬습니다.

소개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덕질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활력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조중동문' 체험담


"조중동"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쓰고, 또 자주 듣는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보수/수구 언론들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여기에 문화일보를 더해서 '조중동문'이라는 말도 간혹 쓰곤 한다. 청소년운동을 하다보면 이 보수/수구 언론들과 계속 부딪치게 된다. 이들은 때로는 견강부회와 왜곡으로, 때로는 보수적인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대변하여, 학생인권이나 청소년인권을 공격한다. 


2010년 7월,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도 이런 언론들이 펜 끝을 겨누었다. 동아일보가 1면에 아수나로라는 중고생 단체가 일제고사-교원평가제 반대 운동을 한다는 보도를 내놓았고,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이 가세하여 '아수나로'가 '진보교육감'의 응원부대라느니, '홍위병'이라느니 하는 보도를 연달아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사설까지 쓰며 중고등학생들의 정치적 활동이 부적절하다고 날을 세웠다.


아수나로가 몇 년 전부터 계속 일제고사 반대 운동 등을 해온 것은 외면하더니, 2010년 7월에 갑자기 그런 보도를 쏟아낸 의도는 명백했다. 당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였던 것이다. 그 뒤에도 학생인권조례나 청소년들의 정치적인 활동과 목소리 내기에 대한 보수/수구 언론들의 부정적인 보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단 청소년운동만이 겪는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 많은 운동들이 이런 공격에 시달려본 경험이 있고, 시달리고 있다.




이런 언론들에게 화가 나는 사람들, 언론들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있어왔다. 많은 시민들이 언론의 불공정하거나 수구적인 보도 행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바로 그런 시민들의 문제제기, 시민운동을 기록한 책이다 바로 1990년대 있던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책의 시작은 '안티조선' 운동 이전의 언론운동을 조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책 표지에 1920년이 써있는 것이다.) 그리고 『안티조선 운동사』는 "조중동"이란 조어의 유래 역시 알려주고 있다. 2000년 10월, 한겨레신문 정연주 논설위원의 손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저자인 한윤형은 안티조선 운동을 통해 10대 시절 정치적인 활동에 '입문'하고, 정치 평론 활동을 해왔고, 여러 책들을 출간했으며, 지금은 미디어스 기자 일을 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청소년운동을 만난 여러 청소년활동가들도 공감할 수 있는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윤형이 자신의 정치적 활동의 시작이 된 운동을 총정리해낸 것은, 나 개인적으로는 좀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안티조선 운동사』부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이다. 책을 읽어보면, 15~20년 남짓한 사회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가지고 '또 하나의 역사'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단순히 안티조선 운동이라는 운동에 대한 역사 정리에 그치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후반까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안티조선 운동' 관점에서의 조망이며 평론이다. 그리고 특히 노무현 정부에 대한 한 안티조선 운동 참여자의 평론이기도 하다. 한윤형은 『안티조선 운동사』를 운동사인 동시에 안티조선 운동과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해석 또는 평론으로 위치 지우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안티조선 운동이란 프리즘으로 바라본 지난 15년간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 (p.15. 여는 글.)


이 책은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기록과 평가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윤형의 견해나 논평이 삽입되어 있고, 한국의 민주주의나 한국 사회, 언론의 성질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이다. 한윤형 자신이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였으며 안티조선 운동을 통해서 정치적 사회적 의식이 성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진영 논리를 넘어


"이런 논리에 다가서면, 여기에는 ‘우리 편은 우리 편이니까 옳고, 상대편은 상대편이니까 그르다’는 자폐적인 답밖에 남지 않는다."(p.268)


"참여정부는 대단히 미심쩍은 논점을 손에 쥐고서 조중동과 분쟁을 일으켜 그들의 몰상식함을 이끌어 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를 반대한다면 이런 저열한 의사소통 방식을 넘어서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 저열한 의사소통에 동참하는 일이었다. 소위 개혁 언론들은 참여정부가 그어 놓은 전선에 따라 별수없이, 혹은 자의에 의해, '조중동과의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이를테면 공정한 잣대로 쌍방을 평가하지 못하고 '패싸움'에 휘말린다는 인상을 주었던 셈이다. 그 결과 참여정부를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더 '《조선일보》 비판' 활동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됐다."(pp.361-362)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를 비판함으로써 한국 언론들에게 중론이나 여론을 관성적으로 대변하고 답습하는 것을 넘어 공론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강제해야 했다."(p.464)



『안티조선 운동사』를 읽고 머리에 남은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운동이, 정치가, 언론이, 담론이,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중동이 왜곡 보도를 하기 때문에 싫어하는가? 아니면 우리와 대립하는 보도를 하기 때문에 싫어하는가? 이 '공정성'과 '당파성'이라는 이 두 가지 문제는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었다. '안티조선'도 공정성과 당파성의 두 가지 측면에서 조선일보의 논리를 넘어서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안티조선 운동은 당파성과 공정성의 그 두 가지 가치를 각각 지키지 못했고, 쉽게 두 가지를 섞거나, 당파성에 경도되기도 했다.


('조선일보=친일파'라는 공식을 이용해 안티조선이 대중화되던 시절을 서술하며 "운동은 어디까지 단순화될 수 있는 것일까?"(p.190)라는 질문을 던지는 챕터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편파적으로 공정한 것이 가장 편파적인 것이다'라는 말 자체도 안티조선 운동에서 등장했던 말(정확히는 유시민 씨가 쓴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말은 겉으로는 공정성이라는 잣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 잣대를 편파적으로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편파적인 행태이며, 사회의 불공정한 현실 속에서 단순한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진정한 공정성을 달성하기 위한 보도를 하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안티조선 운동은 과연 '공정하게 편파적'이었나? 어느 순간 '편파적으로 공정한' 함정에 빠졌던 것은 아닌가? 우리 역시 우리의 가치-당파성과 공정성을 조화롭게 지키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말일 것이다. 특히 현실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수많은 진영 논리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사회적으로 그 영향력이 작지 않았던 하나의 사회운동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대중화되었고 어떻게 진행되다가 '실패'했는지, 그런 기록을 담은 책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한국 현대사 속의 운동은 말이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사람들에게 언론에 대한, 사회 운동에 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활동가들은 아마 이 책에 활동가이기 때문에 더 많이 공감하고, 더 많이 자극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단, 책이 480쪽으로 꽤 두껍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