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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1호] [사는 이야기] 청소년활동가 심리상담지원사업을 마무리하며

[21호] [사는 이야기] 청소년활동가 심리상담지원사업을 마무리하며


활기는 2018년 1년 동안 폭력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거나 진행 중인 청소년인권활동가 8인에게 심리상담비용이나 정신과 진료비용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지원받은 사람들 중 4명 (권리모은선율두즈콜비)과 함께 모여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 4명은 각각 창원의 모 심리상담센터(권리모)와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은선율두즈콜비)에서 10회기에서 14회기 진행한 사람들입니다. 


- 정리: 밀루



상담을 받는 것이 또 하나의 부담이 되다


4명 중 2명은 상담이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각각 다른 이유다. 권리모는 부모를 동반해야 하고, 부모에게 상담 내용이 알려지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상담을 받으며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도 들었다. 은선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말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과 정리된 내 모습만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거리감을 상담을 중단하게 된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친권자와 함께 상담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


권리모 : 상담을 한다고 했을 때 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권자(부모)와 함께 와야 한다며, 상담 전날 밤에 문자로 통보가 왔다. , 처음 상담을 받기 위해 설문지를 작성하는데,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ok 표시를 했다. 그 후 상담에서, 친권자가 있는 앞이었는데, 설문 내용을 언급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 땐 연락하라고 하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상담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더라. 아무렇지 않은 척 대충 대답하고,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가는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되더라.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은 주체적인 사람이라는 주장을 강조하니까, 살아가면서 선택을 주도적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이고 잘 해야 할 거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진짜 내 모습보다는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았다.”


은선 : 나는 중간에 그만뒀다. 학교와 활동을 비롯해 다른 일정이 많다보니 상담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었고, 상담을 받고자 하는 대기자가 많이 밀려있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기간을 두고 힘들 때 찾아가기보다는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상담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해오라고 했지만, 딱히 아무 말 하지 않고 싶을 때도 있고, 학교 때문에 상담을 거의 이른 시간에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나와서 아무 생각이 안 들고 멍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도 꼭 무언가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들었다.

일기를 적어 와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상담사가 제안해서 그렇게 했다. 당시 농성을 한창 할 때였다. 일기 적다보니 하루 동안 있었던 안 좋은 일만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 같고 좋은 건 기억이 안 나더라. 나쁜 것밖에 기억이 안 남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담 다녀오면 일기장 적었던 걸 찢어버렸다. 갖고 있기도 싫어서. 상담을 중단하고 일기를 적지 않게 되니 오히려 더 편안하더라.

진짜 내 모습보다는 정리된 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고, 정리된 생각을 알려줘야 할 것만 같았다. 주변 사람보다는 거리감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고, 긴 기간을 두고 그 사람이 나를 알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다만 좋았던 것은, 동정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 통통톡에서 진행하는 요가, 명상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는데, 그런 걸 통해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담은 평소에 말할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쉼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일이 추가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상담을 받으면서 도움이 되고 편안하다고 느꼈던 순간


다른 2명은 상담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공통적으로 상담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콜비는 잘 먹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고 말하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일상의 부담감을 해소해주는 분위기를 말했다. 율두즈는 힘들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상담사가 말없이 기다려주었던 것을 말했다.




지금 여기에 온 것만으로도 수고했어요.”


콜비 : 상담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게 크지 않다. 잘 먹고 잘 자는 것뿐이다. 힘들 때 전화만 해도 잘하셨다.”고 한다. 상담에 가면 지금 여기 온 것만으로도 수고했다.” 이런 느낌으로 맞아주어서 부담이 거의 없었다. 지난주에는 뭐했느냐고 질문 받으면 아무것도 안했어요.” 라고 말하곤 했다.

다만, 남성 비청소년과 놀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일반적인 성인은 미성년자와 밤새서 놀지 않아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웃어넘겼고 괜찮았지만 이런 이야기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상담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 좋았던 것은 체념하기. 힘든 감정이 들 때 이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은퇴했는데, “그 가수가 은퇴한 게 왜 그렇게 슬펐을까?”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먹을 것이 있느냐고 물어봐도 돼요.”


율두즈 : 6월에 상담을 처음 받았다. 그때가 제일 힘들 때라 초반엔 계속 말을 못했다. “상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상담사는 1~2분 심각한 표정으로 있다가 다른 질문을 했다. 초반엔 계속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말할 수 있는 질문엔 대답했다.

확실히 나도 정리해서 이야기해야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편했던 것 같다. 평소에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해서 비교적 잘 맞았던 것 같다.


은선 :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몰랐다.


율두즈 : 8월에 조금 굶었다. 상담에서 그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다. “오늘 밥 드셨나요?” “한 끼도 안 먹었어요.” 그전부터 상담이 끝날 때 질문하고 싶은 것이나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왔는데, 그 얘기가 나오고 나서 마지막에 먹을 것이 있냐고 물어봐도 돼요.”라고 하며 초코파이 등을 챙겨주었다. 다음 주에 가니까 사람마음에서 우울증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밥을 잘 못 챙겨먹는 내담자들을 위해서 (먹거리 패키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좋았다. 사과, 파프리카, 팩두유 등이 들어있었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계속 부모와 싸우고 있다. 에너지가 소진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에 대해서 계속 상의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구도 해결해줄 수는 없는 문제이지만.


나가며


4명에게 상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우리가 정서적 힘듦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만날 때 참고할 수 있는 사항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그런 청소년을 만났을 때 함께 무엇이라도 하자고 재촉하고 더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반성하게 됐다. 상담을 받은 활동가들에게도 앞으로 다양한 청소년들을 만날 때, 무엇보다도 자신을 대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상담/진료 기관을 선정할 때의 어려움이다. 모든 기관을 믿을 수 있는 기관인지 충분히 알아보고, 만나서 대화해보고 서로 지켜야 할 것을 나눠보고 협약을 맺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람마음과는 그런 과정을 거쳤다. 그렇지 못하면 권리모의 예처럼 내담자와 상담 기관 간의 지향이 달라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담당할 수 있는 활동가가 2명 이상 있는 지역으로 한정해서 시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무리 모임은 다양한 비건 음식을 먹으며 깨끗하고 밝은 카페 겸 식당에서 진행했다. 마무리를 이렇게 모여서 소회를 나누며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평가는 4명 모두 동일했다. 앞으로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상담지원사업은 지속하기 어렵더라도,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활동가 또는 청소년활동을 하다가 쉬고 있는 청년 및 청소년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조모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은선이 언급한 통통톡의 요가, 명상 프로그램은 활기의 다른 활동가가 알게 되어 채팅방 등으로 공유한 것이었다. 콜비와 율두즈는 인권을 옹호하는 상담기관인 사람마음에 연결되어 보다 나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활기와 함께걷는아이들의 지원이 끝난 이후에도 사람마음에서 지원을 받아 상담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렇듯 청소년 내지는 인권활동가의 정서적 돌봄을 지원할 수 있는 다른 프로그램/기관 정보를 공유하고 연결하는 것 역시 활기가 계속 해나가야 할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