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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20호][사람들]장애여성, 봉사시간을 틈타 청소년을 만나다


[20호][사람들]장애여성, 봉사시간을 틈타 청소년을 만나다

-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인터뷰


올해 활기에서는 청소년자립지원사업 <자몽>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활동가의 자립 및 위기 지원, 그리고 역량 강화를 목표로 몇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 하나는 청소년운동 활동가들과 다른 인권운동 영역의 활동가들이 만나 서로의 운동 역사와 활동 고민들을 나누는 자리(강좌, 세미나 등)를 기획하는 것입니다. 상반기에는 장애운동과의 만남을 몇 차례 가졌고, 다양한 관점과 활동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청소년인권활동가들과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활동가들은 새롭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요, 이번 활력소에서는 인터뷰 기사까지 싣게 되었답니다! 

"장애운동 안에서 청소년을 꾸준히 만나며 청소년인권에 대한 고민을 키워오고 있는 활동가들이 있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이하 숨센터)은 3년째 여름방학 시즌에 청소년을 만나는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담당 활동가 노다혜, 진은선 두 분을 만났다." 인터뷰를 기획하고 진행한 활동가 밀루님의 말입니다. 


인터뷰 및 정리 : 밀루(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인터뷰 참여 : 진은선, 노다혜(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학생들의 봉사활동 시간, 장애여성과 평등하게 대화하는 시간으로


Q. '청바지-청소년과 함께 바꾸는 지역사회'를 진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진은선(이하 은) : 청소년들은 대개 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서 장애인을 만나게 된다. 또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청소 등의 제한적인 활동을 하게 되더라. '나의 활동'을 할 기회가 없고, 단순업무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봉사활동 시간을 활용해) 청소년들을 만나 장애에 대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평등한 관계에서 만나는 것이다. 2016~17년 여름방학에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선정된 편의점의 휠체어 접근성을 모니터링하고, 구청에 문제제기 민원을 넣고 시정하는 과정을 함께했다. 서울시가 여성 안전 정책을 보호 위주의 협소한 범위에서 시행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정책의 대상에 장애여성이 포함될 수 없는 것도 문제라며 우리의 주장을 알렸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장애여성들이 한 팀에 한 명씩 들어가서 청소년들과 관계 맺고, 같이 생각과 의견을 나눠보며 서로에 대해 익숙하게 느끼게 도는 과정이었다.


노다혜(이하 다) : 많이들 함께 공감하고 분노했다. "방만이다.", "제대로 된 게 없다.", "나는 모르고 지나갔던 계단 한 칸 때문에 휠체어는 못 지나가는구나."라며.


참여자들의 의견을 조사해보았을 때, 가장 좋았던 것으로 "같이 대화 나눈 것"을 꼽은 참가자가 있었다. 같이 지하철도 타고, 이동하면서 대화를 하는 시간이 좋았다고 했다. 떡볶이 등의 간식 먹은 것 좋았다고 음식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시는 분도 있었다. (웃음)


의무적으로, 혹은 체험학습처럼 가게 되는 장애인시설 봉사활동,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준' 경우 상점을 부여하는 학칙 등, 학교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시혜적인 태도를 익숙하게 만드는 장치가 특히 많다. 장애인을 주변에서 만날 수 없거나 '도움반', '특수반' 등의 이름으로 구분되니 차별과 편견을 해소할 기회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도와줘야 할 대상이 아닌,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당사자로서의 장애인을 만난다는 점에서, 또 동등한 시민으로서 함께 지역사회를 바꿀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청바지 활동은 무엇보다도 생생한 인권교육 아니었을까?



"우리 OO이가 이런 거 하려고 하는데 할 수 있나요?"


다 :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기쁨과 동시에 무거운 마음이 남는다. 청소년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제약이 너무 많다. 참여자들의 시간을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웠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오전에 진행했다. 활동을 마치고 바로 학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신청서가 들어와서 전화해보면 당사자가 받지 않고 어머니가 받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OO이가 이런 거 하려고 하는데 할 수 있나요?"라며 문의전화가 오기도 한다. 어머니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인가? 왜 본인과 소통할 수 없을까? 의문이 든다.


비슷하게,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진행하려고 신청자 모집을 해서 전화를 걸어보면 가족이나 활동보조인이 받는 경우가 있다 "(당사자에게) 언어장애로 말 잘 못하니까 내가 대신 대답해도 되지? 내가 대답한다." "몇 시에 한대. 괜찮지?"라며 대변한다. "저는 그분과 통화하고 싶은데요." 청소년과 장애여성은 직접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부분이 닮았다.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착잡하다.


Q. 올해는 '청바지' 대신 '차별과 차별 사이-닮은 그림 찾기'라는 이름의 교육 활동을 진행했는데.


다 : 계기 중 하나는 모니터링을 해도 시정이 안된다는 것이다. 모니터링 대신 진행할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청소년이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가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것과 맞닿아 있을 테니, 우리의 맞닿는 경험을 통해 차별과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결론 내렸다. 학교 내에서 혐오표현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염두에 뒀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차별과 혐오는 비청소년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문제인데 ‘요즘 청소년들 혐오 표현 심하다’라고 생각했던 게 오히려 청소년에 대한 혐오에서 나온 생각 아니었을까? 고민이 됐다.

둘째날은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 '가출과 독립 사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진행하는데, 마음이 괴로웠다. 프로그램 중 "독립은 내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다. 내 하루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이고 없는 건 무엇이 있나 써보자"는 시간이 있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칸에 아무것도 적지를 못하더라.



"이곳에서 존중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 인터뷰에 참여한 '숨'센터 활동가, 왼쪽부터 노다혜, 진은선 활동가)




Q. 참여 청소년들에게 존댓말/반말, 어떤 호칭을 사용할지 고민되지는 않았나?


다 :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도 개인적으론 연소자에게 존댓말을 사용해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유치원을 다니는 아동에게도 의식적으로 존댓말을 사용했다. 처음 보는 연장자가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다.

장애여성도 일상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을 많이 듣는다. "어디 가?", "얼굴은 예쁜데…어디 아파?" 반말에 대한 반감과 긴장감이 늘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서 상 '친해지려면 반말을 해야 하나? 존댓말이 딱딱하게 느껴지진 않을까?"하는 고민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바지'활동을 하면서 제일 많이 고민하고 신경 썼던 부분 중 하나는 '이 곳에서 존중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봉사활동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만족도 조사지 항목에 '활동가 및 스텝들이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는가'하는 질문을 넣기도 했다. 또, 반말한다고 친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어설픈 반말과 농담이 더 벽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청소년에게 경어를 쓴다고 해서 평등하다거나 반말을 쓴다고 해서 권위적이라고 단순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지원 대상인 청소년과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비청소년 실무자/교사가 반말을 사용하며 살갑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한편 다른 장치들을 활용해 평등하고 주체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 지원 현장들도 있다. 어떻든 목적은 '이곳에서 존중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로 모아진다. 장애여성과 젊은 여성 활동가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청소년에게도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청소년은 대화에서 가장 즐거움을 느꼈다는 청바지의 사례는 보기 드문 시도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Behind Story


언니, 선생님, 그리고 OO님으로, 공감의 언어 문화 변천사


Q. 장애여성공감 내 호칭의 변천사가 궁금하다. 발달장애인 회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호칭 문화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다 : 맨 처음에는 ‘언니 문화'였다. "oo언니", "oo야" 이렇게 하다가, 나이 어린 활동가의 말을 존중하지 않는 나이주의적인 분위기가 문제로 제기되어 "사무처장님" 등 직급으로 불렀다. 그러다 지체장애회원이 많던 초기에 비해 발달장애회원들이 많아졌다. 발달장애회원들이 활동가에게 "선생님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예뻐요."라고 말하며 애정을 표현하고 또 갈구하곤 했다. 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처음 만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활동가들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다 보니, "우리 호칭을 바꿔야겠다."


은 : 수평적인 관계 맺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긴장감’과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호칭이 'OO님'으로 변화함에 따라서 나이를 묻는 일도 없고, 반말을 하는 일도 없고, 서로 간의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 공감의 문화로 정착했다. 회원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호칭이 변화하면서 기존 사회에서 존중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호칭을 통해 서로 존중하는 방법을 서로 배우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다 : 호칭을 바꾸니 확실히 달라졌다. 편하게 농담도 할 수 있고. 하기 어려운 말들이 있을 때 "OO님 이렇게 하면 어때요?"하는 식으로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다.


하지만 (발달장애회원들이) ‘아 미안, 안 그럴게’ 할 상황에 "잘못했어요 죄송해요"라고 반응할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된다. 그동안 통제 받고 혼나고 지적당하는 관계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다.


회원 중에는 아직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다. 특히 발달장애회원들은 '처음에 관계를 어떻게 맺었는가'가 호칭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 예를 들어 10년 전 5년 전에 상담소에서 내담자로 만나게 된 경우에는 'OO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해진 것이다.


발달장애회원들에게는 OO님이라는 호칭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복지관에서는 "선생님", "그래 누구 왔어?"하다가 공감 와서는 "OO님"이니까 혼란스럽다. 그런 점에서 공감은 편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딴 세상'인 것이다. 회원들 사이에선 여전히 '언니 문화'가 강하다. 나이 안에서 생기는 위계도 있지만 장애의 정도, 소위 말해 기능이 더 나은 사람이 갖는 위계, 공감이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얼마나 오래 정착해왔는가에 따른 위계도 있다.


회원들은 가정 등에서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텃세’를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 이 곳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간혹 다른 회원에게 무섭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신입 회원이 활동가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그러면 안돼. 그건 공감의 문화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식이다. 공감의 문화를 설명하는 내용이지만, 그 말하기 방식은 공감의 문화와는 괴리가 큰 것이다. 이런 상황에 ‘OO님, 그렇게 말하면 그 분이 조금 위축될 거 같아요’라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지만, '죄송해요. 잘못했어요.'라고 하면 그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어렵다. 어떻게 하면 '죄송해요' 너머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된다.


아무리 우리가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해도, "우리에겐 위계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숨김'이라고 생각한다.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 사이, 그리고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의 차이에 따라 위계가 생긴다. 활동가들도 회원의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보단 회원이 활동가에게 갈구하는 애정의 양이 훨씬 크다. 활동가들은 공감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있고 관계에서의 욕구를 채울 방법이 많지만, 회원들에게는 훨씬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해도 위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대신, 그것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활동가의 말 한마디가 회원에게는 절대적일 수도 있고 크게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경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참정권 농성장에서 처음 만났던 발달장애활동가 조화영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발달장애회원이 큰 소리로 반복해서 묻는다. "이름이 뭐예요? 누구예요?" 옆에서 한 활동가가 "보통은 '나는 누구예요'라고 하면서 먼저 소개하는 거예요"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떠들썩한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회원들이 자주 오나 봐요. 분위기가 활기차고 좋네요."라고 말하자 두 활동가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모아 말한다. "사랑과 전쟁이죠."


공감에는 회원들도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전용 식당과 회원 전용 휴게실이 있었다. 하지만 왠지 회원들은 휴게실보다 활동가들이 있는 사무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조화영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출퇴근한다. 공감의 뭐가 그리 좋으냐고 하니, 사람들과 활동하고 투쟁하는 게 좋다고 한다.


발달장애인과 평등한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과 고민들을 듣고 나니, 이 풍경이 자연스럽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반성과 치열한 고민이 있었을까 싶었다. 비청소년인 청소년인권활동가들도 청소년 회원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기 위해 수없이 고민해왔다. 나에게도 후회스러운 기억, 아직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막막한 것들이 많다.


"그러면 안돼. 그건 우리의 문화가 아니야."라며 문화를 표현하려다 오히려 퇴색시켜버리는 일, 묘한 거리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죄송해요"라는 말로 삼키고 문화에 나를 어색하게 끼워 맞추고 있는 상황이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언니에서 직급으로, 선생님으로, 님으로 변해온 공감의 이야기로부터 우리 주변의 문화에 대해 질문을 던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