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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20호][사는 이야기]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20호] [사는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 글: 수경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활동가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청소년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의 고민이나 활동가로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피소드 등)를 담는 코너입니다. 2018년부터는 활력소 준비팀(청소년운동기록모임) 멤버들의 편집자로서의 권한으로(?) SNS 등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글을 싣습니다. 활동가로 살며 겪는 고민들, 청소년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이 있다면 [사는 이야기] 코너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현재 편집 멤버인 치이즈, 난다에게 문의해주시면 안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호에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이수경 활동가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초등학교 때 비인간적으로 체벌과 폭력을 일삼았던 교사에게 몇 년만에 연락해,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말을 전했다.


"이제 학교를 다닌 지도 12년째네요. 제가 19년을 살았으니까 인생의 절반을 넘게 학교에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야 ‘인권’이라는 언어를 만났고, 제 인생의 절반을 인간으로 살지 못했음을 깨달았어요. 학교가 본격적으로 제도를 이용해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하기 시작하는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학교가 가하는 폭력을 생각할 때, 그걸 말할 때 선생님이 상징적으로 떠오릅니다. 


키도 조그마한 초등학생을, 허리까지 오는 책상에 작은 발을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부들거리는 팔로 몸을 지탱하게 만드는 ‘명태 말리기’ 그 짓이 상징적입니다. 수업 중 이따금씩 우스갯소리로 선생님은 전 학교에서도 ‘명태 말리기’를 써먹었다며 이야기를 늘어놓으셨지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저는 자주 선생님을 찾아뵈었고, 수다를 떨면 그 때 기합 받다가 제가 쓰러진 게 생각난다며 웃었습니다. 제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지요.



그 때는 정말 추억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 때를 떠올리면 분노가 차오릅니다.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인간 취급을 못 받았다는 것을요. 책상에 발을 걸치고 덜덜 떠는 우리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면서 회초리로 자세를 고치는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OOO가 그 자세를 완전히 풀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걸상을 집어 던졌습니다. 저는 그 때 OOO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OOO는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싹싹 빌며 그랬습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저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인격체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리면 우리는 그따위 짓을 당해야 했나요? 그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학교는 폭력의 소굴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학창시절은 폭력으로 물들었고, 지울 수 없습니다. 평생 지울 수 없습니다. 선생님, 그 때를 기억하시지요? 죄책감을 느끼시나요? 우리에게 미안함을 느끼시나요?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그러시지 않겠지만, 그 때의 선생님은 정말 선생이 아니었습니다.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못 본 척 저를 차단하셔도, 제게 욕을 퍼부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부디, 그 때를 기억하세요. 학생들 앞에 설 때면, 그 때를 기억하세요. 죄책감을 느끼면서 학생들을 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