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점들

[19호][관점들] 무엇이 우리를 미성숙하고 문제적인 사람으로 만드나

[19호] [관점들] 무엇이 우리를 미성숙하고 문제적인 사람으로 만드나


- 장애운동과 청소년운동의 만남 세미나 기록 정리 및 후기


- 작성: 트리



올해 활기에서는 청소년자립지원사업 <자몽>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활동가의 자립 및 위기 지원, 그리고 역량 강화를 목표로 몇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 하나는 청소년운동 활동가들과 다른 인권운동 영역의 활동가들이 만나 서로의 운동 역사와 활동 고민들을 나누는 자리(강좌, 세미나 등)를 기획하는 것입니다. 상반기에는 장애운동과의 만남을 몇 차례 가졌고, 다양한 관점과 활동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활력소에 실린 후기글은 그 중 세 번째로 진행된 세미나에 참여한 청소년활동가의 글입니다.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참정권, 당연한 권리가 당연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장애운동과 청소년운동의 만남> 세미나 내용을 간추려 공유한다." 글쓴이 트리 님의 말입니다.  




615일 금요일 오후 7, 노들야학의 4층 강당에는 왠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20명 정도가 둘러앉아 무엇을 기대하고 왔는지 이야기를 약간 나눈 뒤에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가 박서연씨의 <하루가 아닌 일상의 권리인 참정권>이라는 제목의 발제로 시작됐다.



 

너희는 이런 거 이해 못해라고 말하는 대신에

 

장애여성공감 에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회원들이 늘어난 2015년부터 선거 전에 선거 과정, 후보들에 대해 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전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누구를 뽑을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외에도 선거용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도장은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같이 연습을 해보기도 한다고 한다. 장애여성공감의 발달장애인 회원들은 선거를 해봤냐라는 말에 선거 날인지 몰라서 못했다. 가족들이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선거 공보물을 가족들끼리 돌려보고 나에게는 주지 않았다.” 라고 대답한다. 발달장애인은 선거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제한적이다. 선거 공보물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많고, 혼자서 선거 절차를 밟는 것도 쉽지 않다. 사전 모임에 나왔었지만 당일에는 투표를 못하는 아쉬운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주된 의견 중 하나는 발달장애인이 장애로 인하여 (아무것도 몰라서),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쉽게 휩쓸려 투표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표 행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제대로 된 표를 행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것은 발달장애인, 청소년 등의 일반시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기 위한 말인 것은 아닌가? 또한 주변인의 말에 쉽게 좌지우지 되는 것이 문제라면 주변인들이 발달장애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부분은 없는지 성찰할 문제가 아닌가... 질문만 가득 남는다.“

- 발제문 <하루가 아닌 일상의 권리인 참정권>

 


참정권이 일상의 권리인 이유

 

평상시에도 회원모임을 가끔 진행하는데,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모임을 할 때 정치에 대해 일상적으로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일상이랑 연결이 된다고 느끼는 게, G-Voice를 만나고 성소수자 차별하는 사람은 뽑지 않겠다. 라는 등의 자기만의 기준들이 하나씩 생겨나는 거 같다.”

- 발제자 발언

 

투표는 끝나고 나면 약간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할 만큼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역의 사정을 잘 알아야 하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어떤 후보는 과거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등등 발달장애인들은 일상속의 정치에서 배제되어있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저는 이번이 두 번째 선거인데 벼락치기를 해서 찍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데 주소이전을 안 해서 경기도에서 투표를 했다. 근데 경기도에서 3, 4개월 밖에 안 살았기 때문에 사정도, 지역 정치인도 잘 모른다. 지방선거는 너무 장수도 많고 어려웠다.”고 이야기 했다비청소년, 비장애인에게도 충분한 정보와 평소의 참여 경험이 없으면 선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참정권은 혼자만의 힘과 지식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사소한 정보들, 토론하며 달라지는 생각들, 시행착오의 경험들 속에서 실천될 수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 일상적인 대화의 경험은 보장되는가? 정확히 말해서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는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당하는가, 또한 발달장애인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가?“

- 발제문 <하루가 아닌 일상의 권리인 참정권>

 

정치에서 배제된 약자들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제대로 참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힘들다. 미성숙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저기 가서 놀아~” 라거나 너는 이런 거 이해 못해.” 라는 말로 손쉽게 배제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통해 배워나간다.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발달장애인에게 일상적인 대화의 장이 보장되지 않는 다는 발제 내용이 인상 깊다. 만약에 청소년이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선거에 대한 교육이나 토론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생각을 해봤는데 좀 어려웠다. 학교에서 하려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지금 교직원들도 정치적 권리가 없는 상태다. 지금의 학교는 정치적인 대화의 경험을 완전히 없애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교사들끼리도 제대로 이야기를 못 할 테니. 일상 속에서 정치에 대해 토론을 할 자리를 만드는 것도 참정권운동에서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참가자 발언

 

지금의 학교는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학생과 교사들이 정치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을 막는 정치의 볼모지다.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된 이후에는 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할까?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상의 정치에서 부당하게 배제된다면 아직 그 사람의 참정권은 보장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 운동은 청소년 선거권이 보장된 이후의 참정권 운동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 장애운동과 청소년운동의 만남 웹자보)

 


한국의 장애인 교육 정책은 통합교육이다. 특수학교보다 그렇지 않은 소위 일반학교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들이 더 많고, 특수교육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교육과정에서의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을 진정한 의미의 통합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미나 2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김성연 활동가의 발제를 듣고 장애인 교육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재의 학교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누구의 학습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가

 

발제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김성연씨는 비장애인 학생의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의 학습권은 어떡하느냐.” 라고 묻는다고 말했다. 그럴 때 그는 이 학교가 누구의 학교냐, 이 인근에 살아서 이 학교를 다녀야하는 학생의 학교다. 라고 말씀을 드린다.” 우리나라는 지금 통합교육이 기본 정책인데도 비장애 학생의 학교에 장애학생이 끼어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사들은 도움반 학생이 잠깐 자기 반에 와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배제하고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쉽게 쫓아낸다.

 

 

누가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으니 벌을 주고, (공부 잘하는 애들 집중하라고) 자습실을 분리 시킨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의 학습권만 중요한 거처럼 취급받는지? 왜 아무도 장애학생의 학습권은 묻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비장애 학생이 수업을 방해할 때랑 장애 학생이 방해할 때랑 반응이 너무 다르더라.”

- 참가자 발언

 

장애학생의 학습권은 비장애 학생의 학습권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겨진다. 통합교육에서 장애학생이 소외되어버리니, 차라리 특수학교가 낫다며 특수학교를 택하게 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장애 학생을 차별하더라도 문제제기를 하면 피해를 보니 법이 아무리 잘 되어있어도 문제제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학교 교육에서 살아남기

- 우리에게는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학교가 원하는 학생의 모습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45분의 수업시간동안 꼼짝하지 않고 선생님의 얼굴만 쳐다보며 시키는 일을 잘 수행하는 사람, 묻는 것에 잘 대답하고, 모둠활동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며,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 우리의 교실은 이런 학생들을 모범생이라 이야기하고, 위에 제시한 조건대로 하지 않는 학생들을 문제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런 교실안에서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하는 장애학생들은 항상 문제가 있는 학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발제문<장애운동과 청소년운동>

 

나는 발달장애인 참정권 운동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참 후의 일이겠지만 만약에 글을 아직 배우기 전인 어린이가 참정권을 가지게 된다면 지금의 투표 공보물을 읽거나 투표를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달장애인에게 친화적인 선거는 어린이에게도 친화적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발제에서 '장애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의 첫걸음은 학교 분위기를 학생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요지도 인상 깊었다.

 

한편으로는 역시 '청소년해방이 곧 장애청소년의 해방은 아닐 텐데, 장애청소년을 만나고 이야기 듣는 활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여자 중 한 명은 저시력 시각장애를 가진 청소년으로서 통합학급에서 차별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다른 장애청소년들과 만날 기회가 전혀 없는데, 이번에 다른 장애청소년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어 좋았다는 소감을 남겼다. 비슷한 차별경험과 문제의식을 가진 주체들이 만났을 때 거기에서 나오는 치유와 저항의 힘이 있을 테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올 7월 고등학교 재학 중인 뇌병변/지체장애를 가진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9기 장애여성학교를 개강한다. 장애청소년을 어떻게 만나고 운동에 함께할 것인지, 놓치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싶다.

 

너희는 이런 거 못해라는 말을 들으며, ‘우리도 충분히 똑똑하고 성숙하다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내놔라!’, ‘우리가 참여해야 세상이 바뀐다고 말하는 우리들. 조용히 앉아서 선생님만 바라보게 하는 학교는 틀렸다는 걸 온몸과 삶으로 증명하는 우리들은 함께할 때 더 강할 것이다.

 

 

 

<필자 소개>

 

트리 -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을 하다가 잠시 쉬어가면서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드문드문 인권운동판에 얼굴도 비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