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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들

[17호] [관점들] 저항하는 청소년을 이야기하자

[17호] [관점들] 저항하는 청소년을 이야기하자


작성 : 트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관점들'은 청소년 인권의 눈으로 영화, 책, 방송 등을 비평하는 리뷰 코너 입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활력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청소년 소설' 이라는 규정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일종의 금기로 작동하는 건 아닐까?  (백설공주가 먹은 것은 정말로 독사과였나? - 이선우, 프레시안)

 


어른들의 아는 척으로 느껴지던 청소년 문학

 

한창 청소년문학을 많이 읽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길을 끊게 되었다. 지금 와서 왜 그랬었나 생각해보면 약간 지겨웠던거 같다. 너무 가볍게 느껴지는 문체나 깊이 없는 등장인물, 어른들과 세상에 반항하지 못하는 청소년의 모습들이.

 

청소년 주인공이 우여곡절을 겪고 성장하는 이야기들은 나한테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아무리 나와 비슷한 나이대 라지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잘 와 닿지 않았다. 청소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걸 쓰는 대부분의 작가가 어른이라는 점도 청소년문학이 어른들이 보는 청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금기를 깨자

 

그런 답답함을 안고 있을 때 읽게된 책이 <아는 척>이다. <아는 척>에서는 청소년과 청소년 문학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깨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 책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쓴 책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을 겪고 있고 따돌림을 당하는 강과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박, 공부를 잘 하지만 원하지 않는 진로를 강요하는 어른들 때문에 머리 아픈 윤. 이렇게 세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강, 윤과 박은 강의 제안으로 강이 미술학원에서 사귄 친구인 안현우와 함께 눈에 잘 띄는 학교 담장에 스프레이로 자신들의 얼굴을 그린다. 자신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 학교에서 하지 못하게 하는 피어싱을 한 모습, ‘걸레 아님이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긴 옷을 입지 않은 상반신을 그리고, ’너희가 모르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이름을 새긴다.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지 말라는 선전포고다. 학교의 벽은 너무 견고하고 차가워서 도저히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이 셋은 학교에서 금지할 게 뻔한 행동을 하고 금기를 넘어선 자신들의 모습을 남김으로써 상징적으로 그 벽을 넘는다. 폭력을 일삼는 강의 아버지에게도 그의 차에 나는 개새끼입니다라는 문구를 남기고 집 창문 옆에 개를 그려넣어 톡톡히 복수를 해준다.

망설이며 머뭇거리거나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는 주인공들의 반항은 통쾌하게 다가온다. 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불쌍하기만 한 존재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어른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되바라졌다고 평가하는 시선도 없다. 주인공들은 사건 이후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간다. 저자는 박의 입을 빌려 이 사건을 계기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가식적인 결말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청소년 시기를 어른이 되기 전 들렀다 가는 기항지처럼여기는 것을 부정한다.

 

속해야 하는 공간에서 벗어나기

 

청소년들은 소설 속의 강과 윤, 박이 그렇듯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가정과 학교에서 환대받지 못한다. 사실 그 곳은 어른들이 지배하는 어른들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는 척><우리들의 7일전쟁>,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 이 세 책은 청소년이 억압하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아는 척>의 도입부에서 세 주인공이 만나 계획을 세우는 장소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캄캄한 새벽 으슥한 아파트 놀이터이고,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우리들의 7일전쟁>에서는 더 나아가 한 달 전에 문을 닫은 공장에 어른은 들어올 수 없는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든다. 무라카미 류의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에서는 청소년들이 만든 새로운 나라를 그린다. 이 소설들 속의 청소년들은 우리의 공간은 어디에 있는지어른들에게, 책 밖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청소년을 위한다는 청소년 문학 속에 청소년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청소년 문학은 어른들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은연중에 어른(학부모)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청소년 문학이 청소년에 대한 어른들의 시선을 담는 거울이 아닌, 청소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창이 되었으면 좋겠다. 청소년 문학이 청소년을 옥죄는 금기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바란다